[경제] 10년후 미래직업 ④ 프리랜스 바이오해커 사회경제

zoon.jpg » 주니버스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공동연구 프로젝트들.  

 

연구기관에 속하지 않은 아마추어 과학자들

 

과학과 기술 혁신이 누적되면서 관련 지식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세분화, 전문화해가고 있다. 그래서 과학이나 기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관련학과나 연구소, 관련 기업의 개발부서가 아니면 명함도 들이밀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러나 인터넷이 이런 폐쇄적 상황을 깨뜨려가고 있다. 오픈소스 플랫폼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일반 시민들도 과학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시민참여 온라인 사이트 ‘주니버스’(www.zooniverse.org)에서는 새로운 행성의 발견에서부터 새로운 분자 생성에 이르는 아주 다양한 일들을 사이트에 접속해 진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른바 시민과학자들이 탄생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과학연구 공간이 온라인에 형성된 덕분이다. 기업들도 복잡한 의학적,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는 통로의 하나로 크라우드 소싱의 잠재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새로운 백신을 발견하거나 DNA 분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연구소 같은 전문연구기관에 속하지 않은 채 이런 생명과학 연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프리랜스 바이오해커’(Freelance Biohacker)라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 보고서가 꼽은 네번째 ‘10년 후 미래직업’이다.
 
'손수생물학'(DIY bio)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는 전세계 바이오 해커 집단은 현재 86개에 이른다(DIYBio.org 집계 기준).  2011년 미국 최초의 비영리 연구집단으로 출범한 젠스페이스 바이오해킹 랩(Genspace biohacking lab)이 이 부문의 원조격이다. 젠스페이스가 아마추어 생명과학자들에게 연구 공간과 장비,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주면, 아마추어 과학자들은 기업 연구소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한 프로젝트를 맡아 연구를 진행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크리스퍼 카스 나인’(CRISPR/Cas-9)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Bento_Lab.jpg » 휴대용 DNA 분석기구 '벤토 랩'.


휴대용 DNA  분석 키트도 나왔다

 

 합성생물학 부문의 스타트업인 '벤토 바이오'(Bento bio)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최초의 모바일 DNA 연구실 ‘벤토 랩’(Bento Lab)을 만들어 지난 4월 시판에 들어갔다. 벤토 랩은 누구나 DNA 분석 실험을 할 수 있는 DNA 분석 키트다. 벤토 랩은 이를 통해 시민과학 혁명을 일으킨다는 야심찬 비전을 갖고 있다. 크기가 노트북 피시 정도만 해서 갖고 다니며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분석 대상도 침이나 모발, 피부 세포는 물론 맥주,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회사 공동설립자인 베탄 볼펜덴은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같은 치명적 질병을 진단하는 현장 과학자들에게 유용하다고 말한다. DNA를 티용해 야생동물 밀렵꾼을 추적하거나 알프스산맥의 귀뚜라미 진화를 연구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또 자기 자신의 DNA를 들여다보거나 새로운 음식과 생맥주를 테스트해보고 싶은 과학 애초가들에게도 유용하다. 미국 정부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이뤄낼 혁신과 과학적 성과의 잠재력에 주목해, 지난해 이를 지원하는 ‘크라우드소싱과 시민과학법’을 만들었다.

teacher-makers.jpg » 바그 소사이어티가 개설한 지도자 양성 캠프. https://www.waag.org/en

 

바이오해커, 10년후 시민과학의 대표주자로

 

 학생들에게 시민과학자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과정도 생겼다. 네덜란드의 창작 기술개발집단(Waag society amsterdam)가 개설한 바이오해크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은 전세계 연구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오픈소스 과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생체재료를 설계하고 배양하고 추출하는 방법을 습득시켜 자기 자신만의 연료나 식품, 의약품, 향수, 균류 등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다.
 보고서는 “2025년에는 시민과학이 단순한 취미 단계에서 벗어나 탄탄한 과학 기반과 일에 대한 진취적 자세를 갖춘 독립적 경력으로 인정받는 단계로 진화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리랜스 바이오해커는 시민과학자의 대표주자로서 차세대 항생제, 유전자변형 생물 등 다양한 생명과학 프로젝트에서 첨병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유전자 편집 같은 기반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이 갈수록 간단해짐에 따라 시민과학자들의 참여폭도 덩달아 넓어질 것이다. 미 스탠퍼드대 법과생명화학센터 소장인 행크 그릴리는 보고서 작성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20년 안에 바이오해커들이 유니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 기꺼이 베팅하겠다. 뿔이 달린 동물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말에 주입해 유니콘을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유니콘은 억만장자의 어린 딸에게 생일선물로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차원의 상상이다. 유전자 변형 생명체는 생명윤리와 직결돼 있는데다, 안전성 검증도 거쳐야 하는 것이므로 기술적인 벽을 넘어선다고 곧바로 현실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재로선 이런 분야의 기술 발전은 멸종 위기동물 복원을 비롯해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몇몇 분야에 한정해 쓰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겠다. 다만 자신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로 생계수단을 삼아야 하는 바이오해커 입장에서 미래에 만약 검은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

 

UNICORN.jpg » 유니콘처럼 상상속의 동물을 재현할 수도 있다. http://www.desktopnexus.com/groups/fantasy-girls/image/999385/

의욕과 달리 연구 결실 맺기는 쉽지 않다


 프리랜스 바이오해커들의 활동공간은 주로 온라인이다. 수백, 수천명의 동료들과 함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작업을 한다. 그러나 바이오해커들 앞에 펼쳐진 길이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2013년 큰 화제를 모았던 발광식물 프로젝트가 한 사례다. 당시 킥스타터를 통해 48만달러에 이르는 투자금을 끌어모았던 3명의 바이오해커들은 반딧불이에서 발광 유전자를 추출해 애기장대에 심으면 발광식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것이 성공하면 발광 가로수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은 최초의 발광식물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명공학 기술이 결실을 맺는 일이 언론의 장밋빛 전망이나 캠페인 구호에서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이런 식의 유전자 변형이 아무런 사회적 공감대 없이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original.jpg » 투자금 모집이 완료됐음을 알리는 발광식물 프로젝트 화면. 킥스타터

바이오해커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보고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연구소와 주요 제약업체, 생명과학 기업들은 암 치료에서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신종 질환에 대한 백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들을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해타산에 밝은 거대 제약업체들은 큰 이익이 생길 것 같지 않은 부문은 굳이 직접 뛰어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호기심과 개성이 강한 프리랜서들에게 손을 벌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 프리랜스 바이오해커들은 대학에 소속된 연구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는 시간에 자유롭게 상상하고 브레인 스토밍을 할 수 있다. 이는 과학적 성과를 높여주는 촉진제다. 반면 기업과 대학의 연구자들은 양식에 맞춰 수많은 문서의 내용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런 틀에 있다 보면 과감한 연구는 아무래도 주저하게 된다. 제도권의 규칙과 기구는 새로운 방식의 기술적 접근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방해물이다. 바이오해커들에겐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실행하면 된다. 그것은 세상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보고서는 10년후 바이오해커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데이터 분석 훈련과 함께 과학적, 의학적 방법론에 대한 공부를 해두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물론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공부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발광식물 프로젝트를 추진한 세 사람은 각각 수학, 생화학, 농화학 전공자들이었다. 또 대면접촉을 할 일이 없는 가상의 팀들과 경쟁이 아닌 협력을 할 줄 아는 능력 역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끈기도 있어야 한다. 전체가 아닌 세부적인 것을 들여다보는 눈, 사물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 남과 다른 것을 생각해내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인터뷰에 응한 환경과학자 토드 퀴켄(Todd Kuiken)은 “앞으로는 앞서가는 생명과학자가 되는 데 굳이 박사학위를 딸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HippocraticOath.jpg » 십자가 모양으로 쓴 12세기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미래의 바이오해커들에겐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위미키디어 코먼스


 엄격한
 윤리의식 필요…커뮤니티가 건강성 지켜줄 것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생명을 다루는 만큼 엄격한 생명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대목이 지침이 될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스스로 원칙을 세워 통제해 나가지 않는다면 되레 새로운 위험을 양산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전문 과학자들은 연구 작업이 끝난 뒤 자신의 작업에 대한 윤리적 의미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바이오 커뮤니티는 작업의 초기부터 안전성과 윤리적 원칙을 확립하는 일을 시작한다. 각각 자신들이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수시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민 바이오해커들은 자신들에 대해 쏟아지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행동규범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참고자료
벤토랩 기사
http://techholic.co.kr/archives/51720

 https://www.technologyreview.com/s/601884/why-kickstarters-glowing-plant-left-backers-in-the-dark/

https://diybio.org/

참고도서

<바이오해커가 온다>(김훈기 지음,글항아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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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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