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이슈] 일상을 바꾼 `코로나19'...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미래이슈

pan1.jpg » `이벤트 201' 홍보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2019년 10월의 팬데믹 도상훈련 시나리오와 흡사


2019년 10월18일 오전 9시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인류를 위협할 중대한 현안이 벌어질 경우를 상정한 도상훈련 `이벤트 201'이었다. 존스홉킨스 보건안전센터와 세계경제포럼,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주최로 3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도상훈련의 주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의 대비와 발발, 대응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훈련이 이날 처음은 아니었다. 2001년 6월 미국 본토에 대한 생물학적 공격과 관련한 `검은 겨울', 2005년 1월 생물무기 테러에 대한 나토와의 공동 대응을 다룬 `대서양폭풍', 2018년 5월 세계 보안 및 보건 위기에 직면한 미국 정부 지도자들의 대응을 다룬 `클레이드엑스'(Clade X)에 이은 네번째 도상훈련이었다. 3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에 참가한 세계 기업, 정부, 보안, 공중보건 인사 15명은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팬데믹(대유행 감염병)이 발생한다. 인수공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박쥐에서 돼지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됐다. 병원체는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증상은 경미하지만 심각한 폐렴을 일으킨다. 전파 속도는 훨씬 빠르다. 발원지는 브라질 돼지 축사다. 남미 대도시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을 거치면서 급속히 확산된다. 포르투갈과 이어 미국, 중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다. 1년 안엔 백신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항바이러스 약물이 있기는 하지만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기 몇달 동안 감염자 수가 한 주에 두배씩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공포에 휩싸인 세계 경제가 위축된다. 세계 총생산(GDP)이 11% 감소한다. 가짜뉴스와 정보가 난무해 감염병 퇴치에 애를 먹는다. 발발 18개월이 지나 6500만명의 사망자를 내고서야 감염병 사태는 종료된다."

cov.jpg » 3월13일 현재 코로나19 감염 지역. 색깔이 짙을수록 감염자가 많은 걸 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21세기 최악 감염병은 모두 바이러스서 비롯


놀랍게도 시나리오의 내용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코로나19 사태는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예상한 범주 안에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은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 브라운대 연구진이 `영국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저널'에 발표한 분석 내용(2014년 12월호)을 보면 1980~2013년 기간 중 219개국에서 215개 감염병 1만2102건이 발생했다. 감염자가 4400만명에 이른다. 감염병에서 예외인 나라는 없었다. 215개 감염병의 65%가 인수공통전염병(발병 건수론 56%)이다. 감염병의 70%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질환이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이 비율이 88%로 더 높아졌다. 특히나 2000년 이후 발생한 악명 높은 감염병은 모두 바이러스에서 비롯됐다.현재 세계보건기구가 잠재적 전염병 후보군으로 추적하는 것만 7천건에 이른다. 연간 발병하는 감염병 수가 200개에 육박한다고 하니, 가히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것이 일상이 된 `바이러스 뉴노멀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정색을 하고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20세기 들어 본격화한 세계화는 번영과 함께 위기도 세계화했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한 곳의 위기는 인류 전체의 생존 문제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인류 생존을 위협할 후보로 지목된 건 핵무기였다. 인류는 2차 대전을 종식시킨 무기의 가공할 위험성을 직감했다. 21세기 들어서는 기후변화가 목록에 추가됐다. 기후변화는 세계 곳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기상이변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은 그 세번째 후보에 팬데믹을 올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1280px-2020-03-06_—_Coronavirus_–_Flyers_at_Hartsfield-Jackson_Atlanta_International_Airport_wearing_facemasks.jpg » 마스크를 쓴 공항 이용객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바이러스 감염병을 부르는 네 가지 세계 흐름


감염병 확산에 불쏘시개 노릇을 하는 몇가지 흐름이 있다. 무엇보다 세계화의 확대다. 해외 여행객이 급증하고 국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항공편이 바이러스의 주요 통로가 됐다. 연간 전 세계 상품 및 서비스 교역 규모는 전 세계 지디피의 60%인 50조달러가 넘는다. 전 세계 항공 여행객수는 연간 43억명(2018년 기준)명에 이른다. 웬만큼 먼 오지는 이틀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코로나19 감염자가 2개월여만에 10만명, 100개국을 넘어선 이유다.
둘째는 도시화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는 바이러스 확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5%가 도시에 산다. 2050년에는 이 비율이 70%에 육박할 것으로 유엔은 전망한다. 상황이 갈수록 나빠진다.
셋째는 자연 파괴다. 개발로 인해 자연의 공간은 축소되고 인간의 공간이 확대됐다. 자연 세계에 머물던 바이러스와 그만큼 가까와졌다. 에볼라, 지카, 니파 바이러스 등 요즘 발생하는 감염병의 31%가 이와 관련이 있다.
넷째는 기후변화다. 지구 온난화로 지카, 말라리아, 뎅기열 등을 옮기는 모기의 서식지가 확산되고 있다.

pan2.jpg » 대구경부과학기술원(디지스트)의 실시간 온라인 수업 장면. 디지스트 제공


인류가 생각한 대응법 `격리와 협력'...세상을 바꾼다


인류가 생각한 대응법은 두 가지다. 격리와 협력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대면 접촉은 피하고, 퇴치를 위한 대응책은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격리의 수단이다. 과학자들의 유례없이 활발한 바이러스 분석 논문 공유는 협력의 사례다.
환경의 변화는 그에 맞는 새로운 기술과 생활 방식의 조정을 요구한다. 14세기 중반 7년에 걸쳐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휩쓸어간 흑사병은 노동력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인구가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200년이 걸렸다. 이는 봉건제의 기반을 흔들고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의 밑바탕이 됐다.
코로나19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갈까? 성급할 수도 있지만 급격히 확산되는 온라인 쇼핑,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수업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그동안 낯설게만 생각해왔던 비대면 방식의 소통과 거래를 전면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 추세로 보아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일상은 이를 뒷받침하는 통신, 화상, 증강현실, 플랫폼 등의 기술에 새로운 기회다. 반면 대면접촉을 기반으로 한 전통 기술과 사업엔 더없는 위기다. 업무와 생활 방식이 바뀌면 직장과 주택의 인프라도 그에 걸맞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업은 업무와 고용 방식에서 이를 새로운 효율화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 확대의 또 다른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기왕이면 업무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가변적 주택 형태가 부상할 수 있다. 전통과 새것의 힘겨루기가 더욱 거세지고, 변화를 통해 얻는 자와 잃는 자간의 갈등과 충돌이 더 깊어질 수 있다. 팬데믹이 가져올 변화는 삶의 질을 높일까?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지위에도 일정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로 일시에 중국 공장이 멈추는 피해를 입은 기업들은 앞으로 위험회피를 위한 해외공장 분산에 더 힘을 쏟지 않을 수 없다.

12801.jpg » 감염 우려에 따른 사재기로 텅빈 호주 멜버른의 한 마트 진열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비감염자 행동이 더 큰 경제 피해 불러...가짜뉴스 근절 시급


감염병의 1차 피해자는 감염자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염자보다 훨씬 더 많은 건강인들의 삶에도 큰 피해를 입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4~2016년 발생한 서아프리카의 에볼라는 530억달러, 2015년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는 85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힌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감염자와 관련한 경제 손실은 전체의 39%에 불과했다. 전체의 60%는 감염을 피하려는 비감염자들의 행동 변화로 발생한 것이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근거가 없는 공포심, 잘못된 정보가 주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미 국립경제조사국(NBER)은 한 해 사망자 70만명이 넘는 판데믹이 일어날 경우 경제 손실은 연간 5700억달러(전 세계 지디피의 0.7%)로 기후변화(연간 8900억달러)에 버금갈 것으로 전망한다.) 이벤트 201 참석자들은 미래 감염병 대책으로 7가지를 제안하면서, 잘못된 정보, 가짜 정보를 다루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더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짜 정보를 퇴치하려면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 그 바탕은 정부와 민간 사이의 신뢰다. 정부와 민간을 잇는 언론의 책무가 더 중요해졌다. 지금의 한국 언론은 과연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질 준비가 돼 있는가?


*지면기사(2020.3.16.)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9326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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