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유럽인은 왜 우유를 잘 마시게 됐을까 생명건강

  the-milk-revolution-lead.jpg » 락타아제 효소를 갖춘 유전적 돌연변이의 등장이 유럽 격변의 서막이었다. nature.com  

초기 인류에겐 우유 분해 효소 없었다

그래서 우유는 식품 아닌 독성물질

중동에서 발효시켜 먹는 법 알아냈다

그뒤 효소 갖춘 돌연변이 유전자 등장했다

2가지 생존무기를 쥔 이들이 유럽으로 갔다

기존 수렵인 몰아내고 유럽을 장악했다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우유를 잘 마시게 됐을까.
옛 인류에게는 우유 속의 락토스(유당)를 소화시키는 효소 락타아제가 없었다. 따라서 1만1000년 전 중동 지방에서 소를 이용한 농업을 시작했을 당시 사람들에게 우유는 식품이 아닌 독성물질이었다. 그러던중 우유의 락토스 함량을 낮춰 먹는 방법을 알아냈는데 그것은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나 요구르트로 만들 먹는 것`이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락타아제를 만들 수 있는, 즉 우유를 마실 수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춘 사람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유럽 격변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치즈 제조법과 우유 소화 능력을 갖춘 이들은 그 탁월한 생존능력을 무기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유럽 수렵-채집 종족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우유를 마셔도 속이 탈 나지 않는 유럽인이 탄생하게 됐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미리안 ‘글로벌동향 브리핑’을 통해, 지난 7월31일자 과학저널 <네이처> 특집기사로 실린 ‘우유혁명’의 흥미진진한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lactase-hotspots2.jpg » 우유 소화 효소가 있는 성인들의 지역별 비율. 전 세계 성인의 3분의 1만이 우유 소화 효소를 갖고 있다. nature.com

 

이야기는 1970년대에 고고학자인 피터 보구키는 폴란드 중부의 비옥한 평야에서 발견한 석기시대 유물에서부터 시작한다. 보구키는 유물 덩미 속에서 한 뭉텅이의 이상한 인공물들(artefacts)을 발견했다. 그곳은 7000년 전 중부 유럽 최초의 농경민이 살던 곳이었는데, 보구키가 발견한 것은 작은 구멍이 송송 뚫린 도자기 조각들이었다. 구멍은 밀짚으로 마구 찔러댄 듯한 모양이었다.
보구키가 고고학 문헌들을 찾아보니, 석기시대의 구멍 뚫린 도자기들은 그것 말고도 또 있었다. “문제의 구멍 뚫린 도자기들은 모양이 특이했는데, 석기시대의 유물을 다룬 문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고 보구키는 회상했다. 그는 한 친구의 집에서 그와 비슷한 도자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용도는 치즈의 물기를 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문제의 도자기가 치즈 제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검증할 방법은 없었다.
이 도자기 파편의 미스터리는 마침내 2011년에 해결되었다. 브리스톨대학의 멜라니 로페-살케(지구화학)가 보구키가 발견한 도자기 조각을 분석해 지방 잔류물을 검출한 결과 이것은 유지방으로 밝혀졌다. 이는 초기 농경민들이 도자기를 체(sieve)로 이용하여 유청(liquid whey)으로부터 유지방 덩어리를 걸러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폴란드 평야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은 `세계 최초의 치즈 제조 도구`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로페-살케의 분석은 2009년에 시작된 ‘유럽의 우유 보급사 연구’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인간이 유럽 대륙에 정착하는 데 유제품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다.
 마지막 빙하기 동안, 인간 성인에게 우유는 식품이 아니라 독성물질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성인은 어린이와 달리 락타아제(lactase)라는 효소를 만들지 못하여 락토스(유당: 우유와 모유에 포함된 주요 당분)를 분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만1000년 전 중동 지방에서 농업이 사냥과 채집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유제품의 락토스 함량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으니, 그것은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나 요구르트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후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유럽에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점점 퍼져나가면서, 평생 락타아제를 만들 수 있는(즉, 성인이 되더라도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적응(adaptation)은 `우유`라는 풍부한 영양공급원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이같은 2단계 우유 혁명(1단계: 발효 유제품 개발, 2단계: 락타아제를 생성할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을 앞세워, 농경민과 목축민들은 유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누비면서, 천 년 동안 성행했던 수렵-채집 문화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초기 유럽인들은 신속하게 북쪽으로 전진하면서 유럽 대륙 전역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이란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지구상의 다른 지역 주민들과는 달리 우유를 마셔도 속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 유럽인들 중 상당수는, 농업과 목축업을 병행하며 락타아제를 생성할 수 있었던 초기 유럽인들의 후손”이라고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마크 토마스 박사(인구유전학)는 말했다.

 

① 유당불내성 vs 락타아제 지속성
어린이들은 인종이나 민족에 관련 없이 락타아제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모유에 들어 있는 락토오스를 소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커가면서 락타아제 유전자의 스위치는 꺼진다. 7~8살 이상 어린이 중 35%만이 락토오스를 소화시킬 수 있다. 이들은 우유를 반 잔 이상 마실 경우 설사(diarrhoea)를 한다.
한편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에 포함된 락토오스를 잘 소화시키는 사람들의 특성을 락타아제 지속성(LP: lactase persistence)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초기 유럽인이다. LP는 단일 염기의 변화(SNP)와 관련성이 있는데, 유럽인들의 경우 락타아제를 코딩하는 유전자 근처에서 시토신(cytosine)이 티민(thymine)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유럽인의 LP를 가능케 한 염기의 변화를 「LP allele」라고 하는데, 토마스 박사는 “LP allele를 가진 사람이 처음 나타난 것은 약 7500년 전 헝가리의 광대하고 비옥한 평야에서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dairy-diaspora2.jpg » 낙농업의 유럽 확산은 수렵에서 농업으로 넘어가는 신석기시대 이행의 한 과정이었다. nature.com  

※ 낙농업의 보급  경로
ㅇ 11,000~10,000년 전: 중동지방에서 신석기 문화가 시작됨. 이것은 농업과 (젖을 짤 수 있는) 가축 길들이기의 시작이기도 함.
ㅇ 8400년 전: 신석기 문화가 그리스로 전파됨.
ㅇ 8000년 전: 신석기 문화가 발칸반도에 전파됨.
ㅇ 7500년 전: 중부 유럽에서 락타아제 지속성(LP: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마실 수 있음) 유전자가 등장함.
ㅇ 7000년 전: 치즈 제조용 체(sieve)로 사용된 토기가 발견됨.
ㅇ 6500년 전: 중부 유럽에서 잘 발달된 낙농업이 확립됨.

 

② 가장 강력한 유전자
일단 등장한 LP allele는 자연도태(natural selection) 과정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했다. 2004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과학자들은 “LP allele를 보유한 사람들의 번식력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대 19%나 높다”고 추정하며, LP allele를 “지금껏 인간의 유전체에 등장한 유전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유전자”라고 불렀다. 그 후 수백 세대에 걸쳐 자연도태가 일어나면서, LP allele를 보유한 사람들이 유럽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토마스 박사는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그 대학의 요하임 부르거 박사(고유전학)와 뉴욕 대학의 매튜 콜린스 박사(고생물학)와 힘을 합쳐, LeCHE (Lactase Persistence in the early Cultural History of Europe)라는 이름의 학제간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LeCHE는 분자생물학, 고고학, 화학적 분석을 통해, 우유 혁명은 물론 현대 유럽인의 기원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사실 현대 유럽인의 기원 문제, 즉 “현대 유럽인의 조상이 중동의 농경민인가 아니면 토착적인 사냥-채집민인가?”라는 문제는 고고학계에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문제는 결국 “토착민의 진화냐, 이주민의 대체(replacement)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사냥-채집 생활을 하던 원주민이 농사와 목축으로 업종변경을 했는가, 아니면 주변에서 농경민족이 유입되어 극강 유전자와 기술의 힘을 빌어 토착민을 밀어냈는가?
우유 혁명이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한 가닥 증거는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동물의 뼈에서 나왔다. 만일 소를 사육하는 일차적 목적이 젖을 얻는 것이라면, 암소가 낳은 송아지는 - 어미의 젖을 빠는 것을 막기 위해 - 첫 돌이 되기 전에 도축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소를 사육하는 일차적 목적이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송아지는 완전히 자란 다음에 도축될 것이다, (이러한 도축 패턴은 양이나 염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양과 염소 역시 우유 혁명(정확히 말하면 낙농혁명)의 한 부분이다.)
LeCHE의 일원인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의 장-데니스 비뉴 박사(고동물학)는 발견된 동물 뼈의 나이(어미소인가 송아지인가)를 분석하여, “중동의 낙농문화는 약 1만500년 전, 인간이 처음으로 가축 길들이기를 시작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인간은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낙농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비뉴 박사가 지목한 시기는 중동이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기는 수렵-채집에 의존하던 경제가 농업에 자리를 내 준 시기에 해당한다. 다른 전문가들도 공감을 표했다. “인간이 소, 양, 염소와 같은 반추동물을 잡아 기르기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젖을 짜기 위해서였다”고 파리 박물관의 로즈 길스 박사(고동물학)는 말했다.
“그 당시 낙농 문화는 구석기-신석기 이행과 더불어 널리 보급되었다. 2000년에 걸쳐 농업이 아나톨리아에서 북유럽으로 퍼져가는 동안, 낙농업 역시 이와 비슷한 전파경로를 밟은 것으로 보인다”고 길스 박사는 덧붙였다.

LeCHE 소속 연구자들은 선행연구에서 “유럽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가축(소)의 뼈를 분석한 결과, 유럽 토종의 야생 소보다는 중동의 소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유럽의 소가 현지에서 포획되어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이주한 유목민들이 데려온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는 중부 유럽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고대 유럽인의 DNA 분석 결과와도 일치하는데, 이 분석 결과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 유럽의 농민들은, 이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던 수렵-채집인들의 후손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상의 연구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유럽의 첫 번째 농민이 누구였는가?”라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지금껏 유럽 고고학의 주류이론은 `중석기 시대의 수렵-채집인들이 신석기 시대의 농민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이론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을 얻었다”고 부르거 박사는 말했다.

③ 1차 우유혁명과 2차 우유혁명
“유럽에서 LP allele(락타아제 지속성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인간이 나타나기에 앞서서, 중동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낙농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고대의 목축민들은 우유의 락토오스를 줄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중동의 고대 목축민들은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듦으로써 우유의 락토스 함량을 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페타`나 `체다`와 같이 발효된 치즈는 신선한 우유에 비해 락토오스 함량이 적고, `파르메산` 같은 숙성된 경질 치즈에는 락토오스가 거의 없다.)
 LeCHE의 연구진은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도자기 유물을 대상으로 화학적 검사를 실시했다. 다공질의 거친 점토로 만들어진 도자기에는 충분한 화학물질이 잔류할 수 있으므로, 이 물질을 분석하면 요리 과정에서 도자기에 흡수된 물질(지방)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 있다. “예컨대, 도자기에 잔류하는 지방을 분석해 보면, 그것이 고기에서 유래하는지 아니면 우유에서 유래하는지, 나아가 그 고기나 우유가 어느 동물(예: 소, 양, 염소, 기타 동물)의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요리해 먹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브리스톨 대학의 리차드 에버셰드 박사(화학)는 설명했다.
에버셰드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Middle Eastern Fertile Crescent)에서 출토된 8500년 이상 된 도자기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유지방을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로페 살케가 폴란드에서 발견했던 구멍 뚫린 도자기와 에버셰드 박사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유럽인들은 6800~7400년 전에 영양보충을 위해 치즈를 만들어 먹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것을 1단계 우유 혁명이라고 불렀다. 
2단계 우유 혁명은 서서히 일어났으며, 그것은 락타아제 지속성(LP)의 전파를 필요로 했다. LP allele가 처음 등장한 이후, 그것이 유럽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전파될 때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연구진은 LP allele가 전 유럽에 퍼져나간 과정(2단계 우유 혁명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동의 신석기 문화가 유럽 남부로 유입되면서, 중동인들의 농업 및 목축 기술이 토착 유럽인(사냥-채집자) 문화를 압도했다. 그리고 남유럽을 장악한 중동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면서, LP allele도 이주의 물결을 따라 북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일부 남유럽 지역에서는 LP가 정착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석기 농민들이 그곳에 정착할 당시에는 돌연변이 유전자(LP allele)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의 통계수치에서도 확인된다. 남유럽의 경우, 북유럽보다 LP allele 보유자 수가 적다. 예컨대 그리스와 터키는 LP allele 보유자 비율이 40% 미만인데 반해,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선 LP allele 보유자 비율이 90%를 웃돈다.

④ 기근에도 살아남게 한 우유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인 후기 신석기 ~ 초기 청동기 시대에 LP allele는 중부 및 북부 유럽의 대부분에 퍼졌고, 목축과 낙농은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후기 신석기 ~ 초기 청동기 시대의 유럽인들은 목축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였고, 일단 우유의 영양학적 가치를 알게 된 후에는 목축을 확대하거나 강화했다. 그리하여 중부 및 북부 유럽의 후기신석기/초기청동기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동물 뼈의 2/3 이상을 소뼈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부르거 박사는 말했다.
하지만 “`우유를 마실 수 있는 능력`이 중부 및 북부로 진출한 초기 유럽인들에게 - 토착민들을 제압할 수 있는 - 엄청난 비교우위를 제공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LeCHE의 연구진은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토마스 박사는 “초기 유럽인들이 북상함에 따라, 우유가 기근을 대비하는(hedging against famine)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유제품은 추운 날씨에도 오랫동안 저장될 수 있기 때문에, 농한기나 흉년과 무관하게 풍부한 칼로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출처 :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3-08-14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cn=GTB2013080220&service_code=03 
네이처 원문
http://www.nature.com/news/archaeology-the-milk-revolution-1.13471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