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영] 초장생 사회(2)-우리 삶은 어떻게 변할까 벗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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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인으로 60년을 살 수 있다면

 
2017년 현재 나이 마흔인 사람의 평균 기대수명이 120세, 평균 건강수명이 110세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찌될까? 노화억제제 중 하나인 레스베라트롤이 10년 안에 상용화된다면 현재 나이 40인 사람의 기대수명이 120세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20세가 되기까지의 80년 기간 동안 생명과학의 발달 정도는 무시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이러한 미래예측은 상당한 전제가 있기는 하나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령의 개념은 어찌 바뀔까? 한자문화권의 지학(志學),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및 종심(從心)과 같은 연령 구분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장년, 노년 등의 연령대를 나누는 것이 유의미할까? 정년 은퇴와 국민연금을 받는 연령은 또한 지속될 수 있을까? 결혼, 직업, 교육의 틀이 이러한 초장생의 시대에 여전히 유효할까?
기계혁명은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총량을 증가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절대군주제와 노예제는 사라졌으며, 공교육제도가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정착했다(자본주의 등장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시작을 9세기 이전으로 잡아도, 인류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길다). 그 시작은 작았던 변화의 물줄기가 이후에 인류 역사의 전체 방향을 바꾼 것이다.
초장생 사회는 기계혁명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보다 근본적 변화를 야기할 변혁이 될 수도 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60세 이후에 건강하게 60년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충분한 실패와 내적 성숙을 가진 인류가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혹은 노욕으로 점철된 신보수주의 세력의 장수는 사회를 또 어떤 식으로 비틀어 놓을까?
 
세부모, 다문화, 원격…다중가족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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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제도의 변화에 대한 가장 단순한 전망은 서구유럽과 같이 보다 자유로운 관계를 가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한 명의 배우자와 약 100년을 같이 보내야 한다는 것은 일부에게는 최고의 행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평생에 걸쳐 복수의 배우자와 인연을 맺을 것으로 상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조금 더 발칙한 상상을 하면 복수의 여성과 남성 혹은 남성과 여성이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도 있다. 유전적으로 어머니 2명과 아버지 1명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이미 있다. 미국 여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은 한 명의 배우자와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요한슨의 주장이 해괴망칙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생명 연장 기술과는 별개로 앞으로 다가올 가상현실 기술과 동시 통역 기술은 가족의 전통적 구성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하나의 가족 공동체는 복수의 피부색과 인종 및 문화출신으로 구성될 것이다. 가상현실 기술은 사람간의 사적 관계 형성에서 공간의 한계를 넘게 할 것이고, 동시 통역기는 언어적 장벽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초장생 사회의 도래는 가족의 개념을 현재와는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전통적인 문화, 종교적 신념과 사회계급이라는 강고한 방파제에 현재의 가족제도가 그나마 강고하게 버틸 수도 있다. 일부 사회나 혹은 일부 집단은 전통적 가치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서구 유럽에선 법률혼보다 사실혼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선 사실혼으로 인한 출생아의 수가 법률혼보다 많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데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한국사회의 가족구성과 형태가 변화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한국에서도 전통적 혼인 질서의 유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생 학생, 평생 교수?…한때의 교육만으론 못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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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배우면서 살아야 할까? 일전에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두 그룹에 ‘공부를 좋아하느냐?’라고 질문을 했다. 예상된 답이기는 하나 대다수가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답을 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당연한 예측인데, 현재와 같이 지식의 생산, 유통 및 파생이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는 현재, 한때의 교육으로 100년을 버틴다는 것이 가능할까? 지식의 반감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지금, 학습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미래 조직구조가 보다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격자 구조로 변화하듯이, 모든 사람이 학습자이고 교육자인 격자구조로 전환하리라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구나 인간에게 허용될 미래의 일자리는 로봇이 하기에는 비경제적인 육체노동이거나, 인공지능이 하기에는 비효율적인 지식노동의 분야에 집중될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현재 1차산업(농축수산업, 광업)과 1차산업(제조업)의 일자리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무인자동차와 인공지능의 발달은 제3차산업(서비스업)에서 인간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축소시킬 것이다. 연구, 정보기술, 창작과 같은 제4차 산업(제4차 산업 분류는 실무자와 학자 간에 전반적으로 합의된 것은 아니나, 그러한 분류는 의미 있다)에서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생성될 것을 예상한다면, 평생학습 체계 구축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 오로지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식으로 하니, 그나마 있던 공부에 대한 흥마저 달아나기 십상이다. 정작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할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보상심리다. 그래서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 잘못은 이러한 시스템을 우격다짐으로 유지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된 이해관계의 얽힘 때문이다. 그 피해는 그들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받을 것이다.
 
일과 놀이는 섞일 수 있을까…해답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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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생산가능인력 감소 등은 우리나라 사회의 큰 화두다. 그런데 양질의 일자리 감소, 생산력의 획기적 증가, 높은 인구밀도 또한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거시적 추세가 동시에 편안하게 언급됨에도,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일부 있다는 점이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하자면, 충분한 사회적 생산성과 한계비용의 절감은 일과 놀이를 혼재시킬 수 있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것이 아니라 4시간만을 일하든지,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모든 영리 조직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의 경주와 같이 생산성 개선을 위해 한시라도 멈추면 경쟁에서 도태된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이 임직원에게 일과 놀이를 혼재하게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계속 악화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안정과 시민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가능성보다는 덜 희박해 보인다.
이러한 전환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인가는 알 수는 없다. 영화 ‘헝거게임’과 ‘인타임’에서 보여주는 혁명과, ‘엘릿시움’에서 보여주는 해피엔딩이 그 영화의 공상과학적 배경보다 더욱 공상과학스럽다. 현재의 과학기술과 양극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헝거게임’과 ‘인타임’ 혹은 ‘엘릿시움’과 같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과학은 인류를 위해 이바지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유지를 위해 이용될 것이다.
 
노령화는 사회를 보수화할까? 평생학습은 이를 막을까?
 
인류는 나이가 듦에 따라 보수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경험칙이다. 초장생사회에서 사회 전체의 보수화는 강화될 것인가? 아니면 기대수명의 증가에 따라 평균적으로 보수화가 되는 시기가 늦추어질 것인가?
노화에 따른 보수화는 기득권의 크기에 달려있기도 하나, 호르몬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개인에 따라 노화와 보수화의 상관관계가 다르기는 하나, 사회전체적으로 보수화되는 경향은 커질 수 있다. 반면 지속적인 학습은 보수화를 일부 완화시킬 수 있다.
초장생 사회는 상위 0.1%의 권력을 강화하는 주된 동력이 될 수 있다. 0.1%만이 초장생할 수도 있다. 이는 사회적 불안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드론으로 무장한 0.1%는 사회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자는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슈퍼 박테리아 개발자가 될 수도 있다.
극단적 종교와 자생적 테러조직의 화학적 결합은 0.1%만의 초장생사회에 커다란위협이 될 것이다. 이스터섬의 거인상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리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을 부족장 혹은 제사장은 현재 우리나라 사회의 0.1%과 닮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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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미래 실현을 위한 다섯가지 질문
 
미래는 불확실의 시공간이다. 불확실성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래는 가능성의 시공간이다. 현재에 갇혀있는 영웅들이 제대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미래다. 앞에서 거칠게 전망한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슨 질문을 만들어야 하나?
첫째, 나이와 연계된 제도가 무엇이며 그 유효기간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둘째, 다중가족의 출현에 대비한 가족의 의미와 사회적 안정망 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셋째, 평생 학습 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특히 지식의 융합성과 연합학문 지향성, 평생 학습체계에 대응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부 교육과 산자부 교육 체계의 통합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시스템을 개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틀을 찾아야 한다. 다섯째, 기타 초장생 사회가 가져올 다양한 위기와 기회를 찾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서 고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래에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바람직한 사회상과 시민의 모습을 구체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윤기영 퓨처리스트/에프엔에스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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