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생각] 코로나가 가르쳐준 미래 생존법 `성찰과 공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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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시작한 2020년대의 첫해도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날씨로 바뀌면서 북반구에선 오히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재확산되고 있다. 

박쥐를 거쳐 인간에게 넘어온 코로나19 바이러스(정식 명칭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2')는 올해 초 삽시간에 온 세상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금까지 확진자가 나온 나라가 215개국에 이르니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바이러스에 포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는 짧은 시간에 세상 풍경을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인간 문명에 가려졌던 자연을 다시 드러내 보여줬다. 잠시 돌아보자.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자 하늘이 맑아졌다.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인도 북부에선 200km가 넘는 거리의 히말라야산맥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공기가 깨끗해져 오히려 코로나 사망자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차량과 항공기, 선박이 멈춘 것은 인간에겐 큰 불편이었지만 땅 위의 동물과 하늘의 새, 바닷속 물고기들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유를 만끽하는 기회였다. 동물들이 숲에서 나와 도로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거북이는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알을 낳으러 해변으로 올라왔다. 차량 소음이 잦아들자 도심의 새 노랫소리도 나긋나긋해졌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스모그는 여전했다. 중국 전역에 걸친 강력한 이동제한 조처에도 수도 베이징에선 스모그 현상이 일어났다. 경제 인프라 역할을 하는 제철소, 발전소는 가동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이 기후변화 촉매제인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준 풍경이었다.

코로나를 통해 우리는 인간 문명이 실제론 얼마나 취약한지, 얼마나 큰 위험을 키웠는지 깨닫게 됐다. 덕분에 겸손을 배우게 됐다고나 할까.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상력사전'에서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지동설, 진화론, 정신분석학)을 꼽은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그동안 우리는 네 번째 사건의 주인공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일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외계 생명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인간과 지구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니 인간의 위상은 다시 한번 땅에 떨어지게 될 대사건이다. 그러나 정작 인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대사건은 먼 우주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선물해줬다. 


그건 인간과 자연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연결돼 있다는 건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보상이 될 수도 형벌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후자의 부메랑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유행 기간은 인간에겐 자숙하고 성찰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문명이 이룩한 도시화, 세계화가 코로나19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인간 욕망 충족을 위한 대규모 개발은 자연의 공간을 축소하고 인간의 공간을 넓혀갔다. 자연 세계에 머물러 있어야 할 바이러스가 그만큼 인간 세상과 가까워졌다. 땅속에서 나온 화석연료가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열대지역 모기 등 바이러스 전파자들의 서식지가 인구 밀집 지역인 북반구로 확장해 갔다.


이제 과학 또는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다. 과학의 본래 목표는 사물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지만, 과학자들은 거기에 멈춰선 안 된다. 과학의 성과를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도 촉수를 뻗어야 한다. 그에 따라 인간의 삶과 자연의 상태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후위기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데는 과학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 없었던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코로나19는 새삼 이런 부분을 생각하게 해준다. 코로나19엔 과학과 기술은 이제 번영의 도구에서 공존을 위한 성찰의 도구로 쓰임새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성찰엔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생각하는 윤리가 개입돼야 한다. 예컨대 기후위기 시대에는 화석에너지가 아닌 청정에너지 과학에, 개발이 아닌 보존, 소비가 아닌 절약에 기여하는 연구와 발견에 더 큰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75년 전의 핵폭탄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핵폭탄의 인류 자멸적 파괴력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하는 합성생물학, 인간 수준을 넘보는 인공지능 같은 꿈의 과학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인류의 미래에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지만, 인류를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영국 인류미래연구소 소장인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과학기술의 이런 위험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지난해 ‘취약한 세계 가설’(Vulnerable World Hypothesis)론을 펼쳤다. 지금의 과학과 기술 진보는 인류가 적절한 제어, 협력 장치를 가동하지 않을 경우 문명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그는 경고했다.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미래를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과 자연의 공존 법칙을 찾아내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안 해도 그만인 임의 선택이 아니라 미래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 사항이다. 과학기술 문명은 그동안의 번영을 무색하게 하는 후유증을 낳기 시작했다. 2021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큰 코로나 팬데믹, 갈수록 잦아지는 이상기후 등 2020년의 우리는 그 현장에서 살고 있다. 비뚤어진 것을 바로 펴는 데는 고진감래의 고통과 인내가 뒤따른다. 미국 기후과학자들이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한 것을 보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상당 기간 이익을 웃돈다. 연구진은 2100년까지 40조 달러 순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일단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데 성공하면 그 이후 100년 동안 인류는 수천조 달러의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는 인류가 공통의 이해관계자임을 일깨워줬다. 공존을 위해선 개인, 성장, 경쟁이 아닌 공동체, 나눔, 협력의 가치가 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인간 사이의 공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 나아가 미래의 잠재적 이슈인 지구와 우주의 공존까지 생각할 줄 아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뭔가를 나누고 서로 협력한다는 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것이 각성의 첫걸음이다. 나는, 내 가족은, 내 이웃은,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공통의 가치를 추려내다 보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미래의 길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공포감이 극심하고 기후변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논의를 시작할 적기다. 세계경제포럼이 28개국 성인 2만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6%가 코로나19 위기 전으로 돌아가기보다 이를 계기로 좀 더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방향으로 세상이 확 바뀌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현상을 유지하며 미래를 맞기는 싫다는 얘기다. 거의 열에 아홉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공통의 가치들을 어떻게 찾아 나갈까? 무수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지난하다고 하는 표현이 더욱 걸맞을 것이다. 우선은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시도해 볼 만한 논의 방식이 있다. 공론조사라는 것이다. 2019년 국회미래연구원이 ‘한국인의 선호 미래상’을 확인할 때 활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설문조사와 전문가 질의응답, 토론 등을 통해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좁혀가면서 공통분모를 추출해낸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안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얻고 궁금증을 해소하면 합의점을 찾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의견 수렴 방식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대의민주주의가 담아내지 못하는,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고 발상의 전환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해관계자들의 대결장이 돼 버린 기존 정치 시스템의 약점을 보완하는 한편으로, 일반 국민 개개인에겐 사회 일원으로서의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지방자치단체나 도시 단위로 이를 논의하고 실천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싱가포르가 이 방식을 활용하는 대표 사례로 꼽히는 걸 보면 도시 단위의 논의가 가장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코로나19 최대 감염국인 미국에선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몇몇 도시들이 벌써 ‘녹색 회복’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감염병 재발 예방 대책을 기후위기 대응과 연계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런 논의를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 단계 발전한 원격 화상 회의나 세미나, 강의 기술을 이용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간편하게 논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잘만 다듬으면 새로운 직접민주주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여의도 정치가 다양한 세력 간의 줄다리기 현실 정치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콘센서스 미래 정치다. 미래 정치가 활성화하면, 당장의 이해관계에 갇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 정치에도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원문보기(국회미래연구원. 2020.10.21.)

http://www.nafi.re.kr/nafi/story/contribution.do?mode=view&articleNo=1693


참고자료

미국 도시들의 녹색회복 계획

기후변화 비용과 이익 연구/플로스원 논문
핵폭탄에서 본 과학의 윤리
닉 보스트롬의 위험한 세계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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