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환자 취급, 조산원은 사람 대접 생생육아
2010.06.07 01:19 신순화 Edit
산모는 환자가 아닌 아이를 낳을 여자일뿐
금식·관장·제모·회음절개·마취 필요 없어
첫 아이를 산부인과가 아닌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걱정이 대단했다.
정기 검진을 하느라 다니던 병원에서는 원무과장까지 전화를 해서 나를 설득했었다. ‘가족분만도 가능하고 남편이 탯줄을 잘라줄 수도 있고, 음악도 틀고, 조명도 낮추고, 산모가 원하는 모든 서비스들이 가능한데 왜 무모한 선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맞다. 좋은 산부인과에 가면 예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다양한 출산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고, 출산과 산후조리까지 한 번에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도 있다. 그러나 병원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병원이 ‘산모에게 어떤 것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들을 하지 않느냐’이기 때문이다.
일반 산부인과에서 거의 대부분의 산모들에게 하는 것들을 조산원에서는 안 한다. 회음절개, 마취, 관장, 면도, 링거, 태아 감시 장치, 제왕절개, 하다못해 침대도 사용하지 않는다. 조산원에서 산모는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은 모든 산모를 ‘환자’로 간주한다. 그래서 환자와 똑같이 취급한다. 침대에 누워 링거를 꽂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언제든 수술이 가능하도록 모든 처치를 다 받아야 한다. 많은 산모들이 이런 대우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정말 당연할까?
산모는 환자일까?
다만 아이를 낳을 여자일 뿐이다. 환자에게는 의학적 처치가 필요하지만 아이를 낳을 여자에게는 숙련된 산파와 편안한 장소, 산모를 격려하고 안심시킬 수 있는 부드럽고 자연스런 도움만이 필요할 뿐이다.
첫 아이를 조산원에서 낳기로 하고 자연스런 출산을 위한 공부를 하는 동안 나는, 많은 산모들이 태교와 출산 준비물 등에는 엄청난 관심과 시간을 들이면서 정작 자신이 겪을 ‘출산’ 자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출산과 분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산모와 태아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들인지 알려고 하는 산모는 의외로 적었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출산’은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병원에서 다 알아서 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고, 산모 자신은 그 외의 일들만 신경쓰면 된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산모들은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출산과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아프고, 불편하고, 불쾌하더라도 당연하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병원은 수익 위해 빠른 분만에 초점
산부인과는 특히 그렇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병상의 회전마저 더디면 병원은 큰 부담을 안게 된다. 따라서 모든 산부인과에서는 분만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들이 취해진다. 출산에 동반되는 대부분의 조치들은 산모를 위해서라고 얘기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신속하게 분만을 끝내기 위해서 취해진다.
여자의 질은 정말 태아를 낳을 만큼 충분히 벌어지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다. 산모를 자연스럽게 두고 마음대로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진통을 하게 하면 대부분의 산모들은 아무런 절개를 하지 않아도 상처 없이 태아를 분만한다. 다만 산모의 몸이 충분히 이완될 만큼의 진통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산업화된 병원에서는 각각의 산모에게 이런 진통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병원이 원하는 것은 빨리 진통을 끝내고 빨리 분만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음을 절개하면 의료진들이 태아를 끌어내기가 한결 쉬워진다. 당연히 분만 시간이 단축된다. 회음을 절개하는 것이 출산을 순조롭게 한다고 병원에서는 얘기하지만 인위적으로 절개된 피부는 아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후의 부부생활에 적지 않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산원에서는 회음절개를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조산원에서는 결코 태아를 빨리 빼내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마다 나오는 시간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드물게 회음이 손상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찢어진 피부는 회복도 빠르고 부작용이 적다.
‘촉진제’를 안 쓴다
분만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병원에서는 자연스런 진통조차 촉진제를 써서 시간을 앞당긴다. 촉진제는 매우 강력한 화학 약물이다. 산모의 몸은 태아를 분만하기 위해 ‘옥시토신’이라는 출산 호르몬을 만들어 낸다. 촉진제는 인공 호르몬이다. 산모의 몸에서 만들어진 호르몬은 출산의 모든 과정을 산모가 견디어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돕지만 촉진제는 분만 과정을 일부러 빨리 진행시킨다. 당연히 산모들이 겪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불쾌감이 크다.
촉진제가 산모의 몸과 정신, 그리고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독한 약물에 취해 있다면 그 아이의 육체적·심리적 건강에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출산은 결코 ‘촉진되어야 하는’ 과정이 아니다. 모든 산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누려야 한다. 이 과정이 결코 약물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수술을 위한 처치들을 하지 않는다
관장을 하고 면도를 하고 금식을 하고 링거를 꽂는 것은 환자들이 수술을 받기위해 받아야 하는 예비 처치들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모든 산모들에게 이런 처치를 받게 한다. 잠재적 수술 환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산모들까지 물 한모금 맘대로 못 먹으며 고통스럽게 진통을 하고 출산을 한다. 조산원에서는 이런 과정들이 없다. 산모들이 느끼는 갈증이나 허기는 자연스런 욕구로 받아들여진다. 인위적인 어떤 처치들도 가해지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산모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다. 사소한 욕구들이 존중받고 받아들여지는 환경이라면 분만도 훨씬 더 편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침대를 쓰지 않는다
침대란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다. 따라서 침대는 의료진들이 의료적 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산모가 침대에 누운 순간부터 산모는 환자로 간주된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산모를 순식간에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산모는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진통은 더 힘들어지고, 출산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간다. 자연분만을 결심한 산모라도 침대에 누워 힘들게 진통을 하다보면 쉽게 수술을 해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조산원은 산모를 마음대로 움직이게 한다. 산모들마다 자신들이 편한 진통의 자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통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대부분의 산모들이 쉽게 아이를 낳는다. 병원에서의 출산이 어렵고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진통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엎드려서 진통을 하는 것이 편한 산모가 있고, 서서 진통하는 것이 좋은 산모가 있다. 진통의 자세와 시간은 산모마다 다 다르다. 이런 다양성과 개별성이 병원에서는 결코 인정 되지 않는다. 병원은 산모가 중심이 아니라 의료진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신생아실이 없다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낳는 그 순간부터 엄마 곁에 있게 된다. 조산원을 나올 때 까지 엄마와 아이는 내내 같이 지낸다. 병원에서는 왜 신생아실을 운영할까. 효율성 때문이 아닐까? 신생아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아야 관리하는 인력도 적게 들고 산모들의 입원실도 더 확보할 수 있다. 결코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아이는 엄마 곁에 있어야 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젖을 물리고 서로 눈을 마주쳐야 엄마와 아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애착이 생겨난다. 애착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 이후의 육아도 편하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지내며 수시로 젖을 물려야 모유수유도 잘 이루어진다. 생의 첫 시간, 첫 날들을 엄마와 같이 지내야 아이도 엄마도 서로에게 편하게 길들게 되는 것이다. 현대 산업화된 병원은 아이와 엄마 사이를 더 어렵고 멀어지게 한다.
물론 반드시 병원이 필요한 산모들도 있다
그러나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특별한 의료적 개입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출산이 산모와 태아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다. 행복한 첫 출산은 둘째와 셋째까지도 결심할 수 있게 한다. 내가 그랬다. 첫 아이를 낳았던 경험이 너무나 좋았고 감동스러웠기에 둘째는 집에서 낳을 결심을 할 수 있었고, 늦은 나이에 셋째 아이까지 낳도록 나를 이끌었다.
산모와 태아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조산원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은 수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산모 개인의 감정과 상태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다. 조산원 출산에서는 산모와 태아가 중심이다. 조산사들은 말 그대로 조력자들일 뿐이다. 그들은 세심하게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살펴가며 분만을 진행한다. 의료적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산모와 태아가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으로 분만이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간다.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
아이는 병원에서만 낳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출산 방법을 얘기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사회라야 진정으로 모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아이를 낳을 여자라면 태교와 출산준비물을 챙기기 이전에 어떤 분만이 더 안전하고행복하며 자연스러운지를 찾아보기를 바란다. 당신의 가치관과 철학과 감정을 존중받을 수 있는 분만이야말로 당신과 당신의 아이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
산모와 태아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당당하게 주장하자.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고, 알아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런 산모들이 많아져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늘어나야 우리의 미래가 밝아진다.
(다음 회에는 조산원에서 낳은 첫 아이의 출산기를 중심으로 조산원에서 아이 낳는 일을 더 자세하게 풀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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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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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분만 경험이 풍부하고 예후가 좋은 조산원이라면 위급상황시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산모의 병력이나 현재 건강상태, 태아의 상태등을 면밀히 살피고 관찰합니다. 병원 출산이 반듯히 필요한 산모라고 판단되면 조산원 출산을 권하지도 않구요.
제가 아이를 낳았던 조산원은 올 해로 10년째 운영되는 동안 1500명이 넘은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사고는 한건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바로 앞에 있는 대형 산부인과와 협력관계에 있습니다.
제대로된 조산원이라면 분만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어가는지 파악해서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합니다. 언니분 사연은 매우 안타깝고 가슴아프네요. 그러나 병원도 결코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사나부인과에서 15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조산원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사고를 당합니다. 다만 병원에서 일어난 의료사고는 대부분 산모와 신탱아의 탓으로 돌려진다는 차이가 있지요. 모든 산모를 환자로 취급하고 수술실에서 분만을 하게 하면서 병원은 집이나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비해 태아에게 진통과 분만의 고통을 줄 확률이 6배, 난산이 될 확률이 8배, 소생술을 필요로 할 확률이 4배, 감염증에 걸릴 확률이 4배, 일생 동안 장애를 지니게 될 확률이 30배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 Confession of a medical heretic. 의학박사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산모도 다량의 출혈로 위험에 빠질 확륭이 3배나 높습니다. 이런 정보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조산원에서 의료사고가 나면 바로 뉴스가 되지만 병원에서 수없이 나는 의료사고들은 뉴스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병원은 결코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위험에 대한 대비는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는 위험만 너무 강조되어 병원이 필요없는 산모들까지 병원출산을 선택함으로써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더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이 사회는 더 많은 진실들이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건강한 산모라면,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산모들이라면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자유롭고 편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언해 주신 내용은 지극히 합당하고 옳은 말씀입니다.
바른 조산원이라면 무엇보다도 그런 상황에 대한 준비와 연계를 잘 해 놓아야 합니다.
덧글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 좀 더 넓게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더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들의 실수나 잘 못은 그렇지 않은 집단들의 실수나 잘 못에 비해 단단히 비밀스럽게 감춰지는 시스템이지요. 병원이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이라면 조산원은 그렇지 않은 집단이라고 보면되겠지요. 사실 정상적이라면 대부분의 임부들이 생태적인 출산 기관인 조산원에서 출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임부들만 병원에서 출산하면 될 것인데 그렇게 할 경우 병원 운영에 타격이 클테니 오래전부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정상적인 임부들마저 병원 출산을 하도록 병원 집단이 조치를 취했고, 조산원과의 협력도 아마도 제 생각으로는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조산원이 점점 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병원에서 아이를 조산으로 낳고 그 아이를 난지 두 달 만에 잃었습니다. 그저 운명이라 받아 들였지만 당연하다 받아 들였던 수 많은 초음파 검사와 신생아집중실에서의 공격적인 치료 등으로 개입이 개입을 불러들이는 현대 병원시스템에 과연 내 아이의 죽음이 연관이 없을까 의문을 품습니다. 생태적 철학이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만 저는 출산에 있어서 더더욱 생태적인 가치관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순화님의 이런 노력들을 크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지금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내 아이가 보다 정당한 사회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더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도 있어요.
위급상황의 경우.... 조산원에서는 수술을 못하잖아요.
수혈도 안되고...
제 언니가 조산원에서 첫 아이 낳다가 아기가 출산 직후에 숨졌어요.
아기 머리가 빠져 나오지 않는 걸 계속 잡아 빼다가...결국엔...
위급시엔 병원으로 바로 옮겨야 하는데 조산원에서 계속 할 수 있다고 하더래요.
첫아기 낳는 엄마아빠는 그 말만 믿다가 결국 큰 일이 난거죠.
조산원 출산 하려는 이들은 위급 상황이 자신에게 생길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하시기 바래요.
근처 큰 병원 연락처도 알아놓고, 상황이 안좋을 경우 너무 조산사만 믿지 말고 바로 병원에 연락하세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