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끼리 전철에 모험 싣고 고고씽! 생생육아

8b7487b25b9ba84ff869b219a3e4c5c9.



주말이 되면 필규는 3학년, 6학년인 사촌 형아들과 전철 여행을 떠난다.

전철을 타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 돌아다니다가 다시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이 여행은 두 사촌

형아들이 먼저 시작했다.



용인에 살고 있는 조카들은, 처음엔 엄마와 같이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고 남산이며 경복궁 같은

곳을 전철로 나들이한 것이 계기였다.

엄마와 갔던 곳을 자기들끼리 가보고 싶다고 나섰던 것이 시작이 되었다.

자신이 붙은 현기와 준기는 그 다음부터는 자기들이 가고 싶은 곳을 정해 노선을 확인하고 하루 종일

전철을 타고 다니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용인에 사는 두 아이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전철이 있는 곳까지 와서  각자의 교통카드를 목에 걸고

주머니엔 전철 노선도와 점심값 등 약간의 용돈을 챙겨 다니곤 했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전철 여행이 쌓여가자 자연히 모험담도 늘기 시작했고 이 여행을 지지하는 사람

들도 늘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전철을 타고 다니다가 부평에 계신 외할아버지 댁에 들르기도 하고, 과천에 사는 큰 이모

집에 가기도 했다. 물론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다시 전철을 타러 나서기도 했다.

이모들이 격려를 보내고,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칭찬을 아끼지 않자 두 형제의 전철 여행은 한층

탄력을 받아 모든 노선을 아우르며 어떤 날은 하루 열 시간도 넘게 돌아다니는 강철 체력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 내리는 역에서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가방을 놓고 내리기도 하면서도 두 아이

는 신통하게 잘 다녔다.

기억력이 비상한 현기는 전철 여행에서 돌아오면 지나간 모든 노선과 경유지를 일기장에 깨알 같이

옮기며 정리하고 있다. 둘이 다니던 이 모험에 현기의 절친 승훈이가 합세하면서 셋으로 늘었는데

나는 은근히 이 모험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필규도 같이 다니면 참 좋을 것 같았다.



필규는 처음엔 망설이기도 했지만 첫 여행을 잘 다녀오면 갖고 싶어하던 팽이를 선물해 주겠다는 내

제안에 날아갈 것처럼 기뻐하며 형들과의 전철 여행을 시작했다.

세 아이들이 용인에서 버스와 전철을 타고 대야미역으로 와서 필규를 만나 같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대야미역에서 4호선을 타고 경마공원부터 들르는 것으로 시작해 선릉을 돌아보고 암사동의

유적지와 석촌의 유적지를 거쳐 동대문 역사 박물관을 가보는 코스를 선택했다.

여덟 살인 필규는 아직 어리다고 주변에서 염려가 많았지만 네 아이는 웃으며 집을 나섰던 것보다

더 신나는 얼굴로 오후 일곱시가 넘어 다시 대야미 역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은 식탁에 앉아 다녀온 곳의 이야기를 하고, 전철에서 만난 사람

들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네 아이의 두번째 전철 여행은 대야미역에서 김포공항까지 이동해서 공항 직통 전철을 타고

인천공항까지 다녀오는 대장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부평에 계신 외할아버지 댁에 들러 간식도

먹고 용돈도 받아 또 여기 저기를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대야미역으로 돌아왔다.

필규는 공항 전철 시설이 아주 근사했다며 즐겁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음엔 전철로 천안에도 가보고, 화랑대역에도 내려보고, 동두천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휴전선 근처

마을까지 가보고 오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직 아이들이 탐험할 곳은 무궁무진했다.



 이 네 아이의 모험이 성공적인 이유에는 절묘한 아이들의 조화가 있다.

리더격인 현기는 시간과 돈을 관리하는데 철저하고 부모님과 의논한 규칙을 지키는 일에 소홀함이

없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일을 좋아하고 기억력도 좋아서 세 아이를 이끌어가며 하루의

일정을 관리하는데 뛰어나다.

현기의 절친인 승훈이는 체격도 좋고 유머도 있어 현기와 중심을 이뤄가며 동생들과 함께 한다.

3학년 준기는 네 아이 중 가장 장난꾸러기다. 다른 아이들을 가장 많이 웃게 하면서도 엉뚱한 돌발

행동으로 팀의 활력을 불어 넣는다. 막내 필규는 준기보다 형아들 말을 잘들어서 큰 형들의 귀여움

을 받는다. 장난 칠때는 준기와 찰떡 궁합이 된다.

이 네 아이는 언제 간식을 먹을지, 어디서 무얼 볼지, 점심은 어떻게 해결할지 의논을 하고, 과정에서

생기는 소소한 갈등들과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가며 돌아다닌다.



어린 시절에는 모험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손을 떠나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직면해보고, 스스로의 일정을 정해 자기들

끼리 그 일정을 따라가며 마주치는 낮선 풍경과 상황에 기꺼이 뛰어들어 보는 일...

이 또한 멋진 모험이다.



모험이 모험다우려면 새로운 장소와 풍경, 그 곳에서 처음 해보는 일들이 필요하다.

설레이고, 떨리고, 걱정되고, 뿌듯하고, 만족스럽고, 아쉬운 모든 감정들이 모험 속에 있어야 한다.

네 아이들은 매 주마다 새로운 목적지를 정하고, 새로운 역에 내려보고, 전철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번도 똑같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다 온다. 때로는 지루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즐거운

일이 생기고 다시 떠나고 싶어지는 여행을 만나고 오는 것이다.



아직도 저 혼자서 집이 아닌 곳에서 자고 오는 일을 두려워 하는 필규다.

사촌 형아들을 퍽이나 좋아하지만 저 혼자 용인에 가서 형아들과 지내다 오는 일은 못한다.

내가 꼭 있어야 한다.

그렇게 엄마를 의지하고, 저 혼자 떠나지 못하던 아이가 형아들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종일을

돌아다니다 저녁 늦게 돌아온다. 그것도 즐겁고 신나는 얼굴로 돌아온다.

다음주에 또 갈 것이라면서 웃는다.

남편과 나로서는 퍽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에서는 두 여동생의 오빠로서 늘 맏이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부담이 불편하고 억울하고 싫었던 필규는

형아들 사이에서 제일 막내가 되어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하고, 조르기도 하면서 맏이의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전철역에 있는 뽑기 기계에서 뽑기도 해보고, 늘 소원인 음료수 자판기에서 캔음료도 사 먹어보고,

식당에 들어가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켜 점심을 먹는 일도 필규에겐 신나는 자유일 것이다.

부모의 통제와 간섭을 떠나 저를 묶어두던 작은 금기로부터 조금 풀어져 보는 일... 그 또한 필규에겐

설레는 모험이다.



상관없다. 일주일에 한 두번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 먹는다 해서, 형아들과 함께 뽑기 기계에 돈을 넣어본다

해서 안될 게 뭐 있나. 과하게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모른척 눈 감아주고, 가져온 전리품을 같이 좋아하며

반겨주면 되는 일이다.

그런 즐거움들이 여행과 모험을 더 기대하고 즐겁게 한다면 그 또한 좋다.

믿어주고, 인정해 주고,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적당한 선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모든 과정들에 다 성장이 있다.

다녀와서 제가 거쳐간 곳들을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은근슬쩍 공책에 적어보면 어떨까 하는 내 제안도 바로 무시해 버렸지만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제 겨우 여덟살 아이가 하루 종일 저보다 큰 형아들과 즐겁고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머리는 기억을 하지 못해도 필규 몸엔 다녀온 거리가, 풍경이 모두 새겨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언제고 필규가 원할 때 제 것이 될 수 있는 살아있는 경험들이다.



전철여행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기차 여행도 꿈 꿀 수 있겠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우리 나라 어느 곳이라도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아이들이 더 크고 여행의 이력이 늘어나면 ‘1박2일’처럼 낮선 곳에서 하룻밤을 자며 여행을 할 수도 있으리라.

이제 초등학생들인데 앞으로 남은 수많은 여행들은 다 헤아릴 수도 없다.

자기들끼리 떠나는 일이 두렵지 않으면 이 아이들에게 온 세상이 다 모험과 여행의 장이 되리라.



 기쁘고 부러운 마음으로

나는 이 네 아이의 멋진 모험과 여행을 기꺼이 지켜보고, 응원하고, 열심히 후원해 줄 생각이다.

가상의 공간보다 직접 부딛치는 현실을 더 좋아하고, 머리로 하는 일보다 온 몸으로 겪는 일들을 더 아끼는

이 아이들의 건강함이 고맙고 대견하다.

언젠가는 이 여행에 윤정이와 이룸이가 동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필규, 윤정, 이룸이의

전철 여행도 가능하리라.

스스로 떠날줄 아는 아이, 그 길에서 즐거움과 모험을 찾을 줄 아는 아이들로 자란다면 참 좋겠다.



한창 먹어대는 아이들 밥 챙겨주는 일도 만만치는 않지만 아무쪼록 이 아이들의 즐겁고 신나는

전철 여행이 세상을 알아가고 자신을 알아가는 더 큰 여행으로 커가며 오래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Recen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