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선원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인터뷰

 

방위산업에 대한 MB 정책은

'비지니스 호스틸리(hostily)'

 

 

-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은 국방 자체의 논리보다 경제 우선주의 시각에서 재단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정부의 재정압박으로 인해 국방비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선진 강군을 건설하기 위한 우리 군의 국방개혁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역설적으로 경제논리로 군 개혁을 하는 것이 군으로서도 편한 점이 있다. 원래 우리 군의 주된 생각은 ‘육군 위주’, 즉 ‘전통적 전력’으로 가자는 것 아닌가. 첨단 전력보다 전차와 자주포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현 정부에서 군은 아마 처음에는 경제주의자들이 군에 예산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실질적인 군 개혁을 위해서는 ‘육군 감량경영’이 요구되니까 그거 보다는 차라리 군 예산을 조금 덜 주더라도 육군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편하고 좋다는 생각을 가질 런지 모르겠다.

어차피 국방개혁이라든지 우리 군의 방위력목표를 잠재적인 외국의 위협으로까지 확대해서 볼 거냐 하는 문제는 청와대 차원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군으로서는 그냥 북한만 상대로 재래식 전력을 억제하면 된다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이미 억제가 되고 있으니까 어차피 새로운 투자가 필요 없다. 군에게 경상비만 제대로 주고 1%든 3%든 경상비의 낭비적 요소가 있거나 경영합리화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이를 수용해서 털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상비를 우선시하고 돈이 없으면 방위력 개선사업에 돈 안 쓰겠다는 현상유지를 하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

국방의 미래라든지 방위력 발전방안, 최소한의 방어적 억제력 및 방위충분성 확보는 보다 원대한 국방 선진화의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고, 당장의 군사력 운용은 예산 사정에 따르면 그만이다. 결국 2020년까지 선진정예군 건설이라는 도전적인 목표와 비전이 현실논리에 함몰되는 그런 국방의 기조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주변 안보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찍이 노무현 정부에서도 2005년에 ‘포괄적 대북 경협’에 대한 로드맵이 나왔고, 한반도 비핵화라든지,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시대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과 로드맵들이 있었는데요, 이것은 당시 이런 각론들은 어떤 총론적 모멘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까?


2003년과 2005년에 국방개혁방안을 수립하고 군구조개편, 방위력 증강, 경량화 및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방위력 충분성 확보를 위해 중장기 국방개혁2020 안을 정립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국방노선, 즉 우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힘이 정립된 것이다. 그런데 국익이란 국방력으로만 관철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만 빼고 주변국이 다들 우리나라보다 크고 힘센 나라 아닌가. 그래서 참여정부 당시에 ‘동북아 경제공동체’, ‘동북아 시대 중심국가론’과 같은 의제로 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중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의 대미외교는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내라’는 것에 공을 들였다. 본래 노 대통령님의 생각은 자신의 ‘동북아평화번영’구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중국하고도 협력적동반자 관계를 지속하고 일본하고는 역사 문제를 해결 할 때까지는 일정한 긴장을 감수하면서 일본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촉구하여 일본이라는 국가의 본성에서 평화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외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과 일시적인 긴장을 감수하면서 그렇게 간다는 것은 미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충분히 설명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너희도 어차피 대선이니까 우리도 남북관계에서 급격한 진전은 일시유보 하겠다. 그 대신 재선에 성공하면 적극적으로 핵문제 해결에 나서라. 그래서 6자회담에 진전이 있도록 하면 우리가 그 과정을 보완하고 지원하여 상호강화(mutual inforcement)를 이루어 가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2004년 태국에서의 탈북자 대량유입 문제로 남북관계가 나빠지기도 했으니까. 이것은 남북관계를 통해서 북한이 좀 더 많은 교류협력을 갖고, 남북관계에서 평화지향적 사고를 갖게 하는 방향으로 가면 북한이 핵 포기로 가는 데 긍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독특한 우리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가기로 했다. 전 세계적 국제안보 문제에서는 미국의 의견을 존중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문제와 북한 핵 문제는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경청하는 한미 협력 강화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를 100% 수용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수긍했다. 결국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평양에 가서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9.19공동성명까지 나오게 했다. 이 흐름이 북미 관계 발전, 남북관계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 핵문제 진전에 이어 정상회담 때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결국 ‘동북아 경제중심’ ‘동북아 시대’라는 것에서 본 ‘북방경제에의 진출’이다.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공세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경제 범위를 북한과 중국으로 확장하여 북한이 우리 경제권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구상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보고서(대북지원 로드맵)가 전면적으로 나왔다.


- 우리가 나름대로 공존번영의 밑그림을 가지고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전방위적 외교를 했다고 하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 직후부터 북한의 마약과 위폐문제가 터지면서 외부 환경은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2006년 핵실험 당시까지 이런 어려움이 쭉 지속되면서 우리가 준비한 대전략을 구체화하기에는 상당한 시련과 도전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9.19공동성명이 있었으나 곧 BDA 문제가 나왔다. 이 원인제공은 북한에 있었던 반면 이를 다루는 부시 행정부는 외교의 지휘통제가 분명한 속에서 대북전략이 구상된 게 아니고 온건파는 온건파 대로 강경파는 강경파대로 각기 북한과 대화하거나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노선이 뚫고 가기에는 미국과 북한의 대립이 너무 격화되어 어려운 상황까지 갔다. 

마약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호주 봉수호 사건 이후에는 마약 건은 줄었다. 그 후로 슈퍼노트가 발견되었는데 미국은 이것이 점점 진화하고 있는 중이고 이는 국가가 만들지 않으면 못한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적어도 판매․유통망에 있어서는 북한 사람들이 빤히 관여하는 것이 포착되어서 우리 입장에서는 ‘단속하지 말라’는 말을 못했다.

‘북한이 위조지폐를 제조하느냐는 문제는 일단 대화의 틀 안에서 그 문제도 다루자’는 것이었다. 핵문제에 대해서는 북한과 대화하면서 위폐 문제로 북한을 두들겨 패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결국 2006년 핵 실험 전까지는 온갖 난관 속에서도 남북관계가 유지되고 조금씩 확대되었다. 우리는 ‘평화의 안전장치’로서 남북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남북관계를 포기해 버린다면 제3, 제4의 위기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기 상황에서 누가 한번도의 안전을 보장해 주냐. 우리밖에 없지 않나. 여기에서 우리가 포기해 버리면 미국 강경파가 북한을 공격하고 그에 따라 북한은 반사적으로 대응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북한 양쪽에 끼어서 답답하긴 했으나 남북관계는 유지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그러나 2006년 8월에 남북 장관급 회담이 깨졌는데, 바로 이 때 북미 관계도 위기곡선을 그렸다.

한편 일단 한일 관계가 쉽지 않았고 북핵문제 진전도 없고, 일중 간에도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은근히 일본 편에 서려고 했지, 동북아시아의 큰 틀에서 좋은 방향으로 이 문제를 관리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동북아 평화번영 질서로 가야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동북아 평화구상이 진전되지 않자 노 대통령께선 크게 낙담 하셨다.

그 와중에 2006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 했다. 그런데 그전에 대통령님이 일본을 어떻게 보고 중국을 어떻게 보는지, 또 한미 관계에 대해서 소신을 좀 더 분명하게 얘기했다. 때문에 한미 관계도 상당히 좋았다. ‘일본의 역사 인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태평양 전쟁 발생의 원인 문제니까 미국도 이 논의 밖에 있지 않다. 미국도 이를 바로 보고 일본의 동맹국으로서 더욱더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역사 인식을 갖도록,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보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중국이 기본적으로 국력이 커지지만 이것이 객관적으로 주변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대화와 이해를 넓히면서 중국이 건설적으로 가도록 끌고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중국을 좋아 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노이에서 한미정상회담을 할 때는 부시가 중간선거에서 지고 왔는데, 이때는 조금 더 우리 쪽 말을 경청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미․일 세 정상이 만나 동북아 평화번영,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해 짧지만 아주 농도 있는 대화를 했다. 


- 그런데 당시 그러한 노 대통령의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는 큰 그림을 보수언론과 야당은 ‘아마추어’,니, 낭반적 ‘자주’니 하면서 한미동맹이 악화되었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오바마가 중국을 방문한 직후 여기에 자극을 받은 조선일보의 사설을 보면 “대미 의존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고 동북아라는 큰 틀에서 국가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선일보의 주장은 노 대통령이 주장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의 핵심 논거 아닙니까?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도 G-20 회담을 유치하고 나서 ”이제 한국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도약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다 했던 말입니다. 표현까지도 비슷합니다. 결국 동북아시아의 외부 환경이 좋아지니까 현 정부나 보수층도 어쩔 수 없이 노 대통령이 준비했던 큰 그림을 따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모든 국가와 다 좋게 지낸다면 좋겠지만 결국엔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준비된 철학과 전략이 없었고 이명박은 중구난방으로 갔다.(이 대목에서 박선원 박사는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하지 말고 ‘이명박’이라고 표현해 달라고 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다보니까 자신들도 뭔가 다른 걸 하려고 했으나 지쳐 버리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의 큰 구상에 흡수되는 것 같다. 


-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 환수한다는 것이 당시 동북아 공존과 번영의 질서라는 큰 밑그림과 동시에 거론되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전작권 하고 동북아 평화 공존질서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통해 주권을 확립하는 것이 정전체제 해체-평화체제 확립의 기본조건이라고 봤다. 이런 점에서는 포괄적으로 통합이 되어 있다. 2006년에 전작권을 합의할 때 합의문에는 ‘2009년 2012년 사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012년으로 윤광웅-럼스펠드 간에 합의가 있었고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2006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였다. 뒤에 김장수 장관이 부임하여 2007년에 미국에 가서 2012년 4월로 최종합의를 본 것이다. 이런 부분을 북한조차도 처음에는 ‘남측의 자주국방이 뭔가 왜 저렇게 하는 가’라고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우리 설명을 듣고 이해하더라. 결국 모든 지향점은 평화체제로 모이게 되어 있었다.


- 극단적인 경제주의적 시각을 가진 이명박 정부는 남북 군사력을 다 싫어하는 듯합니다. 특히 육해공군이 너절너절하게 작전무기를 사들이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경제주의자들은 혐오의 감정까지 드러냅니다.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방위력 개선비  20%를 깍아도 된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나, 거액의 비자금을 찾는다고 방위산업체를 수사한다든지,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재래식 무기 감축’을 언급한 일 등, 전통적인 보수진영 내에서도 경제주의자와 안보주의자의 ‘불편한 동거’가 보여 집니다. 이런 갈등이 지난 8월에 이상희 장관과 장수만 차관 사이의 ‘하극상 논란’을 일으킨 편지 사건의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호모 이코니믹스와 호모밀리터리쿠스라는 유전자 전쟁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장수만 차관의 처신은 하극상 맞다. 군내 서열로 보면 장수만 차관은 10위 정도 된다. 그래서 방위력 개선사업은 차관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크게 보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청와대가 하는 거다. 차관이 할 수 있는 건 경상비 부분인데 방위력 개선을 장수만이 어떻게 하나. 국방부에서 잔뼈 굵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어떻게 숫자로 3%만 개선한다 해도. 중장기 사업은 이미 못이 박혀진 거라서 이미 전전년도부터 예산이 깔려 온 거다. 그걸 차관이 수정할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차관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들어가서 한다면 그건 하극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방위력개선사업에 대해 보고받을 때 가장 기뻐했었다. 우리 군의 전력이 어떻게 향상되는 지 구체적인 목표나 성과를 보고받을 때는 아주 흡족해 하면서 즐거워했다. 공중우세 확보를 위한 전투기 도입, 해상 통제력 강화를 위한 이지스함이나 독도함 도입, 그 외에도 군 전력이 선진화된다는 것은 자주적 방위력을 확보한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자주국방을 구현함으로써 동북아의 중심국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방위 산업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적 국방의 핵심은 자주적 방위산업’이라고 하셨다.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정확한 통계는 현재 없지만 당시 조사를 해보니 방위산업 생산력의 60%도 우리(정부)가 사주지 못하고 있었다. 40%가 유휴시설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방위산업이 리베이트로 떼돈을 번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만성적 적자 상태였다. 이런 산업계의 애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수출 촉진이 필요했기에 방위사업청, 산업자원부 하고 방산협회 등이 참여한 방산수출진흥위원회를 만들었다. 내가 그때 간사였다. 방위산업체가 많은 흑자를 내야 신기술․신무기를 개발할 투자여력을 갖게 된다. 방위산업체의 탄탄한 사업기반을 지원하는 것은 자주국방과 직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출산업이기도 하다. 물론 일부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는데 그것과 리베이트는 다르다.


- 현 정부가 편집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찾아봐도 안 나오면 더 세게 수사하고, 그래도 안 되면 세금 때리고...


찾는 게 업계랑 정책담당자 요 두 가지 아닌가. 정책담당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면 조사를 해야지. 그런데 국방비도 안올리고 새로운 방산수출 방향도 정하지 않고 업계만 조지면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아니라 ‘비즈니스 호스틸러티(hostility, 적대시)’ 아닌가.


- 이제 보즈워스 대사의 북한 방문이 임박해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이번 기회를 제대로 살려 새로운 공존과 평화의 질서로 나갈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떤 감회를 느끼십니까?


참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2000년에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이 실현 직전에 무산된 이후 한반도는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 10년을 왔다. 미국 대북정책의 영향력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오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 줬다. 내가 부시 정부와 일하긴 했지만 정말 이가 갈린다.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방위력 개선을 해서 대(對)주변국, 대(對)북 방위역량을 갖춰 나가고 있는데 북한에 핵무기 선물한 것이 사실은 미국이다. 지금이라도 보즈워스가 가서 포괄적인 협정을 맺는다면 이번에는 정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핵 폐기의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도 직접 로드맵을 만들어 주고 그랬다. 희망은 있지만 그 사이 9년 동안 우리가 미국 일방주의 속에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외세’라고 하면 또 나한테 색깔론이 들어올 테지만 외부의 그 정책노선 하나로 비핵화도 늦어지고, 평화체제도 늦어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어렵게 이룬 남북정상회담과 대북포용력 조차 깡그리 부정당하는 원인을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제공한 것이다.


- 그래도 보즈워스의 이번 방북이 핵문제 진전의 선순환을 이루기에 더 좋은 조건 아닌가. 이미 모 언론사에서는 여권 실세인 임태희 의원(현 환경노동부 장관)과 북측이 만난 것으로 보도하는 등 현 정부와 북측 고위층 간 빈번한 물밑 접촉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은 속도를 내고 싶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위급으로 속도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공전술로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미국도 잘 안다. 자기들은 속도를 좀 내고 싶은데 남북․북일 대화가 좀 따라 와 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일본이 북한에서 던지는 것을 받아먹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선미후남(先美後 南), 북한 입장에서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당사자 원칙’ 같은 주장을 안 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씨도 그걸 용인하는 게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 그래서 끈은 이어 가는데 물지는 않는 식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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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