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방전략대학원에 열정을 불사르는 김형태 한남대 총장 인터뷰

 

 D&D Focus 2008년 12월호


국방전략대학원은 국방 선진화를 위한 지식의 메카

국방과 대학의 그 자랑스러운 만남


대담 김종대 편집장

정리 박수찬 기자


국내 최초로 안보정책학과(1998년), 국방획득관리학과(2003년)를 신설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은 올해 동문 중에 13명의 장군 진급자를 내는 경사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한남대에 따르면 삼군 사관학교를 제외한 전국 국·공립, 사립대를 통틀어 최대인원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국방 연구교육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는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기자가 한남대를 방문한 11월 18일은 김형태 총장(62세)이 취임한 지 꼭 8개월째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국방과 국방전략대학원의 미래상을 듣기 위해 기자는 김형태 총장과 장시간의 인터뷰를 가졌다.

총장실에서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는 이승철 국방전략대학원장, 김종하 주임교수가 배석했다.



사색하는 행동인, 행동하는 사색인


신앙과 교육의 만남.

일찍이 대전 지역에서 미국 선교사들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함께 학문이라는 도구를 통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고자 세운 교육기관이 한남대학교다. 총장실이 위치한 대학 본관인 린튼 기념관은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교가 설립될 당시 맨 먼저 지어진 건물이다.

초겨울, 낙엽이 창문을 때리는 이 고색창연한 기념물 앞에 서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선율이 들리는 것 같았다.

김형태 총장은 훤칠한 키에 수더분한 얼굴로 기자 일행을 맞이했다.    



● 총장님,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창간된 지 약 1년 된 신생언론입니다만 이 분야에서 유일한 전문지입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김종하 교수는 저희 잡지 자문위원이시구요. 항상 총장님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뵙기를 앙망했는데 오늘 이렇게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요새 많이 바쁘시죠?


1만5000명 학생들, 10개 단과대학, 7개 대학원, 4개의 부속교육까지 함께 사니까 항상 일도 많고 바이탈러티(Vitality, 생명력)가 있습니다. 생기발랄하고 예측하지 않은 일이 날마다 일어나기도 하고 그래서 바쁜 것인데, 그것은 기쁨이고 재미있게 생각합니다.


● 오늘이 취임하신지 8개월째 되신 날이시더라고요. 3월 18일 날 취임을 하셨으니 오늘이 11월 18일입니다. 아마 정신없이 지내신 시간이었을 거 같은 데요.


네 시간이 빨리 빨리 지나간 것 같네요.


● 아무래도 학교 동문 출신의 총장이라는 의미가 클 것으로 봅니다.


저희 학교가 이제 설립된 지 52년째 됐습니다. 저희 학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로 처음에는 조그마한 물리과 대학으로 시작해서 이제 양적으로 많이 커졌죠. 52년 만에 모교 동문 출신으로 첫 총장이 되었는데 이미 저희 대학 말고 다른 대학에서는 저희 대학출신 총․학장이 11명이 나왔어요. 근데 요즘에는 형광등 위가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모교에 총장이 늦게 나온 감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축하도 많이 받았지만 다른 총장과는 남 다른 것이 있어야 되겠다는 책임을 느낍니다.


독실한 신앙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겸비한 김 총장은 평생을 모교발전과 교육에 바쳐왔다. 인간의 본성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하는 사색가, 교육에 팔 걷어 부치고 헌신하는 사회사업가로서 그는 행동가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앙리 베르그송의 명언 “사색하는 행동인, 행동하는 사색인”은 언어와 행실의 균형을 추구하는 김 총장의 모토다.

그래서인가? 김 총장의 말은 대단히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뛰어나다고 느껴진다.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맑은 물처럼 영혼을 적시는 힘을 발휘한다.

   


유달리 남다른 지역 사랑


● 부임 하시고 나서 학교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전략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희는 기본적으로 창학 정신을 재확인하자.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 즉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전으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 학교를 세울 때 선교사들이 헌금을 가지고 와서 학교를 짓고, 직접 교사도 하시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국가에 헌신하는 것과 애국심을 깊이 새겨줬거든요. 발전이란 어디로 이동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초심을 다시 재정립하고 거기에 충실한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졌습니다.

저희 학교의 입지 면에서 봤을 때 저희 학교는 2가지 트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 정신에 보다 충실하자. 교단 총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정신적으로 헌신하면서 기독교 정신에 충실하자. 이것이 하나의 트랙입니다.

또 하나는 ‘지역 밀착형 대학’입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201개의 4년제 대학교가 있습니다. 저희 학교가 지금 중부권에 있거든요. 근데 저희 한남대학교 재학생들의 출신분포를 보면 대전권이 전체 재학생의 한 70% 정도를 차지합니다. 대전을 놓고 인접한 통합거리에 있는 시군, 경부선축에 있는 김천까지가 대전권의 통합 선입니다. 대전권 학생들이 70%를 차지하니 산포가 되지 않고 타깃이 딱 맞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상업적인 용어로 하면 고객관리 하기는 쉽고 대전권의 고등학교가 저희 학교에 학생을 공급하는 기관들이니까 중부권에 밀착하는 지역밀착형대학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맞추어 대전광역시, 충남, 충북 3개 광역시와 도는 하나로 생각하고 대전, 충남, 충북의 교회, 학교, 기관들과 행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200개 고등학교에는 그 학교 개교기념행사에 우리가 축하 화환을 보내고, 학교에 큰 행사가 있으면 우리가 친선사절로 가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가 연령적인 차이는 있지만 계단 올라가듯이 같은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중등교육을 맡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떤 선행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 대학교에 오는가 봐서 우리가 잘 기르고 다음에 사회 어디로 나갈 것인가를 보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 사이의 통 트렁크를 관리하듯이 연계되는 연속교육을 하는 것이 저희 대학교의 큰 트랙입니다.


● 사실 저희는 지역밀착형이라기 보다는 군 밀착형 대학이라는 느낌을 받고 왔는데요, 혹시 개인적으로 군하고 어떤 인연을 가지고 계십니까?


전 원래 공군장교를 가려다가 못가고 사병으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1970년부터 73년까지 3년간 논산 제2훈련소에서 복무했는데 훈련은 김재명 준장 계실 때 받았고, 훈련소에서 복무할 때 쯤 정봉욱 장군이 3사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하시다 훈련소로 오셨습니다. 정봉욱 장군님은 북한에서 포병 대령까지 계시다가 귀순하셔서 우리군 장성이 되신 분이라는 아주 특별한 캐리어를 갖고 있는데 그분의 개인 비서병이 됐어요. 정봉욱 장군님이 교육 자리를 만들어서 장교들에게 교육을 하는데 한번 강의를 하면 전입 장교 교육 때 짧게 하면 6시간을 합니다. 3사관학교에서는 너무 오래해서 수강생들이 옷에다가 오줌을 쌀 때까지 했다니까 정말 많이 아시고 길게 말씀을 잘하세요. 이분이 장병 교육과 대학생 교육을 하는데 외국에서 오는 신문을 다 보시면서 전 세계 교육 자료와 안보자료를 만들어요.

정신교육에 아주 강한 집념을 갖고 계시는데 그분의 교육 자료 만드는 일 때문에 제가 비서병이 됐어요. 참모장실 당번병으로 있던 도중 이분이 한문을 섞어서 글을 쓰는데, 한문을 전공한 사람을 데려다 이것을 정서 해가지고 자료를 만드는데 암만 봐도 해석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데려다가 해석을 시키는데, 보니까 70~80%는 알겠더라고요. 그랬더니 “여기 잘하는 애 옆에 놔두고 괜히 찾았다” 하시면서 너 이거 하라고 해서 제대할 때까지 그걸 만들어드렸죠. 정봉욱 장군의 부대 운영과 정신교육을 사병이지만 장교 못지않게 가까이 배웠어요.

사실 당번병하고 훈련소장이니까 거리가 좀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저녁엔 숙소에서서 같이 앉아 함께 하고 낮에는 사무실 옆방에서 항상 찾고, 그렇게 정이 들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군인정신도 거기서 많이 배웠죠.

지금 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그때 정봉욱 장군님이 부대 운영하는 것을 따온 게 많아요. 군대행정의 효율성을 제가 신뢰하기 때문에 대학운영도 그 정도만 가면 좋다. 모든 걸 예측하고, 예방하고, 확인하고, 계획하는 거죠. 예를 들어 부총장 시절 재물조사해서 장부와 대조하는 작업을 하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바코드 붙이면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나오는 작업을 했습니다.



계룡대 안에는 참모총장, 밖에는 한남대 총장


또 하나는 제가 필리핀에 유학을 한 2년 했어요. 에피소드인데 마닐라호텔에서 로믈러 장관하고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분은 그 당시에 명예박사학위 76개를 갖고 있었고, 필리핀 외무장관으로 대통령을 4분 모셨으며 필리핀국립대학 총장에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내셨어요. 그분 사진이 들어가 있는 우표까지 나왔어요  그래서 이분에 대한 호칭은 로믈러 박사, 로믈러 장관, 로믈러 총장, 로믈러 의장, 다 맞는 타이틀인데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제너럴 로믈러라고 불러달라고 해요. 사람들도 그렇게 불러요.

왜 그러나 해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맥아더 원수가 필리핀상륙작전을 지휘할 때 현지 임관 케이스로 전속부관이 되었는데 맥아더 원수가 원 스타를 붙여줬답니다. 그래서 민간인인데도 맥아더 원수를 모시면서 원 스타를 달고 맥아더 원수의 전속부관을 하셨답니다. 근데 로믈러 장관의 얘기가 “내가 장관도 해보고 총장도 해보고 의장도 해보고 모든 것을 해봤는데,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죽어도 좋다고 하는 건 군인밖에 없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너무도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생각하니까 나를 로믈러 장군이라고 불러 달라.” 그래서 사람들이 로믈러를 그렇게 불러줘요.

제가 이 말을 장군들이나 장교들에게 하면 굉장히 기뻐하세요. 그만큼 군인은 애국하는데 어느 직종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자존감을 갖고 직무를 수행합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은 보통 자랑스러운 게 아닙니다.

집안에 대해서 하나 얘기하자면 처남 중에 공군소장이 있었어요. 천영성 씨라고 전두환 대통령 때 국방위원장을 지낸 분인데요. 집안에 군인이 있는 것을 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것이 한데 모이다보니 군인에 대해서는 남다르다 할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 재미있는데요. 그럼 정봉욱 장군님이나 이분들은 아직 살아 계신가요.


아직 살아계십니다. 퇴역하시고 정부에서 국가안보에 관계된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가셨다가 거기서 퇴임하셨어요.


● 아, 저도 거기서 공직을 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차관급인가 되는 그 자리 보시면 그분이 계실 겁니다.


● 최근에 해체된 기관이라 가슴 아픈 일이 좀 있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국방전략대학원을 국내 최초로 설립 하셨거든요. 어떤 생각으로 하셨습니까?


국방전략대학원은 우리학교의 특성화된 교과입니다. 육해공본부가 여기 있고, 육해공군 대학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국방의 핵심이 대전권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이 있지요. 그리고 국방은 군인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나라 지키는데 예외가 있을 수는 없지요. 나라 지키는 데는 문무가 다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대학이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국방의 한 축이라도 동참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거부터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습니다. 특수대학원들은 모두 자운대나 계룡대를 현지 지원하고 원어민을 데리고 육군본부에 데려가서 장교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서 외국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수료할 때는 영어로 웅변대회를 하기도 했죠. 이것은 돈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게 다 국방력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최근에는 사병들의 학점제 협력기관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또 군학발전을 의논하는 위원회가 있습니다. 이준, 조성태 전 국방장관,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서 육해공군 예비역 장성 21명을 위원으로 모셔서 우리 한남대학의 군 교육에 대해서 자문을 해주십니다.

지금 국방전략대학원에는 영관급 장교들이 주로 와있는데 현재는 졸업했거나 재학중인사람들 중 장군이 13명이 있어서 신문에 3사관학교를 빼고는 가장 많은 장군을 포용하고 있는 곳이라는 보도가 나가기도 했지요. 이번에 재학 중인 박성규 소장은 중장 진급을 해서 7군단장으로 갔고 얼마 전에 석사학위를 받은 분은 공군사관학교로 갔으며 지금은 예편했지만 공군 작전사령관이 쓴 논문이 책으로 출판되어 우수도서에 들어가 있습니다. 공군 16전투비행단장도 여기 출신입니다.


학교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한남대 군․학 발전위원회에는 이 준 예비역 대장(전 국방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15명의 예비역 장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별 숫자를 세어보니까 총34개다. 게다가 올해 배출된 동문 장성진급자 13명 등 영관급과 장성 숫자는 국내 최대다. 계룡대 안에 각군 참모총장이 있다면 계룡대 밖에는 김 총장이 있다는 말이 나올 법 하다.

  


보훈병원에서 참전용사를 안아드릴 때....


● 올해 안보와 관련된 학내 행사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올 6월에 3가지를 했어요.

첫째, 현충일을 그냥 넘어 갈수 없다. 많은 분들이 조국의 산하에 생명을 바쳤는데, 오늘날 그 덕에 살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놀러가고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월 마지막 주일에 버스 3대를 빌려서 교수, 직원간부, 학생들이 새까만 정장을 입고 국립묘지에 가서 의전관의 안내를 받아 정식으로  참배를 하고, 우리 학교 재학 중 입대했다가 살신성인으로 순직한 안학도 하사의 묘를 참배하고 장교묘역을 대청소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유엔 16개국이 우리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 군사․․의료 장비를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를 도운 덕에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가 그 나라를 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6개국 국기게양대를 만들었습니다. 국기게양식을 해군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지역유지모임, 보훈청장까지 와서 학생들과 함께 게양식을 하고 6.25 현장 사진 49점을 판넬을 만들어 구경시키고, 감자 찌고 쑥떡을 만들어서 전쟁 음식 체험을 하면서 6.25를 상기하도록 했습니다. 앞으로 유엔메모리얼을 만들어 조형물을 설치하고 내년부터 유엔 16개 참전국 중 2개국의 대사를 모시려고 합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대사가 추천한 그 나라의 대학교 학생 1명씩을 받아들일 계획입니다. 그 나라 대사가 학생 한명을 추천하면, 우리가 국가 보훈하는 뜻에서 장학생을 길러서 간접적으로나마 보답을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6월 25일에는 우리 학생회 간부들을 데리고 신탄진에 있는 국군보훈병원에 갔습니다. 거기에 가면 6.25때 부상당해서 아직도 병상에 계신분이 49명이 계십니다. 완전히 할아버지죠. 그분들은 지금 말도 못하고 목에 파이프 꼽고 계시는데 사모님들이 옆에서 간호 하십니다. 가서 그분들을 하나하나 안아드리고 꽃과 기념품을 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 함으로써 6.25는 옛날에 없어진 화석이 아니라 현재 아버지, 남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현재 우리 옆에 살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라는 점을 일깨웠습니다.

6월에 3개의 보훈 행사를 했더니 YTN에서 전국에 그걸 띄웠어요. 그랬더니 곳곳에서 그거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어요. 할거한다, 젊은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야 어디에 나가서도 국가 정체성을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등 여러 가지였죠. 앞으로는 매년 행사로 할 겁니다.


● 인간 본성을 연구해 오신 교육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애국정신을 고취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은데요. 대한민국의 국방 선진화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저는 전쟁에 대해서 깊이 모르지만 현대는 정보전쟁 입니다. 옛날처럼 엎드려 정조준해서 딱콩딱콩 쏘고 맞으면 죽고 안 맞으면 도망가는 이런 전쟁은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공군이나 해군이 주력일거고요. 우리나라는 비록 육군이 많지만 육군은 마지막 정리를 맡을 겁니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볼 때는 정보 전략이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병 대 장교 비율을 피라미드 구조가 평형이 되거나 역 피라미드가 되더라도 장교 중심으로 직업군인 중심으로 가야합니다. 직업군인 중심으로 군이 바뀌면 더 많은 지식이 군인들에게 요구됩니다. 그렇다면 고학력자가 모이는 대학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국방요원인데 거들어야겠다. 그래서 민군보안공학 연구센터가 저희 학교에 있어요. 암호 체계라든지 GPS 등에 대한 것을 연구해가지고 이쪽 정보는 지키고 저쪽 정보는 어떻게 빼느냐 이걸 연구하는 것이 있어서 매년 군과 민이 함께 세미나를 하고 개발된 것을 전이시켜 활용하게 하고, 군 쪽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받아서 연구해가지고 고학력자들의 힘을 모아서 결과를 넘겨주죠. 국방전략대학원은 그것과는 다르게 상시교육을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은 획득 과정에 특화가 됐었어요.

여기 계신 국방전략대학원의 김종하 교수님은 획득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영국에서 획득분야를 공부 하고 오셔서 방사청과 국방부, 각 군에 다 자문도 해주시는, 군복은 안 입었지만 어느 현역보다도 더 국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시고 많은 장군 제자들도 기르고 계십니다. 이승철 학장님은 독일서 공부를 하신분인데 행정학을 전공하셨고 4년 동안 기획 처장으로 대학살림을 맡아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업무가 가중되는 걸 알면서도 제가 국방전략대학원장으로 삼고초려를 해가지고 모셨어요. 이분의 행정력과 학교 전체 살림을 해본 캐리어, 노하우와 외국에서 행정학을 공부하신 것을 국방전략대학원에 투입해서 넣자고 생각했습니다.



M&S 센터에 거는 기대와 포부


● 앞으로 국방전략대학원을 발전시킬 복안은 무엇입니까?


미리 말씀드리긴 조금 앞지르지만 우리는 이제 전문가를 또 모셔서 획득과정이나 모델링&시뮬레이션을 넣어서 양 날개로 삼으려 합니다. 모델링&시뮬레이션(Modeling & Simulation)은 처음에는 특수한 일부 군 무기개발체계를 위해 개발된 시스템이지만 이것이 정부기관이나 대학, 사기업을 운영할 때도 모든 가능성에 접근한 다음 시행착오 없이 시행하는 시스템이니까 이걸 군은 물론이고 다른 기관이나 사회에다가 파급하면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국군 교육사령부에서 개발된 리더십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직원들을 4개조로 짜가지고 이틀씩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군인들을 교육하기도 하지만 군이 상당한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장교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 몇 개 실험하니까 이쪽도 반응이 좋았어요. 이렇게 학과 군이 지식을 교류하는 방식으로 국방전략대학원에 기존의 획득과정과 더불어 국방 모델링&시뮬레이션 연구센터를 만들려고 그래요. ADD를 비롯한 연구기관에서 연구 인력을 정리하거나 하면 다시 모셔서 연구를 계속 하실 수 있도록 힘을 만들어 드리려고 합니다. 이분들과 함께 학내에서 동업자로 참여 할 수 있는 전공자들을 합쳐 통합된 형태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그렇게 해서 군 고급 장교들, 연구원들, 방산업체 사람들이 모두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할 수 있습니다.

현역부대나 기관에서는 정년이 되면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 단절 될 수 있는 그들을 댐에서 1차로 물 내리면 보조 댐에서 다시 활용해서 올려 쓰듯이 그분들을 국방인력으로서 다른 곳에서 방황하지 않게 그 작업을 우리 학교에서 계속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 그럼 저희 언론도 참여시켜 주시지요.


물론이죠. 미국 건국자 중 한명인 제퍼슨은 “언론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언론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정부가 없는 언론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언론은 중요합니다. 암만 좋은 게 있어도 안 알려지면 모릅니다. 격려도 되고 잘 될 땐 응원도 해주고 그분들이 국가적으로 지도자들에게 인정도 받게 되면 모티베이션이 되니까요.


● 사실은 국방전략대학원 김종하 교수님의 책도 저희에게는 바이블이 되고 있거든요. 다들 이런 대학원이 생긴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건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에요. 김 교수님이 계시니까 우리 같은 행정 하는 사람들이 가능성을 가진 거죠. 인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국방 분야를 행정적으로 끌어들이기 전에 이미 많은 워밍업 단계로 제자를 길렀고 그 제자들이 지금 군 관계요직에 가 있습니다.

귀중한 인력에 행정마인드를 결합해서 프레임을 짜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국방전략대학원이 운영되고 연구센터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전문 인력과 필요한 인원을 연차적으로 확보하고 학내에서 물리적인 장비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 국방전략대학원에 우수한 예비역 장군들을 교직원으로 초빙해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정부 차원에서 예비역 장군들을 대사나 공기업 감사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원이 그렇게 갈수는 없습니다. 학교에서 후진 양성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업체가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제자를 기른다는 건 또 다른 기쁨이잖아요. 학교에서 후배들을 기르고 자문도 좀 해주시면 그분들에 대한 예우도 되고요.



군사 지도자에 버금 가는 식견


● 군인들의 교육여건이 참 어렵습니다. 군인들이 오지에 많이 가있고 지식의 수요가 커지는데 반해서 교육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다른 사회 계층에 비해서 열약합니다.


그동안 특수대학원을 운영하면서 장교들이 많이 와서 공부를 했고 그들을 지도해드리고 있어요. 그런데 국방부나 수도권 부대에 있다가 대전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업의 연속성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연세대학교와 학점 교류를 맺어 우리 학교 다니던 사람이 계룡대나 대전 근처에 근무지가 있어서 근무 하다가 국방부로 가거나 서울 인근부대로 전출될 때는 연대로 옮겨서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반대로 국방부나 수도권에 부대에 있다가 대전 등지로 오는 분이 있잖아요? 그분들은 연대에서 학점 갖고 있다가 한남대로 와서 수업 들으면 학점 인정을 해줍니다.

그리고 출장 강의랄까, 예컨대 수원의 삼성 근로자들이 우리 학교의 수업을 받고 싶은데 여기까지 올수 없다, 그러면 일과 후 밤에 한다든지 해가지고 우리 학교에서 강사진과 시스템이 수원으로 가는 거예요. 학생이 오는 것이 아니고 교수가 가는 거죠. 우리가 성공케이스가 있어요. 필리핀대학 IT 교수 요원 35명에 대한 강의를 팀을 짜서 필리핀에 가서 강의하고 방학 때 필리핀 교수들이 한국 와서 추가로 수업 듣고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자기대학에서 강사, 지도교수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필리핀도 갈 수 있다면 국내에서 왜 못하겠습니까?


● 국가가 경제, 안보 양면에서 지금 다 어렵지 않습니까? 미국 발 경제위기에서 우리 실물경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만 안보도 그 못지않게 김정일 와병도 있고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하고 미국도 새로운 정권이 섰고 여러 가지로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교육자로서 국가의 지도자로서 여러 가지 걱정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국가차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될 상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은 경제적으로 강국 반열에 가까스로 진입은 했죠. 하지만 몇 가지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우선 자원이 없죠. 경제구조가 수출주도형이고 4800만 명밖에 안 되는 경제 단위에서 내수가 취약합니다. 필리핀 같은 나라가 아름드리나무를 하나 베어다가 100달러 받고 팔면 그 이익은 말 그대로 100달러입니다. 그들이 번거죠. 우리나라 한국타이어가 바이어한테 100달러 받고 팔았다, 100달러 번거는 똑같지만 안에 도넛 가운데 구멍 내듯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사온 고무 원료 값을 때내야 됩니다. 이거는 똑같이 저쪽도 100달러 받았고 우리도 100달러 받았지만은 실제 이익은 다릅니다. 게다가 수출하는 품목들도 양으로는 중국제가 밀려오지, 제품의 성능은 일본이 한 수 위지, 이런 샌드위치에 껴 있어서 좀 어렵잖아요. 머리 싸움해서 이렇게 앞서서 왔는데 그러면서도 늘 불안의 한구석은 깔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취약한 부분이 특별히 기댈만한 자원이 없는 거죠. 먹을거리도 28%만 자급자족이고 72%는 외국에서 사서 쓰는데 그중 절반은 중국에서 들여오니까 해외의존도가 높습니다. 해외의존도가 높다보니 만약 해상 봉쇄를 당해 6개월만 기름 안 들어오면 우리의 모든 시스템이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의 취약점은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겁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그렇게 많이 지불해도 되지 않을 국방비를 사실은 많이 지불하잖아요. 이걸 아마 사회 복지시설에 투입 한다면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올만하죠.  높은 해외의존도와 북한의 위협을 살펴 볼 때 자주국방이 제가 바라는 소망이긴 하지만 지금 어느 나라의 도움도 없이 완전히 혼자 서겠다는 건 때가 아닙니다. 일본이 자주국방하기 싫어서 미국에 의존하고 그러겠습니까? 아직까지는 너무 보수적일지 모르지만 한미관계를 정치, 국방에서 더 공고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서 이기는 것 보다는 전쟁 억지력을 확보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더 좋잖아요. ‘한국 하나 함부로 건드리면 여럿이 떼거지로 온다’라고 하면 혼자보다는 더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자주국방은 하되 자주국방 자기 실력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니 한미관계 공고히 유대관계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 중에 진급자 다 맞춘다


● 총장님 말씀 듣자니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도 오늘 새삼스레 재확인했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정말 유익했습니다.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D&D Focus에도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인터뷰 하는 동안 기자는 김 총장이 군의 발전과제와 직업군인의 문화에 대해 정확히 통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때는 군사지도자 같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군 장성과 고급장교를 거느린 사람이니까. 국내 최초의 국방전략대학원을 설립 당시부터 갖은 고생을 해 온 김종하 교수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 기자에게 말했다.

“이제는 학생 중에서도 누가 진급될 지 다 맞춰요.”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김 교수는 재미있다는 듯이 키드 키득 웃는다.

이제는 국내 수많은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안보국방 관련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이 그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실제로 수많은 대학들이 여기를 방문하여 각종 커리큘럼과 학사운영에 대한 자문을 받고 간다.

국내 최초로 신설되어 내년 봄 학기부터 운영되는 국방 M&S 학과는 우리 군의 과학적 소요창출에 막대한 기여를 하게 될 분야다.

그 내공이 만만치 않은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에서 군 장교들의 만추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총장 프로필


한남대학교(대전대학) 영어영문학과 8회졸업(문학사), 한남대학교(숭전대학) 대학원 졸업(문학석사), 필리핀 De La Salle대학교 대학원 졸업(상담학 석사), 충남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 박사),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장, 한남대학교 평생교육원장 겸 인재개발원장(2년), 한남대학교 부총장 (3년), 사단법인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 역임(28대) 및 이사(현), 한기총 크리스찬 연구원 연구위원(현), 한국 기독교학교연맹 연구위원(현), 한국 기독교리더십연구원 연구위원(현), 대전광역시 대전발전연구원 이사(현), 학교법인 대성학원 이사(현), 대전지방검찰청 구속적부심사위원회 위원(현) 

주요저서

기독교 문화와 생활 신앙 / 청소년 교육 잠엄/ 사색하는 행동인, 행동하는 사색인 / 21세기를 위한 상담 심리학 / 결혼․가정 그리고 인간관계 / 교육의 심리학적 이해 / 상담의 이론과 실제 / 청소년 자아정체감 연구 / 상담이론 알아보기 / 가르치는 기쁨 ․ 배우는 보람 / 청소년 세대 교육론 / 청소년 문화와 인성교육 / 21세기 자녀교육 / 청소년 교육의 재조명 / 교육과 신앙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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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