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한민국’ 외친 ‘붉은악마’에 화냈던 박 대통령 국제안보

한겨레신문 2013.06.26.

 
박근혜 전 대표가 2002년 5월 방북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약속인데 ‘통일조국’ 외쳐야죠”
세상 읽기 아름다움과 추함은 종이 한 장의 차이

경천동지할 엔엘엘(북방한계선) 대화록 논쟁을 접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과 추함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이다. 약간만 관점을 바꾸어도 같은 사건의 숭고한 이야기가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로 돌변한다. 다음 사례를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미래연합 대표 시절인 2002년 5월에 김정일 위원장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중국 베이징으로 특별기까지 보내 박 대표를 모셔온 김 위원장은 가히 파격이라 할 정도로 3박4일 동안 극진하게 환대했다. “화법과 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김정일은 당시 박 대표가 요구한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남북 철도 연결, 통일축구경기 재개를 모두 수용했다.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남북 지도자의) 2세로서 평화 정착에 노력하자”는 박 대표의 말에 김 위원장도 “그렇게 하자”며 동의했다. 귀국길에 김 위원장은 “굳이 먼 길(중국 경유)로 돌아갈 필요가 있느냐. 판문점을 통해 가라”고 제안해 박 대표는 차편으로 서울로 왔다. 박 대표는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과 북이 이렇게 가까운데 먼 길을 돌아서 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해졌다”고 자서전에서 적고 있다. 그해 9월에 감격적인 남북 통일축구대회가 온 국민의 환호 속에 한반도기가 넘쳐나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온 국민을 미소짓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전개해보자. 김정일이 누구인가. 1972년 2월에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의 첫 작품은, 그해 8월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씨가 저격당했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시도라고 알려져 있다. 즉 당시 박 대표는 아버지를 죽이려 했고 모친을 살해한, 가족의 원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과연 어떤 심리상태에서, 무슨 의지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해 6월 말에 월드컵이 끝나 극도로 피로한 국가대표 선수를 다시 차출하여 북한과 축구경기를 한다는 데 축구협회는 경악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강압에 밀려 마지못해 대회가 준비되던 8월에 박 대표는 정몽준 축구협회장을 청담동 중국집으로 불러 “통일축구는 내가 북한에서 가져온 성과물인데 축구협회는 왜 준비사항을 내게 보고 안 하냐”고 다그쳤다. 국가대표 경기는 축구협회 소관인데 자신이 모든 걸 주도하려는 박 대표의 억지였다. 한편 9월 상암 경기장에서의 일을 정몽준 의원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먼저 경기장에 와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 문제가 또 생겼다. 축구 경기 시작 전에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쳤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다시 내게 항의했다.”

 

바로 이것이었다. 축구협회 업무에 간섭하려고 한 까닭이. 이제껏 통일을 향한 숭고한 모습이 북한의 구미를 맞추느라고 안달하는 비굴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그해에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까지 대통령선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박 대표는 원수와 손을 잡는 냉혹한 권력의지의 화신이었다. 어떤가? 아름다웠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이상한 이야기로 바뀌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한 박근혜 정부는 그나마 대화록의 사실관계조차 왜곡하면서까지 공개해 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그러고는 민생이 중요하단다. 아름다운 꽃밭을 짓밟아 놓고 가버린 자리엔 허리가 부러진 꽃들이 비명을 지른다. 바로 이런 방법으로 우리의 숭고함이 처참하게 짓밟혔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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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