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전략 혁신없는차기전투기는 모래 위의 성 무기의 세계

F-X 사업 결국 차기 정부로 넘어갈듯

 

  <월간중앙> 2013년 6월호

 

이명박 정부에서 미뤄두었던 한국공군의 차기전투기사업(F-X)에 다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계기는 지난 3~4월 한반도 안보위기와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미국방문으로 형성된 한미동맹 강화 분위기였다. 국방부는 지난 4월초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첫 번째 업무보고를 하면서 “올해 6월까지 차기전투기사업의 기종을 결정하겠다”며 사업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거듭되는 북한의 도발적인 움직임에 대해 미군의 도움 없이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을 체벌할 수 있는 억지력을 갖추겠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공군의 차기전투기 도입사업이 핵심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

F-X 사업은 미 정부가 한국에 직접 판매를 타진하고 있는 록히드마틴사의 스텔스전투인 F-35와 미 정부의 개입 없이 보잉사가 한국정부에 판매하려는 F-15SE, 그리고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3파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총 60대를 도입하게 되는 미국과 유럽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차기전투기는 향후 한국 공군의 영공수호 및 북한의 핵심목표를 타격하는 항공작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한국형전투기사업(KFX)의 향배도 좌우한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대통령의 방미를 앞 둔 4월 중순에 국방부는 육군의 차기공격헬기로 미 보잉사의 아파치가디언 36대를 1조8400억원에 도입한다고 발표하는 등, 한미동맹 강화와 미국제 무기도입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형국이다. 한편 국방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방미 직전인 4월 30일에 F-15SE를 생산하는 F-X사업의 유력주자인 보잉사의 비공식 에이전트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이 향후 전투기사업에 미칠 파장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4월 한반도 전쟁 위기는 미국에 매우 특별한 기회를 선사했다. 뉴욕증시 S&P 지수는 올해 1월 대비 3~4월에 평균 6% 상승하였는데, 방위산업은 2배에 달하는 12% 폭등했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에 전개된 B-52 폭격기를 생산하는 미국의 보잉사는 2월에 75불 수준이던 주식 값이 4월 한국의 아파치 가디언 도입 발표 이후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여 4월말에 최고 93불로 24%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에 F-35 스텔스 전투기 판매가 유력시되는 록히드마틴은 87불 수준이던 주식 값이 98불로 12.6% 상승했다. 위기 기간 중 연일 CNN 등 미국 보수언론이 한반도 전쟁 임박설을 확산시키는 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이는 방위산업체의 주가 곡선은 5월에 들어와서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지난 4월에 미국이 한반도에 최첨단 핵심무기를 전개한 것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와 무력시위라는 표면적인 명분 외에도 미국의 첨단무기를 과시하는 일종의 ‘쇼 케이스(show case)'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 위기 이전에는 미국 내에서도 군수산업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팽배해 있었다. 작년 10월에 미 공군이 주최한 한 심포지엄에서 스티븐 콰스트 소장은 “미 군수산업의 호황은 이제 끝났다”라며 “적보다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생산하던 냉전시대의 패러다임은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으며,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본도 챙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오던 터였다. 그러나 2013년 벽두부터 이어진 한반도 안보위기는 일시적일런지 모르나 비관적 전망을 다시 낙관으로 돌려 세웠다.

국방부가 공언한 바대로 올해 6월까지 차기전투기의 기종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이 현재 치열하게 경쟁 중인 3개 회사와 진행 중인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말기에 이 사업을 너무 급히 서두르느라고 부실하게 진행한 전투기 성능시험평가를 보완하기에 6월은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방미 직후 ‘윤창중 사태’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상황에서 국방부와 업계에서는 9월, 또는 10월 기종결정설이 꾸준하게 나돌고 있다.

이번 전투기 도입사업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 대목은 제5세대 전투기로 알려진 스텔스 기술을 한국전장에 도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한미연합군의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에 따르면 한국군은 대규모 지상전 교전을 전제로 한 약 120여일에 이르는 장기 전쟁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이런 전쟁을 할 경우 백만명이 넘는 사상자와 약 6700~6800조원에 이르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전 전선에서 지상군에 의한 교전이 진행될 경우 우리 측은 북한군의 이동경로인 종심(縱深)을 깊이 타격하면서 수백여개에 이르는 북한 표적을 축차적으로 격파하면서 북으로 진격하게 된다. 이런 고전적 전쟁모델은 현대전이 단기간에 종결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양상에 비추어 본다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아직까지 한국군은 이 계획을 기본으로 하여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전시에 미군 측이 80%를 담당하는 항공력에 의한 북한 타격은 우리가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하는 분야이고 한국군 단독으로는 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적 전쟁모델에 안주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스텔스 전투기가 도입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굳이 전 전선의 대규모 교전을 상정하지 않아도 한국 공군이 북의 대공 방어망을 돌파하여 전쟁 지휘의 중심(中心)을 격파하여 전쟁 의지를 제압한다면 피해를 줄이고 단기간 내에 전쟁을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쟁 패러다임을 현대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바로 현대적 항공력을 보유하는 것인데, 스텔스 전투기는 바로 그 해결책이라는 시각이다. 이 때문에 공군 직위자의 대부분은 전 세계가 스텔스 전투기로 항공을 현대화하는 추세에 우리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F-35 라이트닝Ⅱ가 그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공군의 전투발전단장을 역임한 진호영 예비역 장군은 “한국군의 전쟁전략을 근원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스텔스 전투기 도입이 그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적의 중심을 마비시키는 현대화 된 항공력이야말로 적은 비용, 적은 희생으로 단기간 내 전쟁을 종결하는 최종 해결자”라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전투기’는 분명 공군 조종사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이다. 필자가 작년 말에 F-35 모의 조종석에서 조종을 할 때 록히드 관계자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적 전투기 2대를 동시에 격추하는 장면을 시연하도록 도와주면서 “지금 저 전투기들은 누가 자신을 요격했는지도 모르면서 격파되고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진 장군의 전임 전투발전단장인 공군 이희우 예비역 장군은 “이런 스텔스 만능주의는 환상”이라며 정반대의 의견을 개진한다. 그는 F-35로 대표되는 “‘스텔스 지상주의’를 버려야 한다”며 “미 해군 참모총장은 스텔스 플랫폼 대신 장거리 센서와 무기 그리고 무인기 활용의 효용성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스텔스 성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 부담뿐만 아니라 항속거리, 무기탑재, 비행 소요(쏘티) 발생, 융통성, 보안 측면에서의 희생이 수반된다”며 스텔스 성능 하나만을 위해 다른 주요 성능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장군의 주장은 주로 유럽 국가들이 유로파이터를 개발하는 핵심 논거 중 하나였다. 유로파이터 개발 수석 엔지니어를 역임한 에르윈 오바마이어의 견해에 따르면 유로파이터도 개발 당시에도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유럽에서 검토한 바로는 스텔스 전투기를 잡을 수 있는 극초단파(UHF) 레이더 및 주파수가 낮은 S-밴드와 L-밴드 레이더가 이미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스텔스 기술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스텔스 기술을 적용한 전투기 개발안은 기각되고 네트워크 전력을 배합하는 대안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공중조기경보기, 합동지휘통제체계(JSTAR),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등과 합동작전을 하는 전투기가 최적의 대안이지, 스텔스 전투기라고 적진에 홀로 침투하여 작전을 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최근 EADS 측은 “근접전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잡는 전자망 전투기가 바로 유로파이터”라며 만일 한국에서 60대를 구매할 경우 48대를 한국에서 생산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EADS 측 관계자는 “우리가 한국에 돌직구를 던졌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공군 출신 중에서도 이처럼 의견이 갈리는 상황은 현대 군사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스텔스 전투기는 미래 전투기술의 지배적 우위를 지향하는 위험감수 전략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부인하며 기존의 4세대 전투기를 여타 첨단무기와 결합하여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교적 안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공군 역시 애초 차기전투기사업이 사업화될 무렵인 2011년에 차기전투기의 핵심 성능으로 스텔스를 적시하였다가 막상 예산에 사업비가 반영되던 그해 말에 이 부분을 삭제하였다. 공군 입장에서는 제한된 국가재원과 스텔스 전투기의 불확실한 미래를 감안할 때 다수의 기종들이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과도한 성능 요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유럽 사이에 스텔스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될 무렵, 기존의 F-15E 전투기를 개량하여 스텔스 기술을 부분적으로 적용한 보잉사의 F-15SE는 또 다른 회심의 전략으로 한국의 전투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보잉사 측은 한국이 원하기만 하면 스텔스 기술을 적용한 F-15SE 외에도 기존의 F-15K, 또는 미군과 같은 성능의 F-15E 등 한국군이 원하는 옵션을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한국 공군에 대한 맞춤식 마케팅을 도모하고 있다. 보잉은 이제껏 한국의 항공 산업에 가장 많은 협력을 수행한 실적에다가 기존에 한국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F-15K를 공급한 회사로서 상당한 선점효과를 누려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스텔스 성능과 가격 문제는 기종결정 막판까지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력(extended deterrence)를 제공하는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구매 요구를 우리가 과연 자주적으로 넘어설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의 미국 방문에서 앞으로 미국과 한반도, 동북아를 넘어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협력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선언하였다. 한편 미국은 한국과 연합방위태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미사일방어(MD)와 같은 전략적 과제에 한국과 함께 투자하고 운용하는 더욱 일체화 된 방위태세를 천명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무기체계에 있어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중시하는 동맹의 논리대로라면 과연 유럽제 전투기나 미국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F-15SE에 공정한 경쟁자격을 부여할 수 있겠냐는 세간의 의문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2년의 제1차 F-X 사업에서 국민의 70%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제 라팔 전투기 대신 미국제 F-15K 전투기를 선정한 전례를 볼 때 유럽 전투기가 과연 대한민국의 영공을 날 수 있는 지는 여러모로 의문이다. 특히 미국은 스텔스 전투기의 해외수출이 향후 국방비가 감축되는 환경에서 더 이상의 전투기 단가상승을 억제하는 중요한 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애초 저렴한 가격으로 F-22 스텔스 전투기의 장점만 모조리 흡수한 저가의 다목적 스텔스기를 개발하겠다는 F-35개발 프로그램은 개발기간 지연으로 단가가 3배 정도 상승한 대당 2000만불로 예견되고, 도입시기나 절충교역 조건도 매우 불리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투기 기종결정은 순수한 국가정책의 영역이라기보다 한미 간의 정치적 문제라는 인식이 이미 확산되어 있다.

한편 방위사업청은 이제껏 전투기 기종평가 기준으로 제시해 온 성능, 가격, 운용성, 기술적 편익과 같은 다양한 기준의 평가를 최근에는 군사 임무를 충족시키는 성능 위주로 단순화하여 새로운 평가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래도 한반도 안보상황이 장기간 소강상태로 갈 것을 의식하여 군사적 요인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기종 평가를 변경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각종 물량이전과 같은 절충교역(off-set : 전투기 구매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술을 이전하거나 생산물량을 구매국에 이전하는 일종의 옵션)은 그 중요성이 반감되고 북한에 대한 체벌적 억지력을 구사할 수 있는 첨단 전투기를 구매하는 데 그 주안점이 실린 양상이다.

그러나 전투기 도입과 더불어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할 한국군의 미래 전투수행 방법, 즉 “어떻게 싸울 것인가(how to fight)"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을 준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대규모 지상전 교전을 준비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수도권과 한반도 전역이 초토화되는 대량전쟁을 마냥 추종하기도 어렵다. 1991년의 걸프전은 43일, 2003년의 이라크전쟁은 13일 만에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고 종전되었다.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 김정은이 ”우리식 전면전 태세가 완성되었다“며 단 3일 만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현대전은 얼마나 빨리 전쟁을 종결하느냐의 경쟁인데, 유독 우리만이 대량폭격, 대규모 교전이 수반되는 종심작전에 깊이 몰입되어 그 사고방식을 혁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전쟁방식을 현대적으로 개선하면서 최소비용과 최소희생으로 전쟁을 종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고, 여기에 한국군 전략을 혁신하는 가장 본질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전투기 도입사업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내포되지 않은 채 어떤 무기, 즉 어떤 플랫폼을 새로 도입하느냐의 문제로 스스로 국한되면서 정작 한국군이 확보해야 할 능력(capability)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한다 한들 싸우는 방법이 혁신되지 않고 사고방식이 과거에 머무른다면 전투기를 왜 도입하는지, 그 목적에 의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했는가? 2002년의 F-15K 전투기 도입은 바로 그런 오류의 전형이다. 특히 F-15K 전투기에 탑재하는 공대지미사일(SLAM-ER)은 그러한 해결자의 상징이었다. 당시 국방부 설명에 의하면 이 전투기를 도입하면 대북한 제공권 장악과 핵심목표 타격은 거의 해결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F-15K 전투기가 적기에 출격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표적을 획득하고 타격한 뒤,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F-15K에는 미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투기도입 예산의 증가를 우려한 국방부와 공군은 전투기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공대지 미사일을 47발만 도입했고, 그나마 훈련으로 소요한 분량을 빼면 37발밖에 없는데, 최근 언론보도에는 이 중 절반이 결함 발생으로 점검 중이다. 그러면 F-15K의 공대지 미사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발에 20억원에 달하는 워낙 귀중한 미사일을 반출하여 공격대기 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연평도 사건 때도 교전이 벌어지는 동안에 공군은 공대지 F-15K를 출격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군의 고가 무기도입이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효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전투기를 사고 보자는 식으로 도입된 결과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것저것 다 빼고 껍데기만 도입하고 보자는 식으로 무기도입이 진행된 결과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F-X 사업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첨단전투기 도입에 소요되는 후속군수지원비용과 무장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애초 도입 목표시기인 2016년을 포기하고 2017년 이후에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등 실비용보다 가격을 축소되도록 이것저것 제외하는 방법으로 사업비 자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투기 도입 이후에 부족한 부분은 ‘별도사업’으로 또 다시 추진해야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애초 추계했던 사업비는 허수로 드러난다. 천문학적 무기도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각종 군수지원과 기능을 누락시켜 사업비를 축소시킨 다음에 주장비만 도입하는 것을 '다이어트 프로그램(diet program)'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우리 군에 일반화되면 군사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발생한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전투기가 100대 있는데 가동률이 50%인 부대와 전투기는 50대 있는데 가동률이 100%인 부대가 있다면 전투력은 동등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군의 경우는 강한 전투력은 전투기가 100대 있는 부대를 말하는 것이고, 그 실제 가동률은 전투기 도입 이후에나 고려할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문제는 미군과 한국군 중 어떤 부대가 더 낭비적인 요인이 많느냐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 한국군의 능력이라는 총량적인 관점이 아니라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느냐는 자기 과시적인 행태가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미군의 경우 무기를 도입하면서 초기 군수비용의 80%를 사업비에 포함시키는데 반해 한국은 20%밖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다음에 추가 무장이나 군수지원은 무기가 도입된 다음에 별도의 사업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최초 무기도입이 실비용보다 30%이상 저렴한 것으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그리고 핵심무기가 실제 필요한 순간에는 가동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는 중이다. 이렇게 본다면 향후 도입되는 첨단 전투기가 미래 전장환경과 한국군의 운용능력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면서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엄격한 사업관리가 예산 낭비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한편 전투기사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가 국토방위에 필수적인 군사력을 확보하면 됐지, 주변국이 어떻고 세계적인 추세가 어떻다는 식의 논리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며 “군이 너무 거창한 비전으로 과욕을 부리는 데 대해서는 반드시 견제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더불어 그는 “박 대통령은 선친의 영향으로 자주국방과 방위산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주된 방향은 대기업 몇 개가 전체 군수산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기술력의 중소기업이 방위산업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고, 이것이 창조경제에서 방위산업이 나아갈 길이라고 믿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하반기에 유럽 순방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차기전투기를 미국제로 결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아직도 박 대통령은 전투기사업에 대한 상세한 보고는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약 240대의 낡은 전투기를 도태시켜야 하는 공군은 초조하다. 최근 도입이 지연된 공중급유기의 경우는 공군에게 뼈아픈 경험이었다. 공중급유기가 도입되지 않으면 북한의 장사정포를 파괴할 수 있는 합동직격탄(JDAM)을 전투기가 충분히 장착하고 출격할 수 없기 때문에 항공력에 의한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제압이 불가능하다. 여기에다가 이제 구형 전투기가 도태될 경우 공군은 거의 고사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첨단전투기를 도입하고 한국형전투기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또 다시 차기전투기 기종결정이 늦어지면 덩달아 한국형 전투기 개발도 순연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공군은 청와대에 달려가 읍소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를 두고 이희우 예비역 장군은 “공군에 쓰나미형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며 개탄한다. 조종사들의 무더기 조기전역과 기존 항공자산 유지에도 급급한 공군의 열악한 예산사정, 실제 싸울 수 있는 각종 무장력의 빈곤 등 공군이 처한 삼중고는 미래 한국군의 모호한 방향성과 맞물리면서 차기전투기사업에 명운을 거는 절박함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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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