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차기전투기사업 어디까지 와 있지? 무기의 세계

한겨레 2013.08.16 19:12수정 : 2013.08.18 17:28

 

[토요판] 2년째 비틀…재정과 육-공군간 견제 등 문제 중첩
‘늙음, 태어나지 않음, 낯섦’ 중 선택…탈락 록히드마틴 ‘멘붕’

▶ <한겨레> 토요판이 새로운 지면 ‘군사’를 선보입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군사면을 통해 무기에 담긴 철학과 역사, 국방정책사, 사병복지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첫 순서로 차기전투기사업(FX)을 소개합니다. 미국 보잉사의 F-15SE,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A,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 3개 기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차기전투기사업의 마지막 가격입찰이 16일 끝났습니다. 우리 공군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차기전투기사업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한국 공군이 첨단 전투기를 도입한다는 건 남북관계의 역사를 바꿀 중요한 사건이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의 일이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정밀폭격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전쟁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정밀폭격의 방법이었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포격하면, 북한은 전방의 장사정포로 대응할 것이 뻔했다. 말 그대로 ‘서울 불바다’가 되는 결과를 피하려면, 정밀폭격과 함께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F-16 전투기를 활용해 북한의 전방 장사정포를 무력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미연합사령부 작전회의에서 제기됐다. 연합사 소속 한국군의 건의였다. 당시 전북 군산에 배치된 미군의 F-16 전투기는 ‘야간 저고도 항법 및 적외선을 통한 목표 획득 장치’라고 알려진 랜턴 장비를 부착하고 있었다.

차기전투기사업은 공군만이 아니라 우리 군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우리 군의 차기전투기사업에 참여한 미국 보잉사의 F-15SE,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A,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이 가운데 16일 마지막 가격입찰에서 F-35A는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미군 장성은 왜 한국군 장교의 멱살을 잡았나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 옆에서 이런 건의를 듣고 있던 연합사 작전부장 프랭크스 소장 등 미군 쪽에서는 버럭 화를 냈다. 이 과정에서 한 미군 장성은 한국군 정아무개 중령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작전회의가 난장판으로 끝나고 얼마쯤 지난 뒤, 프랭크스 장군이 한국군에 “축하한다. 게리 럭 사령관이 당신들의 건의를 수용했다”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이번에는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들고일어났다. 북한의 조밀한 방공망을 뚫고 목표물인 장사정포를 타격하라는, 아주 어려운 임무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작전에 투입된 미 전투기의 50%는 손실된다”며 미 7공군 사령부가 특히 반발했다. 결국 게리 럭이 백악관까지 날아가 “아무래도 북한 포병의 대응 때문에 정밀폭격은 어렵다”고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여기에 북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클린턴 대통령을 뜯어말렸다. 전쟁 가능성은 가까스로 잦아들었다. 만약 그때 한국에 스텔스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른 한가지 사례를 보자.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는 한국군도 성능이 우수한 F-15K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항공력으로 북한을 응징할 수 있었다. 당시 유엔사 교전규칙 때문에 전투기를 동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문제가 있었다면 F-15K 자체였다. 전투기가 공대지 임무를 수행하려면 몇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수평으로 냉장 보관중인 공대지 미사일의 포장을 뜯어야 하고, 그다음으로 표적을 입력한 뒤, 미사일을 전투기로 운반해야 한다. 또 첨단 정밀무기를 실은 차량은 규정에 따라 최저 속도로 기동해야 한다. 동시에 조종사는 표적을 브리핑받아야 한다. 이처럼 규정에 나와 있는 절차를 모두 거친 뒤 전투기가 출격하니 교전은 이미 2시간 전에 끝난 상황이었다.

천안함·연평도 포격 이후
“반드시 응징” 군사계획으로
MB때부터 전투기사업 추진
예산과 미 기술개발 문제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자사전투기 못 팔 것 같자
록히드마틴은 거의 ‘멘붕’
무기구매 압력으로 이어질까
보잉·유로파이터 마케팅도
새로운 국면의 전쟁으로

이 시각은 청와대와 합참이 더 이상의 확전을 불사하려는 의지가 완전히 소진된 상황이다. 만일 교전이 진행되고 있는 그때 제시간에 F-15K 전투기가 출격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교전이 진행되고 있던 시간에 이명박 대통령은 공군방공지휘시스템(MCRC) 전광판에 있는 공대공 임무를 수행중인 전투기를 화면으로 보며 “저거라도 투입하라”고 말하던 상황이었다.

일촉즉발의 안보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전투기를 동원해, 얼마나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느냐 여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공군이라는 조직은 이러한 공세적 군사전략을 선호하기 때문에 첨단 전투기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최신예 전투기를 갖추면 이제껏 장기간의 지상전을 주축으로 한 한국군 작전계획도 크게 바뀌게 된다. 느리고 소모적인 지상전보다는 전쟁을 빨리 결정짓기 위한 공세전력으로 항공력에 의한 작전을 더더욱 선호하는 방향으로 전쟁 방식이 바뀔 수 있다. 또한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정치 지도자가 군사행동을 결심할 수 있는 여건이 대폭 완화될 것이다. 전투기는 가장 위력적인 공격무기다. 단순히 돈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최근 차기전투기사업(FX)의 이면에는 “어떤 전투기가 도입되느냐”가 공군의 미래상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장차 한반도 전쟁에서 싸우는 방법까지도 좌우하는 국가의 전략사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적어도 이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는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사건이 재발되면 “반드시 항공력으로 응징한다”는 다짐과 함께 북한의 작전 지휘부까지 타격한다는 강압적인 군사계획을 전제로 이 사업을 추진하여 왔다.

그랬던 초기 상황과 달리 지금 이 사업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지금 우리는 국가의 어려운 예산 사정과 동맹국인 미국의 전투기 개발 지연으로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있다. 사업 초기에는 예기치 않았던 변수들이다.

늙었고, 태어나지 않았고, 낯선 유럽산이고…

차기전투기사업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비유하면 이렇다. 어떤 가장이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한다. 입양할 돈으로 83만원을 갖고 시장에 나와 보니 선택은 세가지다. 첫째는 대략 가격은 맞을 것 같은데 너무 늙었다. 게다가 집에 이미 있는 강아지와 같은 종이라서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둘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강아지다. 새로운 종이라서 가장 마음에 들지만 100만원을 주고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 강아지를 선 입양하려니 꺼림칙하다. 셋째는 가격은 90만원 수준으로 약간 비싸고 나이도 적당하지만 아메리칸 혈통이 아닌 유러피언 혈통이다. 이제껏 이 가장은 햄버거와 강아지는 ‘아메리칸 스타일’이어야만 한다고 믿어왔다. 자,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전투기를 강아지에 비유한 건 좀 미안하지만 첫째 강아지는 미 보잉사의 F-15SE다. 1970년대 모델에다 스텔스 도료를 칠하고 수직미익(꼬리날개)을 눕히며 내부 무장창으로 레이더 반사면적을 줄이기는 했으나 아버지 세대의 전투기라는 이미지는 씻을 수 없다. 둘째는 미 록히드마틴의 F-35A다. 스텔스 성능이 가장 우수한 미래 전투기에는 틀림없으나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가격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태어나지 않은 전투기이다. 셋째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이다. 태어난 지 10년도 되지 않았고 실전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적당한 연령의 현세대 전투기라고 할 수 있으나 스텔스 기능은 미약하다. 엔진 흡입구 부분에 스텔스 도료를 적용했고 탄소섬유 소재로 기체를 만드는 등 일부 스텔스를 적용했다고 하지만 무조건 미국 전투기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 유럽산은 아직 낯설다.

이 세 기종을 평가하는 차기전투기 총사업예산은 8조3000억원, 이 중 무장가격을 제외하고 기체와 엔진으로 구성된 순수 외자 구매액(국내 조달이 아닌 외국 공급사에 지급하는 외화 구매액)은 7조5000억원 정도다. 사업이 추진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기종을 결정하지 못했다. 16일 우리 군은 세 기종 가운데 이날까지 진행한 마지막 가격입찰 결과, 후보 기종을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보잉의 F-15SE로 좁혔다. 록히드마틴은 총사업비인 8조3000억원 이하의 확정가를 써내지 못해 사실상 탈락했다.

그동안 우리 군이 우왕좌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선택의 기준이 어지러웠다. 가격이 문제인지, 성능이 중요한 것인지 여러 문제가 함께 뒤섞여 있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이 사업을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 뭔지, 전혀 그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올해 6월 초에 이용걸 방위사업청장은 기획재정부를 직접 방문하여 “현재 8조3000억원으로 책정된 차기전투기사업 예산을 2조원 증액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기획재정부가 5월 말에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앞으로 5년간 134조8000억원, 이 중 약 80조원을 정부예산을 구조 조정하여 확보해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기획재정부로서는 차기전투기사업에 그만한 추가재원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에서 문전박대 당한 방사청장이 청와대에 이 문제를 보고하기로 했다. 그런데 6월부터 7월 초까지 청와대는 방사청장의 보고 일정을 두번 잡았다가 두번 다 취소했다. “돈 더 달라”는 방사청장의 건의는 아예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방위사업청이 8월까지 진행한 전투기 가격입찰도 도무지 무얼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전체 전투기 기종평가 중 가격요인은 15%인데, 이 중 1등과 2등의 점수 차이가 얼마인지는 공급업체도 모른다. 섣불리 가격을 내렸다가 크게 점수도 못 따고 다른 요인에 의해 뒤진다면 업체가 왜 가격을 내리겠는가? 이렇게 정책이 모호하니까 입찰이 자꾸 지연되고 종합평가도 미루어져 왔다. 입찰도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육군과 공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견제

기세 좋게 출발했던 이 국책사업이 2년이 지난 지금 왜 이렇게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릴까? 이 사업을 주무르는 방위사업청장이 경제부처 출신이고, 그 참모들 역시 대부분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현 정부 안보의 최고 수장들은 전투기 도입에 회의적인 육군 출신들이다. 그들은 10조원 호가하는 전투기를 도입할 바에야 육군 포병전력을 증강하는 게 훨씬 낫다고 믿는다. 장사정포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7200만원에 달하는 전투기의 합동직격탄(JDAM)보다 200만원에 불과한 육군의 신형 고성능 포탄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과도 좋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전투기는 날씨가 나쁘면 임무수행이 지장을 받는데 육군 포병은 비가 와도 작전을 잘한다. 그리고 이들은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더라도 육군의 유도탄사령부 미사일 전력을 증강하면 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우리의 육해공군은 북한과 싸우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내부 경쟁에도 열심이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스텔스 전투기를 빨리 사자고 건의했을 것이라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이런 재정적 요인과 육군과 공군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중첩되다 보니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도입은 어느새 ‘한여름밤의 꿈’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 세대의 미국 전투기와, 한-미 동맹과는 혈통이 다른 유럽 전투기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적신호가 켜지자 공급사인 록히드마틴은 거의 ‘멘붕’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경쟁이 안 되면 한·미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한국에 무기구매 압력을 행사해 온 것이 오래된 한-미 동맹의 속성이다. 미국에 안보의 모든 것을 의존하려는 우리 정부를 꿰뚫어보는 미국이 스텔스 전투기 판매를 그리 쉽게 포기할까? 방위사업청 입찰에서 스텔스기를 담당하는 미 공군 관리가 얼굴이 붉어져 나왔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러는 동안 록히드마틴이라는 절대 강자를 배제시키고 싼값에 전투기를 공급해 주겠다는 보잉의 조용한 유혹이라 할 수 있는 ‘스텔스 마케팅’과 마지막엔 홀딱 벗고 다 주겠다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에로틱 마케팅’이 새로운 국면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첨단 전투기로 북한을 선제타격하고 킬체인(kill-chain·핵 미사일을 기동 단계에서 탐지·추적해 파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북한의 핵 미사일을 무력화한다는 군사지도자들의 최근 공언은 그 실현가능성이 의문시된다. 10조원을 들여 60대의 전투기를 산다고 하지만 도입 이후 운영비로는 적어도 그 세배인 30조원이 (전투기 수명기간에) 추가로 투입되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치명적인 공격능력과 억제력을 갖추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게 지금 드러나고 있다. 3년 전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에 대한 응징과 보복을 다짐해 온 군이지만 최근 경제논리 앞에서 그 기세가 수그러드는 모습이다. 복지를 희생하면서까지 막대한 무기 도입을 추진하기에는 국가 사정도 그리 여의치 않다. 봉급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세법 하나를 바꾸는 데도 온 나라가 큰 소동을 겪는 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를 결정짓는 것은 세계 최고 성능의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경제, 즉 국가의 재정 문제다. 그걸 보수정권이 지금 깨닫고 있는 중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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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