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강 건너 불인가, 발등의 불인가 기고

한겨레신문 2013. 11. 29. 

경기 오산에 위치한 공군 작전사령부의 중앙방공통제소(MCRC)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영공방위의 심장부다. 이곳의 레이더에는 다양한 국적의 항공기 수백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가끔 일본·중국·러시아의 전투기들이 우리 구역을 일부러 침범해 들어온다. 이걸 관제사들은 일본말로 ‘히야카시’라고 하는데, ‘슬쩍 놀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걸 레이더로 보면 한반도라는 탐스런 먹이를 두고 주변에 몇 마리의 뱀 같은 열강들이 긴 혀를 쑥 내미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한반도를 지금 당장 침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물건을 사지 않아도 눈요기만 하는 손님처럼 몹시 신경 쓰이게 만든다. 매일 우리 전투기들은 구역에 들어온 상대방 전투기에 근접하여 경고하는데 이걸 ‘밀어내기 기동’이라고 한다. 눈요기만 하는 손님이라도 맞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레이더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이 장면은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한반도에서의 국제전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초기 상황은 바로 이렇게 주변국 전투기들이 한반도로 일제히 들어와서 휘젓고 다니는 모양으로 전개될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 그러한 우려는 단순히 말뿐이 아닌 것 같다. 지난 23일 방공식별구역을 전격적으로 선포한 중국은 곧바로 정보수집기 2대를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인근으로 출격하여 비행시켰다. 같은 날 일본 항공자위대가 같은 장소에 전투기를 발진시켜 대응했다. 시작은 동중국해에서 중-일 간의 군사적 대치였지만 미국이 26일에 괌에서 B-52 폭격기를 출동시켜 같은 장소에서 무력시위를 하면서 미-중 간의 다툼으로 확전되었다. 곧 미국 항공모함이 동원되는 연합훈련이 동중국해에서 진행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사태가 확산되자 중국은 서해에서, 일본은 독도까지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서해와 동해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강대국 간의 갈등이 처음에는 강 건너 불이었다면 어느새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과 미·일의 갈등이 심화된다면 이들은 각기 한국에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다그칠 게 분명하다. 이로 인해 동북아에서 주변국들의 패권 경쟁에 한반도가 중간에 끼이게 되는 상황은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풍경이다. 여기에 잘못 연루되면 한반도 민중의 생존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정학적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제부터라도 미국의 편에 바싹 붙어서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게 안전하다는 동맹의 관점이다. 그러나 백년 전처럼 우리가 섣불리 어느 한쪽 편을 들었다가 더 큰 침략을 초래하는 그런 치명적 실수가 될지도 모른다. 둘째로 어느 한편에 줄서지 않고 이러한 갈등과 거리를 두면서 자주권을 지키는 중립권 수호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국이 스스로의 안보와 주권을 수호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현실성이 있다. 안보의 핵심을 동맹에 의존하는 한국이 과연 그럴 역량이 있느냐는 둘째 문제고, 우선 그럴 의지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 무엇이 합리적 선택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우리 정부가 어떤 철학과 원칙도 없는 수동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북한이 빠른 속도로 핵무장을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을 남의 일처럼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평화에 무관심한 정부는 외부의 갈등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우리의 불안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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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