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외교․안보에 시민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자료실

 

김종대(디펜스21+ 편집장)


1. 들어가면서


‘외교안보’와 ‘시민참여’라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시민의 생활정치와 국가와 외교안보정책은 그 사회가 처한 역사적, 정치적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을 맺는다. 최근에는 외교안보 역시 ‘내치의 연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현대 민주정치에서 외교안보도 시민적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답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2013년 체제를 구축함에 있어 시민참여와 외교안보에 대한 새로운 관계형성의 경로를 모색하고 평화의 비전에 이를 접목시키는 새로운 노력이 요구된다.


2. 민군관계의 차원


“만일 의사가 언급하는 것을 믿는다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일 신학자를 믿는다면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만약 군인이 말하는 것을 믿는다면 안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군인과 국가」, 한국해양전략연구소, 87쪽 -

헌팅턴에 의하면 어떤 전문 직업이건 ‘직업적 편견’을 갖고 있다. 그는 “군인의 경우는 군사적 안전보장에 대한 위험을 강조해야 할 전문직업상의 이해와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봄이 되면 여름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고, 여름이 되면 가을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군이다. 이런 편견은 모든 전문 직업이 갖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직업적 편견이 용인되는 전문직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는 일종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보건정책을 의사가 만들지 않으며 사법정책을 검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교육정책을 교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출된 정치권력의 통제 하에 있는 별도의 관료집단이 만든다. 마찬가지로 안보․국방정책도 군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런 전문 집단이 정책까지 수립하게 되면 ‘군사적 편견’을 견제할 수 없고, 그 결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 직업 집단은 단지 정책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만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에서 국방정책만큼은 그러한 민주사회의 일반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비정상적으로 군인에게 의존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문민 국방부가 있다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 고위 장교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볼 때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들’에 의해 정책이 사실상 장악된 것이라 하겠다. 국방정책의 상당부분은 민주적 원리의 정부 통제를 받지도 않는다. 그 결과 문민통제에 있어 다음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일반 공무원과 달리 군인 정원을 책정하는 절차는 국방장관이 대통령을 만나 A4지 한 장 사인 받으면 끝이다. 정부 차원에서 군인 정원을 통제하는 어떤 장치도 없이 군인정원에 관한 통칙에 의해 장관이 대통령 승인을 받는 것으로 모든 절차를 간편화하였다. 이런 군의 자의적 정책결정이 군사력의 규모를 통제하는데 문민통제를 무력화하여 2007년에 국방부와 국회 간에 쟁점으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 중기국방계획은 법적 지위도 없는 문서인데 이 역시 대통령 승인만 받으면 더 이상 견제장치는 없다. 보통 정부 부처의 대형사업계획이나 중장기 재정계획은 중기국방계획은 그런 절차도 없기 때문에 정부 통제의 사각지대로 남는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군 무기소요에 대한 검증위원회가 발족되어 활동하고 있으나, 이 역시 중기국방계획의 법적 성격과 작성 절차에 개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방사업 전반에서 시민과 납세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타당성 검토와 효율성이 무시되고 국부가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국방사업의 투명성 역시 저하되어 총체적인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작전계획도 군에 포괄적으로 위임된 권한이기 때문에 국방부는 우리 외교부나 통일부와 협의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더 나아가 정부는 우리나라에 어떤 작전계획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작전계획의 정치적 의미가 간과된 채 과도하게 군의 전문화 영역에 이를 제한시킨 결과 2010년에 한반도는 안보위기를 겪게 된다. 즉 군의 독자적인 작전계획의 변경을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 외교안보는 군에 끌려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 위협에 대한 해석, 군사정책의 수립을 군이 독점하면 국가 위기관리도 어렵지만 민주주의도 훼손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대청해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사건이 벌어진 이면에는 군이 서해의 위기관리를 과도하게 독점하면서 정부차원의 토의와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군이 작전계획을 바꾸고 언론에 누설하여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2009년 2월에 국방부는 외교부와 통일부와 협의 없이 서해에서 대비계획을 수정한데 이어 이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누설하여 북한에게 매우 나쁜 신호를 보냈고, 그 결과 대청해전이 발생하여 서해가 분쟁의 바다로 바뀌었다.


국민은 군의 임무가 ‘전쟁을 억제’하는데 있다고 믿는데 당시 군은 ‘국지전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작전계획과 교전수칙을 바꾸고 이를 언론에 몽땅 누설한 이명박 정부 초기 상황은 군인의 직업적 편견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민주주의 일반원리에 위배된다. 결국 군이 안보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역할까지 다 독점하면서 시민적 요구가 국방정책에 반영되는 경로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한편 군사정책에 대한 통제는 직접적통제와 간접적 통제로 구분해야 할 것이다.


-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의 NSC 상임위는 군사정책에 대한 감독기능, 견제기능, 정보수집기능을 발휘함으로써 문민통제를 진일보시킨 직접적 통제방식의 전형이었다. 이를 통해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서해 안전보장 등 평화지향 문민통제의 중간 단계의 성과를 내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무력화되면서 서해 안보위기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시민사회는 향후 군사적 통제에 있어 직접통제의 기회를 복원을 촉구하는데 일차적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 간접적 통제방식은 시민사회가 군사정책에 대한 개입의 여론을 조성하여, 군에 대한 시민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조직된 시민의 힘과 여론을 반영한 정책문서 발간 및 요구내용을 정부, 국회, 언론에 전달하고 이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평화지향적 담론과 가치를 시민사회 내부에서 확산하는 일상적 노력과 국제연대를 통한 네트워크의 조직 등이 이에 해당된다.



2. 정치적 차원


군인의 직업적 편견을 견제하는 방향과 달리 직업군인의 전문성을 부당하게 배제시키는 정치권력의 횡포에 대해서도 견제가 필요하다. 1930년대에 히틀러가 군의 조언을 무시하고 파멸적인 군사행동을 하였고, 미국도 2003년에 군부의 충고를 무시하고 네오콘 세력이 무리한 방식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문민 정치권력이 군의 조언을 무시했다가 국가가 파멸의 길을 걸은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군의 전문성은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

군사적 합리성을 존중한다는 뜻은 군인은 명백히 위험을 초래하는 불리한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군비의 충족과 군대의 유지에 집착하는 군일지라도 단지 정치적 요구에 의해 군사적 합리성이 결여된 전쟁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적 현실을 관찰하는 군인의 ‘합리적 판단’이 정치권력의 ‘희망적 사고’에 무리하게 종속되는 순간 파멸이 일어날 수 있다. 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한다는 부시의 야망에 미국 군부가 끌려 다닌 결과 베트남 전쟁보다 더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미국의 위기를 우리는 지금 지켜보고 있다.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임박한 통일을 기대하는 ‘희망적 사고’도 매우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과 보수정부 일각에서 전쟁을 불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고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여기에 군사적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찾아내야 한다.

군이 군사적 합리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최근 훼손되는 징후는 우리 군이 본래의 전문 직업주의를 일탈한 이데올로기 집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데서 발견된다. 군이 수시로 정치에 개입하는 통로가 형성되면서 그 정치적 중립성도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을 좌와 우로 편 가르기 하면서 특정한 이념과 정파에 경도되는 현상은 북한과 같은 ‘당의 군대’라면 모를까, ‘국민의 군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간 군대 병영 내에서 벌어진 불온문서 소동, 민간인 사찰, 군내 좌익분자 색출과 같은 이념 소동을 보면 그러한 우려가 고조된다. 게다가 지금은 예비역들이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조직화되는 추세이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마포파, 서초파, 용산파 같은 예비역 모임이 선거 기간에 활동하는가 하면, 안보를 국가적 차원의 성찰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정치행동으로 삼는 것은 국방의 과도한 정치화에 해당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화는 군의 전문 직업주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시민사회는 군이 최소한의 국가주의 이념을 넘어 특정한 정파와 유착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는데 견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군이 정치 세력화되면 군사적 합리성이 저해되기 때문이다.

17, 8세기에 브루조아와 귀족 간에 군부에 대한 통제로 갈등이 발생할 당시에 군은 정치적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근대국가 출범 이후 현대정치에서는 이와 같은 군의 당파성과 정치성이 부인되고 있고, 군은 군사적 합리성에 기초한 집단으로 그 영역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군이 사회갈등을 그대로 반영한 극단적 국가주의, 극우주의, 정치화되는 경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군사정책의 목표에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주된 과제는 다음과 같다.


- 최근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면서 우리는 외부로부터 대중국견제에 동참을 요구받고 있고, 한일 군사협정 체결의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에서 이러한 요구는 군사적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한미동맹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외부의 부당한 요구를 비토할 수 있는 자기 방어력을 상실하고 있고, 이는 군사적 합리성이 크게 왜곡될 위험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시민사회는 이를 차단할 수 있는 견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 군에 대한 시민적 요구는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과 전쟁억제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연말에 전방에서 성탄 트리 점화와 같은 일은 종교를 국방에 악용하는 것이고 한반도 안정을 크게 위협하는 행위로 군사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특히 민간 수단을 심리전에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불온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이런 류의 군사행동에 견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 북한의 붕괴라는 희망적 사고에 기초한 군사계획을 준비하는 것은 합리성과 동떨어진 정치권력의 횡포에 해당된다. 북한의 붕괴와 한미연합 군사계획은 중국의 개입을 초래함으로써 우리의 국력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 우리 군사계획의 목표가 설정되는 것은 이제껏 국방목표를 초월한 과도한 것으로서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 한미동맹 강화라는 정책목표 역시 합리성이 결여된 측면이 상당부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잘못된 지식을 유포시키는 국민기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우상화하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도 군은 유사시 미국이 69만명의 병력과 3000대의 전투기를 지원한다는 둥, 냉전말기의 레이건 시대에나 통할 흘러간 지식이 사실인 것처럼 유포시킨다. 이는 한미동맹 강화라는 목표의 기만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잘못된 지식에 기초한 동맹은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된다. 반대로 이러한 우상화된 지식의 이면에서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미군지원에 대한 분담금 강화라는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밝혀내어야 한다.


3. 맺으며


앞에서 제기한 군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주체적 역량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군사정책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분석과 대안제시를 통해 그 권위와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이 있다. 군인의 직업적 편견을 견제하는 ‘성벽 무너뜨리기’와 시민적 요구를 담은 평화지향의 대안을 제시하는 ‘성 다시 쌓기’ 차원이다.

성벽 무너뜨리기는 앞에서 말한 군사정책을 통제하는데 있어 시민의 알권리 확보, 잘못된 지식의 허위성을 밝혀내며 이를 시민적으로 확산하는 작업이다. 이 점에서 시민사회는 중간단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정작 취약한 분야는 성 다시 쌓기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전략적 목표가 있다면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시민사회가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직간접적 통제 및 참여의 경로를 찾아내야 한다.

먼저 정부 차원에서 군사정책에 대한 문민통제력을 강화하는 제도적 차원의 접근에 시민사회는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결정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세심한 정보수집과 감독이 요구된다. 또한 평화체제 비전에 부합되는 외교안보정책의 주된 방향에 부합되게 정책대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여 차기 권력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도록 학계, 정치권 등과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와 효과적인 소통을 도모하는데서 외교안보에 대한 시민참여의 경로가 찾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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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