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부르는 초대장, 노벨평화상 편집장의 노트

 

D&D Focus 2009년 11월호

 

게이츠 국방장관이 한국에 온 진정한 속셈



노벨 평화상은 비극을 부르는 초대장


평화란 무엇인가?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헤밍웨이는 “그것은 단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저는 이것이 가장 그럴듯해 보입니다. 유감스럽지만 평화는 반드시 깨집니다. 평화에 대한 숱한 연구가 있지만 이것 이상의 진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사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70년대 제4차 중동전쟁의 영웅입니다. 그런 그가 소련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미국을 관리하는 능란한 외교로 스웨즈 운하를 이스라엘로부터 탈환하는 제한전쟁을 수행했을 때 그는 아랍의 영웅이었습니다.

이 전쟁 직후 그는 평화의 전도사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중동의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이스라엘 의회에서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향해 말합니다.

“당신네들의 하나님은 우리와 전쟁을 하라고 말한 바 없다.”

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째 되던 해인 1981년 그는 군 사열 도중에 암살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는 라빈 전 총리입니다. 그도 역시 1, 2차 중동전쟁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요르단 강 서안을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기로 한 제2차 오슬로 협정을 의회에서 61 : 59라는 2표 차이로 간신히 성사시키고 마침내 중동에는 평화가 정착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아라파트를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합니다. 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이스라엘 전역에서 라빈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이에 이 노 정객은 국민을 직접 설득하기로 대중 집회에 나가 그가 애창하는 ‘평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 평화의 날을 기다리지 말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요.”

노안의 그는 가사가 적힌 종이를 가로와 세로로 한 번씩 접어 양복 윗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총알이 바로 그곳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잠시 후 수행원들이 양복 윗주머니에서 피에 절은 쪽지를 발견합니다. 세계는 피에 절은 평화의 노래가 적힌 그 종이쪽지를 보고 경악합니다. 이때가 노벨상을 받은 지 3년째 되는 1994년입니다.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80년대 후반부터 서방을 향해 일방적 군축과 평화노선을 채택하고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냉전이 해체되고 전 세계가 상호의존의 평화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노벨상을 받은 지 3년째 되던 1991년에 일어났습니다. 군부는 고르바초프가 위대한 소련 제국을 와해시키려는 반역자로 인식하고 고르바초프를 감금하고 정권을 무력화하는 쿠테타를 감행한 것입니다. 이 일로 고르바초프는 실각하게 됩니다.

전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신동방정책으로 동독과 화해협력을 도모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그로부터 3년 후인 1971년에 자신의 비서가 동독의 간첩이라는 이유로 총리직에서 물러납니다. 독일의 냉전주의자들은 브란트가 동독의 사주를 받고 그들과 몰래 내통하며 비밀자금을 제공한 반역자라고 인식했습니다.

남북협력과 통일국가를 외치던 백범 김 구 선생은 김일성 만나고 온 지 3년째 되던 해에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합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종파간의 화해를 외치다가 암살당한 때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3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보십시오. 20세기 지난 백년의 역사에서 평화를 구현하려던 정치지도자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임기를 마친 사례가 있었습니까? 그런 만큼 20세기는 평화 지도자들의 수난사였던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에릭 홉스 봄의 연구에 의하면 20세기 전쟁으로 사망한 총 인원이 1억8천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다 합쳐야 이 숫자가 나옵니다. 그런 만큼 폭력의 1백년을 거쳐 온 인류가 각종 대립과 반목을 부추기는 광신주의, 근본주의, 교조적 냉전 이데올로기에 자유를 빼앗겼고, 이에 저항을 하면 어김없이 처단 당했던 것이지요.

이 광기의 역사에서 지구 위에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인간의 피가 뿌려졌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그나마 행복한 경우입니다. 2000년에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그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3년째 되던 해인 2002년에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자민련과 공동정권이 붕괴됩니다. 이 무렵 야당은 “햇볕정책의 파산”을 선포했고, 국민의 정부는 ‘식물정부’로 전락합니다. 역시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그나마 앞선 사례들에 비하면 행복한 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게이츠 장관의 속셈


인류는 전쟁에 깊이 중독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직립 보행을 하면서 채집을 벗어나 사냥을 시작한 이래 인간의 전쟁 유전자는 날로 번성하여 왔고, 그것은 어떤 제도나 장치로서 제어하기 어려운 본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유전자의 독재’에 저항하는 이성의 산물인 종전선언, 불가침조약, 평화협정은 그 시효가 3년입니다. 마치 집에서 사용하던 유리그릇도 3년이면 깨져서 쓰레기 통으로 사라져버리듯 말입니다.

그런 만큼 노벨 평화상이란 정치 지도자에게 있어 체제유지세력을 배신한 죄목을 알리는 현대판 주홍글씨라 하겠습니다. 정치적으로 개인에게는 별로 이롭지 않습니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습니다. 아직 대통령 임기의 1년도 채우지 못한 오바마 자신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겠다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했지?”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서 아프간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월남전의 악몽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 온 한 친구는 저에게 “미국은 한국이 7000명 정도의 특전사 1개 사단을 아프간에 파병해주기를 원한다”고 알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과 협의하고 싶어서 10월에 게이츠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겁니다. 게이츠 방한을 준비하면서 미 국방부는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프간에 전투병 파병이 절실하다는 겁니다. 국방부 실무진이 건의한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동반 한국방문은 참으로 파격적이면서도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백악관에까지 제출된 이 방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그랬던 것처럼 주한미군의 위상을 흔들어댑니다. “한국이 아프간으로 미군이 파병되는 발진기지가 될 수 있다”는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의 언급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카드를 내세워 주한미군을 타 지역으로 빼내가려는 암시를 주고, 이것이 한국의 아프간 파병을 독촉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미군이 감축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현재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최근 보스워즈 대북특사의 평양 방문이 거론되고 미국과 북한 간에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되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돌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직전에 미 국방부 고위관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받았다”며 남북 정상회담이 곧 열릴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를 청와대가 공식으로 부인하면서 한미 간에는 외교적 마찰의 조짐까지 보였습니다.

그 진상은 곧 밝혀졌습니다. 미 국무부 현 김 한국과장이 말한 것을 국방부 한국과장이 그대로 받아 적어와 이를 근거로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발언한 것이더군요. 언제부터 미 국방부가 국무부 말을 받아적는 부서가 되었는지,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입니다.

그리고 게이츠 장관이 SCM 참석차 한국에 왔습니다.

작년의 경우에는 “내가 한국과 특별히 협의할 의제도 없는데 굳이 그런 회의에 참석해야 하냐”며 “주한미군 사령관이 대신 참석하라”고 말한 게이츠 장관입니다. 결국 작년의 SCM은 이상희 장관이 월터 샤프 사령관과 회담을 했고 게이츠 장관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회의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5시 30분에 회의는 종료되었습니다. 사진만 찍겠다는 거죠.

그 도도하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올해는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과 함께 허겁지겁 한국으로 달려왔습니다. 국무총리를 만나고 국방부 회의에 성실히 참석하고 열심히 사진 찍고.....

탈레반들은 기지에 꼼짝없이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군대를 차례차례 박살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프간은 외국 군대에게는 죽음의 땅입니다. 이라크보다 훨씬 위험하죠. 군사력으로 아프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북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 연합방위력을 아프간으로 돌리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이유도 없이 바쁜 게이츠 장관이 한국에 왔을 리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미국에서 온 친구는 저에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며 “한국정부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한국이 아프간에 파병하면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가?

사태는 매우 비관적입니다. 애초 군대를 파견해서 아프간에 민주정부를 세우려던 시도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촘스키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프간에서의 군대 파병은 작전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너무 모호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큰 희생이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이번 게이츠 장관의 방한은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취지와 동떨어지고 평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에게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전임 정치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난의 길을 겪겠다는 신념이 아프간 문제에서는 구체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프간을 포함해서 우리가 평화에 대해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안전의 위협은 서로 다른 문명끼리 소통이 부족하고 이해심이 결여된 소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프간의 주민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문명차원의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그런 자세가 요구됩니다.

전쟁을 추동하는 유전자의 독재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아프간 문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합리적 이성,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용기가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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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