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평화칼럼-미국 소녀와 소련의 서기장 편집장의 노트

2013. 10. 23. 방송

    

그해 세계는 또 다시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파이오니어를, 미국은 순항 미사일과 퍼싱 II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ABC 방송은 10년 안에 핵 전쟁 발발을 예견하는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를 상영하고 북미대륙과 유럽에서 핵 반대 시위가 벌어집니다. 이어 1982년 11월에 새로운 소련 서기장으로 유리 안드로포프가 취임합니다. 이를 골똘히 지켜본 만 10살의 미국 소녀 사만다 스미스는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한다면 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전쟁을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 편지를 보내 물어보지 않나요?"

그러자 엄마는 "네가 해보지 않겠니?"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만다는 즉시 다음과 같이 편지를 씁니다.

“친애하는 안드로포프 서기장님께.

저는 사만다 스미스이며 10살입니다. 새로운 직업을 얻으신 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 쟁을 할까봐 걱정해왔습니다. 서기장님은 정말 전쟁을 하길 원하시나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실 건 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저는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우리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서맨사 스미스 올림“

편지는 소련의 신문 프라우다에 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로부터 기다리던 답장이 없자 사만다는 재차 미국 주재 소련 대사에게 편지를 보내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대답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섯달 후인 1983년 4월에 사만다는 안드로포프의 답장을 받게 됩니다.

“친애하는 서맨사 양에게.

소련에 있는 우리 모두는 지구상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떠한 일이든 하려고 합니다. 이건 모든 소련 사람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위대한 창시자 레닌이 가르쳐준 것이기도 하죠. 오늘날 우리는 가깝든 멀든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며 평화 속에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어 서기장은 사만다를 소련으로 초청하면서 “소련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83년 7월7일, 숱한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부모와 함께 소련으로 간 사만다는 2주 동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보고, 소련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소련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를 만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돌라온 사만다는 각종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소련에 대해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걸 알았다”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제 사만다는 미소 간의 평화 친선대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만다의 활동은 미국의 냉전세력에게는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중 9월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영공에 폭파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세계는 일제히 소련에 대한 경제제재와 강압적인 정책으로 더욱더 치닫게 됩니다. 사만다에게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과 언론의 출연 요청도 뚝 끊어집니다. 냉전의 유령이 다시 세계를 배회합니다. 악의 제국이라는 소련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날로 팽배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만다는 85년 8월에 여객기 사고로 만 13살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한 해 전에는 이미 사만다의 친구 유리 안드로포프도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사만다의 사망 소식에 비로소 미국 국민들은 긴 잠에서 깨어난 듯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이 소녀에게서 비로소 진실을 재발견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애도와 함께 조문이 밀려왔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 레이건 대통령도 애도를 표합니다. 소련은 사만다를 추모하는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그리고 그제 서야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감축 협상을 시작합니다. 바로 안드로포프가 사만다에게 약속했던 그것입니다.

지구 최후의 날을 두려워하며 소련을 다녀온 이 어린 소녀는 그녀의 죽음으로서 세상에 다시 평화의 메시지를 알렸습니다. 지금 칼럼을 낭독하는 제 앞에는 그녀의 해맑은 미소가 실린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채 13년을 살고 간 저 이린 맑은 영혼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다시 핵전쟁의 공포가 밀려오는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의 공포에 또 한 세기를 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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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