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인터뷰] 허남성 교수, 김국헌 예비역 장군 인터뷰

디펜스21+ 2012년 4월호


군사에 무지한 대통령, 정치에 무지한 군사지도자
다 같이 나라 망친다.

-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숙명적 대립을 논한다 -

 

자유주의가 날로 확산되는 사회와 영원히 보수적이어야 할 군대 사이에서는 항상 갈등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안보정책과 군 기지건설 등 군사현안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군 내부적으로는 상부지휘구조 개혁, 각 군의 전력과 예산규모 등을 둘러싼 경쟁이 존재한다.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는 서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제반 군사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할까?
고전이 된 사무엘 헌팅턴의 「군인과 국가(The Soldier and The State)」는 이에 대한 접근방법, 즉 사고의 방법을 말해준다. 지난해 저명한 학자 3명이 이 책을 새로 번역하여 한국해양전략연구소가 펴냈다. 현 국방대 명예교수인 허남성 역사학 박사, 군사학 박사이자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인 김국헌 예비역 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이자 한국경제연구원 국제전략실장인 이춘근 박사가 그들이다. 「디펜스21플러스」는 세 명의 번역가들과 함께 사무엘 헌팅턴의 사상과 철학, 미국과 한국의 민군관계에 대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좌담회 직전 개인사정이 생긴 이춘근 박사가 불참해 두 명의 번역자만으로 진행되는 아쉬움을 감수해야 했다. 좌담회는 3월 17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진행됐다.

 

대담 김종대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정리 김태형 기자 outlier87@gmail.com

 

 

허남성, 김국헌.jpg

 

트루먼과 맥아더에 대한 추억

 

김종대 편집장 (이하 편집장) : 좋은 책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57년이나 지난 책이더군요. 그 정도면 한 사람의 일생과 맞먹는 시간 아닙니까.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당시 번역에 의문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번역이 된 정본을 내주신 것 아닙니까. 이미 잘 알려진 책인데 새롭게 번역하신 배경은 무엇입니까?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국헌 예비역 소장(이하 김) : 해양전략연구소에서 번역하기로 한 의도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특히 국방문제에 대한 이론적인 필요성 때문에 이 책을 고른 것 같습니다.

 

편집장 : 최근의 상부구조 개혁과 관련이 있습니까?

 

김 :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방개혁에 관련해 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도에서 번역을 했습니다.

 

허남성 교수(이하 허) : 시대적인 요구도 있고,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간 책이란 말이죠. 고전이 되면 계속해서 출간이 되고 학생들이 배워야 할 책입니다. 애석하게도 그 이전에 나온 책들은 국제적인 저작권이 확립되기 전에 번역되어서 나온 책들이라 절판되었습니다. 시중에 다시 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시중에 출판하려면 저작권 협의를 다시 해야 합니다. 해양전략연구소에서 그런 여러 가지 의도가 있고 해서 저작권을 정식으로 확보해 이번에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장 : 김 장군님께서는 명저라 말했습니다. 젊은 헌팅턴이 30대에 집필한 책입니다. 그 당시 시대상황은 트루먼, 아이젠하워 시대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시기입니다. 젊은 정치학자에게 지적인 자극이 준 게 아닙니까?

 

: 내가 볼 때는 박사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인지는 모르나, 학자로서 초기에 헌팅턴이 책을 썼습니다. 1951년에 맥아더가 해임되는 상황이 당시로선 미국 사회에 충격이었습니다. 헌팅턴은 트루먼 대통령의 맥아더 해임은 정당하다는 것을 학자로서 논리적으로 구성해야할 필요성에 의해서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맥아더의 권위와 신화가 압도적이었기에 트루먼의 생각을 역사적으로 논리적·윤리적으로 어떻게 정당화시키느냐가 이 책을 쓴 동기라고 짐작합니다. 더불어 헌팅턴은 ‘바람직한 군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형을 설정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봅니다. 민간인 엘리트로서 군부 엘리트에 대한 저항을 제어할 합리적 구실, 명분 논리의 필연성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허 : 미국은 건국 이래 전쟁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에선 전쟁 영웅이 국민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큰 전쟁이 끝나면 전쟁영웅이 정계로 진출하고 대통령이 되기도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 맥아더와 아이젠하워입니다. 맥아더는 일본식 표현에 의하면 ‘군신(軍神)’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권위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트루먼은 젊고 정치적인 경력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죽으면서 대통령 승계를 한 트루먼이니 정치적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트루먼 대통령이 그야말로 단칼에 맥아더를 해임했습니다. 미국 안의 여론이 들끓었고, 여론은 찬반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여론은 풋내기 정치인이 아메리칸 카이사르라고까지 불렸던 맥아더를 해임한 데 비판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학계나 지식인 계층에서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를 담당하는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후로 미국의 지식인들 사회에서 분위기가 조금씩 변했고 지금은 트루먼의 결정이 옳았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정치적 책임과 군사적 책임

 

여기에 담겨 있는 핵심 화두는 정치적인 책임과 군사적인 책임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또 정치적인 책임과 군사적인 책임 사이에 어떠한 조화가 필요한 것인가 입니다. 결국 여기서 ‘군사 영역은 정치의 지배를 받는 것이 옳은 것이다’는 즉 통상 우리가 말하는 문민통제라고 하는 덕목이 나옵니다. 잘 알다시피 군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한 쪽 날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쪽 날은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국민들의 자유나 인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군대인데, 잘못하면 다른 한편으로 국내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라는 거죠. 
고대부터 ‘어떻게 효과적으로 무력을 통제하느냐’는 문제가 늘 이슈였습니다. 로마시대 때도 기원전 1세기부터 여러 차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정립된 개념은 전쟁의 개전, 그 다음으로 전쟁의 목적을 결정하는 문제, 그리고 전쟁을 종결하는 데까지 그 전 과정을 정치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군대는 정치의 수단으로서 도구로서 작용할 뿐이라는 것, 이것이 소위 클라우제비츠의 명제와 통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 김 장군님이 말씀하신대로 미국의 지식인들은 일방적으로 트루먼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헌팅턴은 특이하게 그런 지식인의 생각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과연 정치권력이 군사 권력의 작용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보장해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문제, 즉 국가 안보를 위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정치의 우위만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에 물들어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가안보를 보장해 줄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담겨있습니다. 군인들의 영역을 얼마만큼 보장해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장 : 오히려 어느 쪽의 우위보다 양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김 장군님은 이런 문제를 직접 겪어 보시지 않았습니까? 국방부에 근무했던 군사 정책가의 입장에서 이 책에서 서술한 ’문민 통제와 군사적 전문성이라는 긴장관계에 대해 어떻게 조화시키고 관계시킬 것이냐‘에 대한 경험담을 들려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김 : 국방부 장관이 문민이라 하여 문민통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문민통제만으로 안보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국방부와 우리 문민정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의 문제와 곧바로 대비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간다고하면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데… 그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문민통제를 같은 영역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허 박사님과 나는 알란 멀렛 교수의 제자입니다. 알란 멀렛 교수는 바로 이런 것이 미국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가에 대해 아주 정밀하게 연구한 분으로 이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 헌팅턴의 제자입니까?

 

김 : 아닙니다. 헌팅턴은 하버드 대학 출신이고, 알란 멀렛 교수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역사학 교수입니다. 미국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미국에서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원시적인 권력관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크롬웰 이후로 쿠데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미국에서도 뿌리 내렸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점점 국제적 분쟁을 통해 영역이 커지면서,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며 국가의 군사화 성격이 점점 강화된다고 보는데 여기서 맥아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군부영역이 넓어진다고 하여 쿠데타가 일어나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지만 미국의 국가적 영역에서 군사 영역이 커지는 데, 어떻게 적절히 포지셔닝(positioning)을 메기는 것이냐는 문제로 강력하게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경험이 미국에서 자유주의 확산시켜

 

허 : 방금 말씀하신 내용대로 연계해서 보자면 정치적인 책임과 군사적인 책임사이에, 다르게 말하면 군사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고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문민 통제의 핵심입니다. 이게 단순히 문민통제라고 하면 ‘문관이 무관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논리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문관이 아니라 국가 주체로서의 국민이 자기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양성한 무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국민을 통한 무력의 관리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영국의 경험에서 배운 것입니다. 17세기 중반 올리버 크롬웰이 찰스 2세가 전횡을 부리자 의회군을 만들어 왕에 도전해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그 전쟁을 종결시켰는데, 국왕을 응징한 그 몽둥이로 전제 정치를 해버렸습니다. 이 엄청난 간난신고를 겪고 나니 ‘어떤 전제 군주가 통치했던 시기보다 무력이 더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뇌리에 굳어졌습니다. 어디에 나쁘냐? 바로 국민의 자유와 인권에 절대적으로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영국 식민지인 미국에 퍼진 것이지요. 그러나 군사력의 역할과 기능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헌팅턴이 고민한 문제, 즉 균형이라는 것이지요. 정치와 군사적 영역의 상호존중과 균형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균형을 달성해야 하나? 바로 객관적인 문민통제가 전문 직업주의와 직결되어 있다는 발상입니다. 군사라는 전문영역을 보장해줘야 바로 올바른 문민통제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전쟁을 하려 했을 때도 전문성 있는 군대를 수단으로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문성이 갖춰져있지 않다면 수단으로 사용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헌팅턴이 이 책에서 전체를 관통하면서 아우르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장 : 이 책에서는 객관적 문민통제를 정립시키는 사상적 배경도 분석했습니다. 자유주의, 파시즘, 마르크시즘, 그러나 결국은 보수주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것이 객관적 문민통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는 의문은 ‘보수주의가 인정되는 사회에서도 왜 정치권력과 군사지도자들 간에 갈등이 발생 하는가’ 입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에도 럼스펠드 장관시절 정치와 군사의 갈등은 여전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최근 경제 부처와 국방 부처의 여러 가지 재원배분을 둘러싼 갈등, 육해공 간의 갈등, 청와대와 국방부의 갈등 등, 전문성에 대한 상호 존중이 결여된 양상은 어디서나 보입니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견해는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갈등 양상은 정책의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지 의문이 듭니다.

 

김 : 그 물음은 여러 가지 문제가 섞여있습니다. 나는 우선 군대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군인은 결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싸우면 이겨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군대는 경험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보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직에 대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개인주의가 기본이 되는 자유주의가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럼스펠드와 군부의 관계는 특이한 사례입니다. 사실 럼스펠드는 국방 전문가이고 관리자로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1970년대 39세에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럼스펠드는 문민 장관이지만 군인 관료를 우습게 알 정도로 전문성이 탁월했습니다. 럼스펠드가 70세가 넘어 또 다시 국방장관으로 부임했을 때 합참의장은 럼스펠드의 첫 번째 장관 재임 당시 소령이었습니다. 그러니 합참의장이 소령이었을 때부터 장관을 한 럼스펠드가 ‘오버’한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경제부처와 국방부 간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소위 문민 대통령이라는 존재 자체가 군사에 대한 이해부족의 문제와 숙명적으로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모두 군 출신인데, 사실상 김영삼 대통령 이후 문민대통령들은 군에 대해 잘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은 미국과는 사뭇 양상이 다른 문제입니다.

 


함석헌, “군대는 똥이다” 발언의 의미

 

편집장 : 최근 정치권력과 군사 지도자 사이의 동향을 보면 위협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군사력을 어디에 우선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도 종종 정치권력과 군사지도자들 간에 의견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더군요.

 

허 : 현실적인 차원에서 김 장군님이 말했으니까 저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역사적인 차원에서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 책이 저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에서의 갈등은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느 민주국가이건 겪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개인의 권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처음 정착 시절부터 미국인들은 자신을 총으로 방어했습니다. 굉장히 호전적이면서 비군사적입니다. 자기 자신은 군대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는 지키는 것이고 군대가 힘이 커지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비군사적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험적 특성이고 오늘날 자유민주화된 나라의 특징입니다. 첫째, 안보는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서양에 의해 유럽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국제 문제를 경시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미국은 국제 문제에 얽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고립주의로 간다는 것입니다. 셋째 군사전문 직업주의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군대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상비군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이 터지면 징집을 하고 전쟁이 끝나자 소집을 해제합니다. 평시에는 소규모의 군대를 유지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입니다. 자유, 민주, 평화라는 덕목에 상비군은 위협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넷째, 상비군은 경제에 대해서도 위협이라는 겁니다. 군이 커지면 돈을 잡아먹는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하나의 생명 유기체로서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위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수주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보수주의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적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다투게 되어있는 동물이라는 것이 생각의 출발점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고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쟁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이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 개념은 국가 이익입니다. 그 다음으로 국제 사회는 힘의 논리가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세계는 승자독식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현실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지성인으로 알고 있는 함석헌 선생은 한 때 “군대는 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군대는 똥이다’는 말은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자유주의적 생각을 많이 가졌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저는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군대가 똥이다’라는 말은 한편으로 맞는 말입니다. 함석헌 선생이 이 말을 이런 의도로 했다면 굉장한 혜안과 철학을 가지고 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의 생명 유기체로서 살아가려면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뭘 먹어야 하고 당연히 노폐물이 나옵니다. 사람이 먹기는 먹어야 하는데 똥구멍을 막는다면 그것은 죽는 겁니다. 똥은 생명 유기체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중요한 겁니다. 그 더러운 똥을 누군가는 처리해주어야 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생명 유기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국가 이익도 인간 욕구랑 똑같습니다. 자원 획득, 배분, 생산 활동에서 그 과정에서 갈등도 생깁니다. 거기에 소위 말하는 인체의 똥과 같은 것이 생깁니다. 그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처리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의 ‘전쟁이 필요악’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로 쓴 것입니다. 인체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똥이 나오는 것처럼 전쟁이 때론 필요악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지만 냇물은 바로 그 홍수 때문에 더 정화되고 한동안 깨끗해집니다. 그런 차원에서 군대가 똥이라고 함석헌 선생이 말했다면 다행입니다.
불행하게도 함석헌 선생은 이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더러운 똥이라는 의미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함석헌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식인이고 자유인으로서 고매한 인품과 사상을 가졌을지 몰라도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는 책임 의식이 결여되었고, 똥을 치워야하는 존재의 고마움을 몰랐던 것입니다.

 

김 : 함석헌 선생의 말이 마치 성철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철학적인 맥락에서 한 말인가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무교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피할 수 없는 갈등 ‘자유주의 VS 보수주의’

 

허 :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궁극적인 타협책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헌팅턴이 고민하고 갈등했던 것은 ‘과연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또는 정치와 군사의 영역 사이에 균형과 조화가 불가능한 것인가’입니다. 이 사람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가능하지만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적 가치로서 자유주의는 숭고하고 좋은 것이라는 점을 헌팅턴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를 지켜주는 게 무엇인가? 보수가 지켜준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군대다. 자유주의자들이 군의 영역과 군의 전문성에 대해서 조금 더 관대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헌팅턴의 결론입니다.

 

편집장 : 핵심적인 것을 말해주셨는데, 우리 경우를 보면 군대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하는 반감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아까 함석헌 선생의 말씀은 그때 보수주의가 너무 강해서 안티테제로 자유주의를 과격하게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김 :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군대가 무슨 전문성이 필요하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헌팅턴이 여기서 이야기하는 전문성은 프러시아 군대에서 나온 것입니다. 프러시아는 수십만 군대의 움직임을 관장할 참모본부를 창설해 전쟁을 했는데 미국 군대는 그러한 전쟁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도 작전이 아닌 전투만 했습니다. 

 

편집장 : 참모 본부가 필요 없는 전쟁을 한 거죠.

 

김 : 그렇습니다. 말 타고 총 쏘고 하는 전투지 참모 본부가 필요한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청나라가 수렵하는 것처럼 수행했던 전쟁과 같은 맥락입니다. 수렵 자체가 훈련이었던 겁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미국이 건국 이래 겪어온 전쟁인 것입니다.

허 : 미국은 전통적으로 훌륭한 시민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경험은 독립전쟁 때 정규군이 아닌 시민군으로 구성된 미국인들이 영국의 정규군을 이겼다는 잘못된 자부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편집장 : 잘못된 것입니까?

 

허 : 잘못된 생각입니다. 영국은 국제정치의 힘의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아메리카에서 손을 뗐을 뿐입니다. 제대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실 영국이 마음먹고 싸웠다면 미국이 영국을 이길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미국은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성을 무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와 엮여서 미국식 기술주의라던가 미국식 대중주의 이런 쪽으로 20세기에 올 때 까지 계속 됐습니다. 그런데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가진 생각은 경제를 하는 사람도 전문가가 더 잘하고 정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사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백정이 도축하는 칼로 사람을 수술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한 개인의 생명을 다루는 것도 이 정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국가라는 유기체의 생명을 다루는 군인의 전문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보수주의자의 생각이고 여기에 헌팅턴 생각의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편집장 :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데요. 미국은 자유주의 전통이 강했고 자유주의의 표본처럼 여겨지는데 20세기 들어 군사적으로 가장 성공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김 : 모순이 아닙니다. 강한 것은 강한 것입니다. 전쟁은 여러 가지 요소 즉 국력과 지리적, 과학적인 요인이 적용하는 것이기에 ‘자유주의에도 불구하지만 이겼다’는 설정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 : 20세기 들어 미국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어쩔 수 없이 개입하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다시 자유주의적 고립주의로 갔습니다. 군대를 축소하면서 ‘우리는 유럽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먼로주의에 입각해 고립주의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을 할 때는 국민들이 군에 열광을 보냈다가 전쟁이 끝나면 무시하는 것이 계속 거듭됐습니다. 소규모화 된 군대가 요새에서 절치부심하게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자유주의가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 시기와 20세기 초가 달라진 것은 미국 군부에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많이 나온 것입니다.
셔먼, 업튼, 루스, 그리고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의 아버지인 데니스 하트 마한 같은 선구적인 사람들이 나온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이 때 군대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유럽의 오랜 전통이 있는 군대를 배우자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전문 직업화된 군대의 특징은 총참모본부였습니다. 바로 군사 교육을 강화한 정신입니다. 또 한 가지는 전반적인 군인정신을 어떻게 길러나갈 것인가 인데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 대해 무관심한 미국 사회의 현 상태가 우리의 전문성과 군인정신 등 독특한 군대윤리를 함양할 수 있는 계기라고 보았던 겁니다.


설움 받으면서 전문성 키운 비결은 ‘군사교육’

 

이런 인식 아래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이 사람들이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의회에 로비를 해서 군사학교를 세우고 거기에 간부들을 입교시켜 군사교육에 집중시켰습니다. 그때 길러진 간부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습니다. 통한의 소외와 굴욕 속에서 굴하지 않고 전문성을 키웠기에 20세기 군사적 성공의 바탕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거듭되는 군사개혁의 시발점입니다. 월남전에 실패하고 나서도 매번 끊임없이 계기가 왔을 때마다 미국 군대는 개혁에 대한 움직임을 태동시켰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이 교육입니다. 미국 군대만큼 교육을 중시하는 군대는 없습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지금도 많은 수의 장교들이 군사 기관과 민간 기관에서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김 : 미국의 군사 혁신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군사교육 분야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군사지도자들이 프러시아를 견학한 뒤 본격적으로 군사교육부터 혁신을 한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전에도 마샬 소장이 획기적으로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그 때 훌륭한 장교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이들이 2차 대전 때 활약한 것입니다.

 

편집장 : 이게 교육이군요.

 

허 : 미국에는 큰 계기가 세 번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미국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냐면, 소위 ‘국제적 책임(Global responsibility)’이라는 인식입니다. 세계적 지도국가로서 미국의 운명이 결정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지도국가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군사력 유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 정치인들은 하루아침에 군대를 해산해버렸습니다. 800만 명을 100만 명으로 줄였습니다. 그 백만 명마저 거의 고향으로 다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5년 후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6.25전쟁이 두 번째 계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이 미국의 국방전략에 끼친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한국전쟁 때문에 미국은 상비군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상비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차츰 거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국방정책과 전략뿐만 아니라 조세와 재정에도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깨달은 것이 바로 외교에 미치는 군사력의 영향입니다. 군사력의 뒷받침이 없다면 외교는 공염불입니다. 비스마르크는 “군사력 뒷받침이 없는 외교는 은행이 잔고 없이 수표 발행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한 말을 1세기 지난 미국의 지도자들이 절실하게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다 월남전을 겪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계기입니다. 월남전에 들어간 군대도 훈련 안 된 병사였습니다. 그냥 징집해서 온 병사지요. 아무리 군사기술이 앞선다고 해도 사실 전투에 제한이 많습니다.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면 북한은 10년의 복무기간인데 비해 한국군은 21개월입니다. 병사 개개인의 숙련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월남전 이후 미국이 이 점을 깨달아 1976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지원제로 바꿨습니다. 복무기간이 길어진 것은 물론 그에 맞게 훈련을 더 강화시켰고 미국 군대는 전문화된 집단이 되었습니다.

 

김 : 보완하자면, 6.25 때 미국이 가지고 있던 육군 사단은 1950년 무렵 8개 사단이었는데 이중 7개 사단을 한국에 투입했습니다. 유럽에는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미국의 군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폭 줄었습니다.

 

편집장 :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경제상황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2차 대전 전에는 대공황으로 미국의 실업자가 800만 명이고 산업시설의 반이 놀았습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실업자를 병력으로 충원할 수 있었고, 산업도 전시 체제로 전환하기가 용이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거의 완전 고용 수준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군이 징집했던 사람들을 빨리 경제에 투입해야한다는 국가적 요구가 강했습니다. 그런 점까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군대의 많고 적음만을 논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황과 호황에 따라 군사 외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데, 이 점은 트루먼 대통령 때 아주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지 않습니까?

 

김 : 미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군사경제입니다. 미국의 군사력도 군사력이지만 경제적으로 마셜 플랜을 통하여 미국 경제가 전 세계를 가동시켰습니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경제력은 전 세계 경제의 50%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실세 국방 차관의 전횡은 대통령의 탄핵 사유

 

편집장 : 잘 이해 가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인 1947년, 국가안보법으로 미국의 국방부나 NSC는 제도화가 잘 됐는데 왜 미 합동참모본부는 개혁되지 않았습니까? ‘왜 제도화가 더딘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더불어 의회와 합참 간의 전비 조달이나 국방비 규모와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도 눈에 띕니다. 또한 다른 문민통제 제도는 잘 발전하는데 왜 각 군 간의 육해공군의 예산 분배 문제, 지리멸렬한 내부 조정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십니까?

 

김 :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2차 대전 때 루즈벨트와 그의 참모장 마샬은 탁월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이들이 지도하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2차 대전의 전쟁지도는 마샬의 위상과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본래 합참은 육해공군 대립의 전통이 있습니다. 1950, 60년대의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초대 미국 국방장관인 포레스탈의 자살사건도 있었던 것입니다.

 

허 : 미국 헌법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국 헌법은 소위 말하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의 기초를 다질 당시 군사적인 통제나 문민 통제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럽의 사례를 참고로 소위 무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래서 무력을 통제하는 권한을 분산시켰습니다. 집중의 부작용을 걱정해 분리한 것입니다. 미국이 출범할 때 연방 정부와 주정부를 만들었고 군사력에 대한 통제도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분산했습니다. 지금도 내셔널 가드는 주정부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동원도 주지사 권한입니다. 또한 연방정부 안에서는 행정부와 의회사이에 국방 권한을 분산시켰습니다. 국방 예산과 군에 관련된 문제는 의회에 권한이 더 많습니다. 예산, 즉 지갑을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행정부는 대통령이 최고 사령관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이 과연 군사 지휘권을 가지느냐는 논란입니다. 국왕이 직접 전쟁을 지휘하는 것처럼 그것을 잠깐의 시간동안 부분적으로나마 했던 링컨 대통령 이후 대통령은 작전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아직도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편집장 : 이제 미국보다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렸으면 합니다. 군사력을 통제하는 데 있어 문민통제의 위기가 우리에게도 여러 번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 : 이상희 장관 때 장수만 차관이 장관을 뛰어넘어 청와대와 직거래를 했습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장수만 차관에게 그런 임무를, 또는 언질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것은 문민통제 이전에 국가조직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통수권 대리자입니다. 차관은 장관의 보좌입니다.

 

허 : ‘문제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김 : 이것은 대통령 탄핵감입니다.

 

편집장 : 사실 장 차관은 알아서 목이 날아갔습니다.

 

허 : 아닙니다. 장 차관이 아니라 이상희 장관의 목이 떨어졌습니다. 차관은 그대로 두고 장관을 해임한 것은 아주 근본적으로 잘못됐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문민통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최악의 사건이고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든 것입니다.

 

김 : 원칙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고전, 사고의 방법을 일깨워

 

편집장 : 현역 장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길잡이가 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책을 쓴 헌팅턴이 미국과 독일, 유럽과 역사에서 지혜를 얻고 논리와 사상을 전개했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군인으로서 지녀야할 것을 제대로 잘 뽑았습니다. 선진국들의 경험이기에 참고하면 좋습니다. 군대 전문성의 문제, 책임성의 문제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치 지도자 역시 군인에게 군인다운 일을 확실히 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합니다.

 

허 : 고전이라는 것은 시공을 넘어서는 생명력을 가지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군사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것입니다.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직접 해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고전을 읽으면 곧바로 적용 가능한 노하우를 얻어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고전에도 패스트푸드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얻고자하는 것은 그 책이 담고 있는 사고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일러주는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의 정리를 하면 헌팅턴이 하고자 하는 말은 정치와 군이라는 전문적이고 독특한 영역, 힘, 그 사이에 갈등도 있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서로 균형을 맞춰주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군 간부들이 깨달아야 할 핵심적인 교훈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는 군인은 정치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중립이라고 말을 합니다. 국가는 정치에 의해 운용됩니다. 사실 정치, 외교, 사회, 문화, 과학, 기술 등의 모든 요소를 배분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군이 자칫 잘못하면 그런 권위에 기대 때로는 개인적인 욕심이나 군이라고 하는 조직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의 힘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길게 보면 독입니다. 둘째는 정치로부터 중립을 지키라는 것은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몰라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치를 정말로 잘 이해해야 되고 정치의 생리와 기능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칫 정치의 영역을 침해할 수 있고 정치를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정치에 오염되지 않아야 하지만 정치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인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오로지 국가 안보에 매진해야 합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갈등의 요인도 국가 안보입니다. 어떤 체제에서 국가 안보가 잘 지켜질 것인가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갈등의 핵심입니다. 끝으로 군인들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선진화의 길로 가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민이 제주해군기지나 평택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같은 군사 안보 영역에 이해가 부족합니다. 특히 정계의 사람들은 심하게 말해 무식합니다.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정치지도자가 얼마나 있는 가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김 : 이 책이 나온 것이 1956년입니다. 이 책이 나올 무렵 서독 군대가 만들어졌는데, 나치와 군부에 국가가 유린된 것을 철저히 반성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적으로 어려웠겠지만 이 부분이 여기에 나오지 않은 게 아쉬운 점입니다. 그리고 1944년 히틀러 암살사건 평가도 지나치게 고식적인 원칙론으로만 처리한 것도 이 책의 한계라면 한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군대윤리라는 차원에서 다시 책 하나를 썼어야 할 만큼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명령 불복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편집장 : 명령 불복종에 관한 문제인데요. 정치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는 버스기사가 미치광이라 잘못 운전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와 비슷한 것 아닙니까?

 

김 : 영화 ‘발키리’에도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군인으로서 도리인 충성 서약을 어긴 것으로 단순히 처리했습니다.

 

편집장 : 그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독일 군대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판단하고 어떤 경우에 판단한 것인가가 예민한 문제입니다.

 

김 : 이 책의 한계로서 그런 측면이 있다고 인식을 하는 정도가 좋겠습니다.

 

허 : 이 문제는 사실 정치와 군의 관계에서 영원토록 완전한 해결책이 없는 주제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유수한 군사 지도자들은 전범 재판이 열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긴 편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자는데 우리가 졌다면 우리가 재판정에 서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직업 군인들은 전범 재판 자체를 비판적으로 봤습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전쟁 윤리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세 가지입니다. 개전 단계에서의 윤리, 전쟁 수행 단계에서의 윤리, 종전 단계에서의 윤리입니다. 개전 단계에서의 윤리는 과연 기습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 전쟁 수행단계의 문제는 비인륜적 행위는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홀로 코스트 같은 것입니다. 종결하는 과정에서는 ‘과연 어느 단계에서 종결할 것인가’입니다. 미국은 재빨리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독일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했지만 그것 때문에 전쟁이 3개월 이상 더 길어졌고, 그 때문에 불필요한 인명손실과 파괴가 늘어났거든요. 그래서 일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윤리에 대한 책임을 많이 따지지만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것은 정치입니다. 정치 지도자를 단죄할 수 있어도 군인을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 단죄하는 것은 그렇게 옳은 일이 아닙니다. 단 군사 지도자가 전쟁 수행 과정에서 비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면 거기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김 : 정치 지도자에게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묻는 것은 승전국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입니다. 내부적으로 책임규명이 어떻게 됐느냐는 것. 즉 독일 스스로 책임을 묻는 것은 미국과 영국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 : 그러나 그것은 2차 대전 이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적국의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전범 처벌을 한 예는 오직 2차 대전만의 일입니다. 자기에게 보다 더 유리한 평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A와 B라는 양쪽 나라의 균형을 볼 때 대등하면 전쟁이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양국관계에서 계속 국익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외교적인 접근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폭력을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킵니다. 거기서 이겨야만 자기가 유리하다고 보는 평화가 생깁니다. 나에게 보다 더 유리한 평화를 창출하기 위한 전쟁. 이러한 인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전 전쟁에서는 패전국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2차 대전에서만 이러한 인식이 달라졌던 겁니다.

 

편집장 : 사실 여기서 윤리학이 새롭게 싹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군인은 어떻게 복종하느냐라는 주제로 한나 아렌트라는 학자는 ‘복종’과 ‘응종’이라고 구별해서 접근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전범재판을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전쟁 범죄에 가담한 장교들이 지극히 평범한 군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신은 상부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라고 재판정에서 당당히 주장했지요. 여기에서 ‘복종’이라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냐는 문제가 발생했지요.

 

김 : 육사에서도 바로 이것을 가지고 전쟁 윤리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허 : 전쟁의 윤리 문제가 나옵니다. 소위 정전(正戰)론, 즉 정의의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편집장 : 유엔차원에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허 : 그것이 어려운 이유가 국제 사회는 무정부사회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가 한 국가라고 하는 차원에서 통용되는 법적인 질서, 즉 국제법이라는 건 강제성이 없습니다.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 : 그래서 군대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라고 할 때 중요한 내용이 그 리얼리즘, 현실주의입니다.

 

편집장 : 네 알겠습니다. 오늘 토론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되는 점도 있었지만 아직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더 많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반드시 의견이 일치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점이 또한 드러났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바로 민주주의가 아니겠습니까? 장시간 토론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허남성
육군사관학교 26기 졸업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역사학 석·박사(전쟁사)
육사 교수, 대통령 비서실·경호실 파견근무
국방대 교수부장, 안보문제연구소장 역임
현 국방대 명예교수, 한국위기관리연구소장
저서「세계 전쟁사(공저)」, 「전쟁과 문명」외 역서「한국전쟁의 진실 : 기원, 과정, 종결」 외

 

김국헌
육군사관학교 28기 졸업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역사학과 석사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군사학 박사
육군 소장 전역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저서 「국가 전략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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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