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을 넘어선 진실, 미 기술패권과 무능한 한국정부 사건내막

 

 

필자는 최근 미국이 조사하는 한국 공군의 타이거아이 무단해체 의혹에 관한 두 건의 기사를 <디펜스21>에 게재한 바 있다(미국, 한국 F-15K 기술유출 혐의 고강도 조사, 2011. 10. 28. 미국, 한국형전투기 우려 ‘기술 유출 막말’ 소동 2011. 11. 01 기사참조). 이 두 건의 기사에다가 보다 심층적인 취재기사는 11월 18일에 필자가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 D&D Focus 12월호에도 게재하였다.

최초 보도를 한 필자는 본인의 기사를 계기로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추가적인 심층취재와 후속보도를 기대했었다. 군 정보기관에서도 기사의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해 주변을 털고 국정원에서도 자체조사가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타이거아이 논란은 정부 내에서도 몇 사람 밖에 모르던 특급정보”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이를 최초로 보도한 필자가 더 이상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고 당분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사실 왜곡과 실수들이 나타나 불가피하게 이 문제를 재론하지 않을 수 없다.

 

 

색깔론으로 ‘물 타기’ 시도한 언론

 

먼저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데 실수한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필자가 디앤디에 기사를 작성하면서 이 사건을 조사하는 주체가 미국의 기술이전협회(DTCC : Defense Technology Coversion Council)라고 언급한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DTCC는 과거 미국이 소련을 비롯한 동구의 붕괴로 인해 핵무기 해체를 위해 설립한 전문기관으로 이번 타이거아이 의혹에 대한 조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연합뉴스 11월 18일자 기사에서 “군사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산하 '국방기술이전협회'(DTCC)를 통해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방산 업체에서 제작한 첨단 장비에 사용된 기술 등을 정밀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며 필자와 일찌감치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조사한 기관은 DTCC가 아니라 미 국무부 산하의 '군사교역통제국(DDTC : Directorate of Defense Trade Controls)'이다. 두 기관은 명칭이 비슷하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앞으로 타이거아이 문제 처리방향의 열쇠를 쥔 중요한 기관이 DDTC라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작 알 수 없는 것은 유력언론 마저 필자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DDTC를 감독하는 미 국무부의 고위 관리는 8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타이거아이 관련 의혹을 제기한 수석부차관(Principal Deputy Assistant Secretary)인 밴 디팬(Van Diepen)이고, 주한미국대사관에서는 상무과가 대사를 보좌하며 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언론보도의 백미는 18일에 인터넷에 올라온 조선일보의 "CIA, 訪韓해 방위사업청 조사 괴담까지… 세계 3위 규모 한국 防産시장은 전쟁터“라는 기사이다. 기사에서는 “내년 10조대의 무기도입 결정 앞두고 한국무기수출 견제 정황 이용… 反美감정 확산 노렸을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갑자기 ‘괴담’이나 ‘반미감정’이라는 자극적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의외지만 그동안 타이거아이 관련 소동이 ‘해프닝’에 불과한 것으로 단정 짓는 대담함까지 보여 졌다.

이 보도처럼 타이거아이 논란이 해프닝이라면 8월 하순에 사실상 차관급인 미 국무부의 수석부차관 밴 디팬이 11명의 조사단을 이끌고 들어와 우리 정부에 강력히 항의한 것도 해프닝이고, 미 의회가 글로벌호크 정찰기 수출 승인을 보류한 것도 해프닝이며, 미 국방부에 차관보급을 위원장으로 한 한국의 기술보안위반 조사위원회를 편성한 것도 해프닝이다. 아무리 타이거아이 무단해체 의혹이 부풀려진 것이라 해도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더 나아가 ‘반미감정 확산“이라는 주장은 정도가 지나친 색깔론이다.

사실 조선일보의 이런 식의 보도는 그동안 의혹이 불거지고 그 여파가 방산 업계로 확산되는 동안 이를 ‘남의 일’인양 방조해 온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기에 가능하다. 심층 취재는 없었다는 얘기다. 방사청과 국과연은 이제껏 이 문제가 불거지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금도 역시 관련 사실을 은폐한 채 보신주의에 급급한 채 필자의 취재원을 색출하는데 온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더 나아가 타이거아이 의혹이 제기된 것이 미국과 유럽회사들 간의 무기판매 경쟁이 격화된 것과 연결하는 것 역시 지나친 논리비약이다. 만일 한국에 대한 무기판매가 그처럼 중요하다면 미국이 10조원 대 무기 판매를 앞두고 이 번 사건을 터뜨릴 이유가 없다. 그러한 무기판매와 별도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발휘되는 미국의 기술 패권과 허술한 한국의 기술관리가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미국 심기 자극한 3개의 사건

결론을 말하자면 타이거아이 의혹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담’이 아니다. 6월의 타이거아이 봉인 훼손 논란은 그 이전에 발생한 두 건의 대형사고와 관련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개발상까지 수상한 F-16의 전파 방해 장비인 ALQ-200의 파기스탄 수출 좌절 사건이다. 동아일보 2009년 3월 2일자에는 “LIG넥스원 관계자는 ‘현재 KF-16 전투기의 절반가량이 독자 기술로 생산된 ALQ-200을 장착하고 있다’며 ‘올해 안으로 파키스탄에 장비를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며 공장 취재 기사를 올렸다. 파기스탄은 주로 중국제 무기를 사용하는 나라인데 여기에 한국이 첨단 핵심장비를 판매한다고 언론에 보도 기사를 내자 미국은 크게 놀랐다. 미국은 즉시 “한국이 판매하는 ALQ-200이 중국 전투기에 장착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과정에서 “ALQ-200이 한국의 독자기술이 아니라 미국제 기술을 도용한 장비”라는 새로운 사실까지 밝혀냈다. 이에 국과연은 “순수 한국기술이 맞다”며 인증서까지 발급하였으나 미 측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우리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런 논란의 결과는? 한국의 명백한 KO패. 그래서 파기스탄 수출은 물 건너갔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나? 국과연 주장만 믿고 미 측에 항의했던 LIG는 엄청난 보복을 당했다. 이후 미 측으로부터 핵심부품 수입 길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이런 ‘재앙’은 국과연의 성급한 실적 홍보와 깊은 관련이 있다. 국과연은 2009년 7월 8일에 “국방과학연구소는 최근 반경 100m 이내의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EMP탄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국과연은 2014년까지 피해반경이 1km에 이르는 EMP탄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기절한 당사자는 국방부였다. 핵심 비밀무기 개발을 언론에 홍보한 국과연은 강도 높은 조사와 함께 경고를 받았고 국과연 홍보실은 폐지되었다. 이후 국과연은 자체 홍보기능이 없어진 채 공보사항에 대해서는 방사청 통제를 받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국과연의 과도한 실적주의에서 비롯된 언론보도에 대해 우리 국방부와 미국은 다 같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

그런데 이 글에서 당장 밝히기 어려운 또 하나의 대형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 아무래도 또 취재원을 터는 일이 벌어질 것이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ALQ-200에 이어 ‘그 사건’까지 터져 미국이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낙인찍으려는 순간에 바로 연이어 타이거아이 사건이 터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며 칼을 뽑아 들었다. 한국에 대한 의혹은 전방위로 확산되었다. 해군의 이지스 체계, 국과연이 개발한 청상어, 홍상어 어뢰, 삼성탈레스의 K1A1전차 사격통제체계, 한화의 MLRS 등 미국이 의혹을 제기하는 범위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방사청과 국과연, 석연치 않은 해명

 

그러면 이런 사태의 결말은 무엇일까?

미 대사관 관계자는 “절대 한국을 봐 주는 일은 없다”고 필자에게 잘라 말한다. 봐 주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는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일단 외교적으로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조용하게 처리하되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과 한국무기 해외수출을 집요하게 견제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내년도에 미국무기 도입에 있어 한국의 협상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협상의 지렛대’로 타이거아이 사건을 미국이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국이 잘못한 것을 다 까발리고 법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한 다음에 무기도입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이제껏 미국 무기에 당한 각종 불만과 설움이 터져 나오면서 미국 무기에 대한 나쁜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다. 조선일보가 의식해서 반미 감정 운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차라리 이 편이 낫다고 본다. 우리가 친미, 반미가 두려워서 할 말을 못하고 사건까지 은폐할 이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미국의 기술패권이 무엇인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이전에 어떤 장벽들이 있는 지 알 권리가 있다.

예전에 고장이 자주 나기로 악명이 높은 백두 정찰기 정비를 못해서 핵심 구성품을 미국까지 들고 가니까 겨우 밧데리 하나 교체해주었다. 그렇게 하려고 많은 돈을 싸가서 고쳐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우리 처지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미국이 기술보안을 외치며 우리에게 핵심기술에 접근을 금지시키는 배경은 반드시 첨단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만이 아니다. 실제로는 간단한 원리의 장비를 한국이 뜯어보았을 때 의외로 별 것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을 미국이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미, 친미 운운하기 이전에 더 근원적으로 개혁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방사청과 국과연의 실적 부풀리기 행태들이다. 미처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무기를 명품무기라고 홍보하고, 조용히 추진해야 할 무기 수출을 외부에 홍보하다가 미국에 덜미 잡히고, 중요한 개발은 업체에 하청을 맡기면서 마치 자신들이 개발한 것처럼 포장하는 등등 그 부작용은 이미 도를 넘었다. K-21장갑차, K11복합소총, K2흑표전차 파워팩 개발 등등, 지금까지 국과연이 관리 잘못해서 생긴 재앙이 한 두 가지인가?

우리가 2002년에 FX 1차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잉사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이 무려 15억달러다. 그 기술 자료들 어느 창고에서 썩고 있나? 기술이전을 국과연이 독식했다면 지금쯤 타이거아이와 같은 여러 항공전자 장비의 개발 실적이 나와야 한다. 15억 달러 말고도 매년 1조원 가까운 돈을 쓰는 국과연의 산출물이 과연 그만큼 될까? 무기체계 개발에 실패해도 지체상금 한 푼도 내지 않는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사업의 효율성에도 관심이 없다. 언제 개발해도 상관없는 만만디 기관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체에 개발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무언가 기술실적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남의 기술을 슬쩍 도용했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ALQ-200 장비와 같은 논란은 국회에서 특별조사를 해서라도 밝혀야 한다. ‘국과연 망국론’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여기에다가 세간에 떠도는 타이거아이 봉인훼손에 ‘국과연 개입설’의 진위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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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