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대담한 비둘기조롱이 정지비행 윤순영의 시선
2016.10.31 15:27 윤순영 Edit
장거리이동 유명한 맹금류
동북아에서 번식 뒤 남아프리카로
순식간에 낚아채는 사냥의 달인
텃새인 까치가 텃세 부려도 딴청
» 날카로운 눈초리로 먹이를 찾는 비둘기 조롱이. 작은 몸집이지만 비행술과 인내력은 놀랍다.
벼가 황금색으로 물들 무렵인 9월 중순과 10월 중순 사이 비둘기조롱이가 김포와 파주 평야에서 관찰된다. 이유는 중부 서북지역이 이들의 이동 길목이자 먼 길을 떠나는 비둘기조롱이에 필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잠자리가 한강하구 평야에 많이 서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경기도 파주시 송촌리 평야.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관찰되는 나그네새인 비둘기조롱이는 장거리 이동으로 유명한 맹금류다. 동북아시아에서 번식한 뒤 남아프리카에서 월동하기 위해 인도와 아라비아 해를 건넌다. 번식지로 돌아오는 경로는 아직 수수께끼다.
» 황금색으로 물든 벼이삭 위로 잠자리가 날고 있다.
해마다 150여 마리가 넘는 비둘기조롱이가 파주평야를 비행하며 잠자리의 별식을 즐겼지만 올해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9월 26일부터 보름 남짓 관찰했지만 20여 마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의한 이동경로 변경, 혹은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특성을 악용한 그물 이용 밀렵으로 개체가 적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 사냥감 잠자리에게 쏜살 같이 달려드는 비둘기조롱이.
특히 인도의 나갈랜드지역에서 그물을 사용해 이들을 대량으로 잡아 구이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에도 비둘기조롱이 개체수 변화를 눈여겨 봐야 될 것 같다. 비둘기조롱이는 별안간 큰 행동을 하거나 일부러 쫓아 앉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큰 방해요인이 없으면 친숙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새다.
» 전깃줄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는 비둘기조롱이.
비둘기조롱이는 무리 짓기를 좋아하고 인가 근처 농경지 전깃줄에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주변 환경에 호기심이 많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항상 여유롭게 주위를 자주 살피기도 한다. 비둘기조롱이는 얼핏 보면 비둘기와 닮았다. 그래서 비둘기조롱이란 이름을 가졌다.
» 기지개를 펴며 여유롭다.
주로 아침과 저녁에 사냥을 하고 휴식을 취 할 때 무리를 지어 휴식하는 습성이 있다. 비둘기조롱이는 앉아 있는 모습은 어수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날 때 와 사냥을 할 때 현란한 사냥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사냥감을 순식간에 낚아챈다. 사냥 후 사냥감을 가지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사냥한 먹잇감을 서로 뺏는 일도 없다.
■ 비둘기조롱이 수컷의 정지비행
10월 9일 비둘기조롱이가 정지비행을 했다. 밖으로 나온 땅강아지를 사냥하기 위한 모습이다. 여러 해 비둘기조롱이를 관찰했지만 처음 목격하는 광경이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 비둘기조롱이 암컷의 정지비행
■비둘기조롱이의 땅강아지 사냥 모습
» 까치가 텃세를 부리며 다가오자 물끄러미 쳐다보는 비둘기조롱이 수컷.
20여 일간 한강하구 농경지에서 머무는 비둘기조롱이는 나그네새이지만 해마다 지정된 사냥터를 이용하고 휴식하는 자리가 각자 정해져 있다. 수컷이 다소 경계심과 소심한 성격을 지녔고 암컷은 대범하고 사냥 실력이 뛰어난 것이 관찰되었다.
비둘기조롱이는 아직까지는 세계적 개체수가 많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보전등급은 '최소 관심종'이다. 그러나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탓에 비둘기조롱이는 오히려 보호가 필요한 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