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버리자, 봄은 정리의 계절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정리.jpg »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정리엔 ‘꽝’이다. 거실에 내 전용 책상이 있는데 항상 책상 위는 책과 서류더미들이 쌓여있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 쓸 지도,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0년 전, 15년 전 옷과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다. 책도 책장 가득히 꽂혀 있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옷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려고 다 쌓아뒀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처음에는 “어떻게 거실이라는 공용 공간에서 이렇게 정리도 안하고 사니? 제발 정리 좀 해라!”“버리는 물건은 없는데 물건이 계속 들어오니 집안이 난장판이다”고 핀잔을 줬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그런 핀잔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냈다. 퇴근해서 아이들과 눈 맞추고 놀아주기도 아까운 시간에 책상 따위를 정리한다고 시간 낭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버릴 수 있는 물건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남편이 잔소리를 해도 내게 먹히지 않자 남편은 회유 작전에 돌입했다. 최근 정말 오랜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 드라마를 함께 보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할 지경이었다. 같은 드라마를 보며 희희낙락거리는데 신혼 때처럼 다정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기분이 묘하면서 ‘아~ 우리 둘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 티비 본 게 얼마만이지? 신혼 때 생각난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남편은 잘 정돈된 티비 속 집안을 보며 나즈막하게 혼잣말로 속삭였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슬퍼보이기도 했고 체념한 듯한 표정이기도 한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꿈 깨시지. 저런 집에서 살고 싶으면 이사를 가거나 아예 우리 집을 사야해. 우리 집도 아닌데 돈 들여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지도 않다고, 난’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최근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를 활활 불타오르게 한 책이 있다. 바로 도미니크 로로가 지은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문학테라피 펴냄)이라는 책이다. 정리엔 ‘꽝’인 여자지만 정리에 관련된 책을 나는 좋아한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위즈덤하우스 펴냄)은 진작 읽었고, 수납법의 정석을 알려준다는 <까사마미식 수납법>(동아일보사 펴냄)도  이미 봤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읽고 하루 15분 꼬박꼬박 책상 정리를 해보려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고, 까사마미식의 깔끔한 정리는 감히 흉내내지 못할 것 같아 눈요기로만 즐겼다.
 
그런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도미니크 로로의 책을 읽고 정리에 발동이 걸렸다. 정리가 단순히 정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며 삶의 태도라는 관점 때문이다. 지은이는 정리를 잘 하면 시간을 늘려주고, 걱정을 줄여주고, 에너지를 샘솟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정리는 단순히 기술적 정리, 자기 계발적 정리가 아니다. 지은이는 “비움은 진정한 치료법일 뿐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자 예술이다”고 말한다.
 
더불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돈을 잃은 것 같은 두려움과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불행한 삶을 살았거나 단편적인 행복에 집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버림받은 사람들, 부모의 간섭에 시달린 경우나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잘 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은이는 정리를 잘 하려면 잘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려움을 걷어차고 과잉적 삶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버리려면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 지, 어떤 것이 필요없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강조한다.
 
저자가 써 놓은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그동안 내가 너무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과거의 추억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현재를 제대로 잘 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려면 좀 버리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당장 버리거나 남에게 주거나 팔 물건들의 목록들을 적어내려갔다.
 
1. 서랍 가득 쌓인 옷: 최근 2년 이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살을 빼서 입겠다고 고이 간직한 옷, 유행 지난 긴 코트, 집에서 입으려고 보관했던 각종 수유복, 똑같은 색깔의 똑같은 디자인 옷 중 한 벌, 나이가 들어 이제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 남편의 낡은 곳, 남편에게 안 맞는 옷, 남편이 잘 입지 않는 옷 
 
2. 쓰지 않는 유아용품들과 장난감: 유모차, 신생아 카시트, 신생아 침대, 사이즈 맞지 않는 아이들 옷, 신생아 장난감
 
3. 책장 가득한 책: 과거 읽었던 책 중 이제는 관심없는 책, 지금 취재하는 것과 관련 없는 책, 다시 읽지 않을 소설책
 
4. 테이프와 시디: 추억이 어린 내가 고등학생 때 너무 좋아했던 가수들의 테이프와 자주 듣지 않을 시디

과감하게 버리기로 마음 먹고 버렸더니 수납 공간이 넉넉해졌다. 옷장 수납 공간이 넉넉해지고, 집안 곳곳에 있던 종이 박스들이 사라지니 공간이 예전보다 여유로워졌다. 아~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너무나 과감하게 물건들을 버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놀라면서 “그거 버리게? 놔둬~”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 이 옷 한 번도 입은 걸 못봤어. 그냥 버려”라고 말하고 과감하게 버렸다. 이렇게 며칠을 정리에 꽂혀 살았고, 대대적으로 집안 정비를 했다. 딸은 “엄마~ 요즘 엄마 왜 이렇게 정리를 열심히 해요? 엄마는 정리쟁이!”라고 말할 정도다.
 
한번 꽂히면 그것에 쏙 빠져 그것만 하는 나는 이번에 확실히 정리를 통해 쾌감을 맛봤다. 정리를 하니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있어도 제대로 활용 못 하던 물건들을 제대로 활용하게 됐다. 그리고 공간적 여유가 생기니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다. 그리고 각종 정리 관련 용품에도 눈을 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밤을 꼴딱 새면서 한 쇼핑 사이트에서 정리 관련 용품들을 보면서 주방 정리용품, 서랍 정리 용품들을 구입했다. 정리를 하겠다고 하더니 물건을 사들인다고 뭐라 할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나는 정리 관련 용품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양말이나 브레지어 등을 쏙 넣어 정리할 수 있는 부직포 정리함과 서랍의 각종 물건을 이단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 헤어 드리이기 거치대와 주방 서랍을 이단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선반, 화장품 정리대 등은 정말 실용적이었다. 카시트나 아이들 장난감 등을 동네 커뮤니티 까페에 팔아 작은 돈도 벌어 덩달아 기분도 좋았다.
 
정리를 열심히 하자 아이들도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모님께서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자기 전에 자신들이 썼던 장난감을 싹 정리하고 난 뒤 “엄마! 내가 정리했다~ 나 정리 잘하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모님께서는 냉장고 안 정리를 알아서 해놓기도 하셨다. 남편은 남편 방을 알아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봄은 시작의 계절이지만 정리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봄 햇살이 따뜻한 주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집안 정리를 해보면 어떨까. 정리 ‘꽝’이었던 내가 해방감을 한 번 맛보니 ‘정리 강박증’마저 생길 분위기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정리했다고 정리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주기적으로 잘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무엇을 얻고 사고 취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버리고 덜 사고 덜 취할 것일까를 앞으로는 더 고민해봐야겠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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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