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열심병 버리고 쉴 땐 쉬자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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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전날 잠시 고민했다. 휴일인데 회사에 나와 일을 할까, 아니면 집에서 아이들과 놀까?

 
날마다 스트레이트 기사로 승부를 내야 하는 편집국에서는 휴일에도 다음날 신문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 나와서 일을 한다. 그래서 기자 생활이 힘들고, 기자 엄마는 죽을 노릇이다. 남들 쉴 때 쉬지 못하고, 항상 긴장된 생활로 에너지 방전 상태다. 그래서 좋은 엄마 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온라인쪽에서는 집에서도 사이트를 손볼 수 있고, 미리 준비를 한다면 휴일날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기사를 쓰지 않는 이상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물론 해야할 일이 산더미고, 나와서 일을 하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겠지만, 고민을 거듭하다 “집에서 사이트 손보고, 다 잊고 아이들과 놀자”고 결정했다. 사실 이 결정을 하게 된 주 이유는, 몇 달 전 사놓은 서울랜드 자유이용권때문이다. 3월4일까지가 유효기간인 그 티켓을 반드시 써야만 했고, 시터 이모님이 없는 주말보다는 주중에 함께 놀러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회사로 복귀한 지 벌써 3개월 반 정도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을 하고 살았는지, 최근 목 주변 근육이 굳어 돌아가지 않는 사태를 맞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너무 많은 글을 쓰고 댓글을 써대 손목과 팔 주변 근육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찜질을 하고, 남편이 주무르고, 침을 맞았지만 계속 목과 손목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친정어머니가 오셔서 찜질방을 갔는데 6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전신 경락 마사지를 받고 난 뒤에서야 목이 겨우 돌아갔다. 발목 다친 곳이 좀 나아지자, 목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맞이했고, 그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내 생활을 되돌아보게 됐다. 아, 난 어느 순간 또 과욕을 부리고 있었구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선 내 스스로를 잘 조절해야 하는데, 또 너무 열심히 달렸구나.
 
발목 다쳤을 때 운동하다 다쳤다고 말하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너 또 운동 열심히 했지?”
그 얘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순간, 좀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 욕심 많은 사람. 잘 쉴지 모르고, 욕심 부리다 제 몸 다치는 사람. 잘 쉬고 재충전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놈의 인정 욕구때문에 난 내 몸을 혹사시킨 적이 많다. 앞으론 긴장을 풀고 좀 더 여유를 가져보자라고 마음 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은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휴일을 앞두고 난 또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할 일이 많은데 쉬어도 괜찮을까?라고...아무래도 ‘열심병’에 걸렸나보다. 쉬는 날 쉴 수 있으면 쉬어야지, 난 왜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세상을 뒤엎을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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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운영하는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 이 곳에서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독자들과 소통하고, 좋은 육아 관련 기사를 발굴해 기사를 쓰고, 신뢰할 만한 육아 전문가와 필진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또 육아 관련 콘텐츠을 앱으로 구현해보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의 업무다. 한 달에 한번 사내 칼럼인 프리즘을 쓰고, 3월 셋째주부터는 2주에 한 번 건강면도 써야 한다.
 
베이비트리로 복귀하기 전에는 많은 고민을 했다. 편집국 기자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베이비트리라는 신생 사이트에서 기사 쓰는 일 이외 다른 업무까지 병행하면서 육아 라는 분야를 개척해 볼 것인가.
 
사회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나는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건강면을 담당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경제 분야를 주로 취재하면서 거기에서의 전문성을 쌓고 싶었다. 증권·부동산·유통 분야를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정책이나 거시 경제까지 다뤄보면 경제를 보는 나만의 눈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첫번째 육아휴직 뒤 경제부로 복귀하려 맘 먹었다. 그런데 편집국 인사를 담당하는 부국장께서 복귀 직전 내게 이런 제안을 하셨다. 이제까지는 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부서만 돌았는데, 이제는 기획 기사를 써보는 부서로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이다. 한 주에 한번 마감하는데, 특정 주제를 잡지 기사 형식으로 소화하는데 이런 식의 기사를 써보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한 주에 한 번씩 전면을 털어 건강면 커버를 쓴다는 것은 지면 할애도 많이 하는 것이라며, 이것으로 스스로를 실험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했다. 경제부 기자로서의 꿈을 키워오던 나는 선배의 제안에 또 다시 고민을 했다. 아직 스트레이트 기사도 제대로 못쓰는데, 다른 곳으로 가도 될까? 커버 기사를 잘 쓸 수 있을까? 등등. 여러 생각 끝에 난 어정쩡하게 답변을 했다. 경제부를 지망하지만, 건강면을 하라고 하면 하겠다는 식으로. 조직에서는 건강면을 담당할 기자가 필요했고 나는 결국 건강면을 맡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리지만 젊었을 때 아파본 경험이 있는 나는 건강에 관심이 많았고, 의외로 건강 관련 취재를 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건강면을 맡고 있던 중, 신뢰할 만한 육아 사이트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논의가 회사에서 나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김미영 선배와 함께 베이비트리를 열게 됐다. 건강·육아 담당 기자를 하다 둘째 아이를 낳았고 육아 휴직을 한 뒤 또다시 복귀 시점이 왔다. 베이비트리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경제부를 지망할 것인가?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물었다. 또 어떤 것이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들고,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인지 물었다. 내 마음 속에서는 ‘베이비트리 네가 만들었는데, 거기서 최선을 다 못한 거 아니냐? 육아라는 새로운 분야를 네가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 육아라는 분야를 편집국에서는 중시하지 않지만, 사실 독자들에겐 가장 중요하지 않느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랑 연결되는데 편집국에 있냐 온라인에 있냐는 중요하지 않지 않냐?’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난 그렇게 해서 베이비트리로 복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복귀 전, 내게 또 다시 그때 그 인사 담당 부국장께서 내 의사를 물었다. “기획 부서 2년 있었지? 이제는 편집국으로 돌아와야지?” 난 내 생각을 부국장께 말씀드렸고, 부국장은 베이비트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하셨다.
 
 
지난 3개월 반 동안 나는 베이비트리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사이트로 만들 것인가, 육아 관련 중요한 기사는 무엇인가 고민하며 살아왔다. 자나 깨나 베이비트리 생각 뿐이었다. 심지어 자면서도 베이비트리 생각 뿐이었다. 육아서를 읽고 독자들과 육아 관련 고민들을 풀겠다는 생각에 ‘책! 육아를 부탁해’ 코너를 열었다. 무상 보육 정책이 이슈화되면서 보육 정책 관련 취재를 해 기사를 썼다. 치과 수면치료나 잡곡밥 관련 기사, 화학물질 기사 등 아이 건강 관련 기사도 썼다. 베이비트리 필자 송년회도 열었고, 필자나 독자들과 댓글로 소통하며 육아 관련 얘기들을 나눴다. 조금씩 조금씩 베이비트리 독자들도 늘고 있고, 베이비트리를 아는 분도 늘고 있다. 뭔가 조금씩 만들어가는 이 기분이 참 좋다. 베이비트리 독자들이 올려주는 각종 글을 읽으며 이 땅의 부모들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사는지도 알게 된다. 직장에서 일을 더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슬럼프를 겪는 독자, 모유수유도 하고 싶고 일도 하고 싶은 독자, 둘째를 가지려 하지만 유산의 고통을 경험한 필자 등등. 아마 구슬을 하나씩 하나씩 꿰어 베이비트리라는 보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나도 모르게 ‘열심병’이 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은 인생이지만 35년이라는 내 인생에서 큰 깨달음 중 하나는 바로 건강과 가족의 소중함이다. 항상 내 곁에 있기에 건강과 가족의 소중함은 망각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휴일 전날 일할까, 말까 하고 고민하는 나를 직시하면서 나는 내게 속삭였다. ‘열심병’ 던지고 쉴 땐 좀 놀자고. 잘 노는 놈이 성공한다고 김정운 교수가 그러지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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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다 잊고 잘 놀자고 결심한 나는 3·1절날 아이들 둘, 남편, 그리고 시터 이모님까지 모시고 서울랜드로 향했다. 쉬는 날 놀이공원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확인하고야 말았다. 휴일날 대한민국의 모든 가족들은 놀이공원으로 향하는지 놀이공원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목마를 타려했는데 1시간 기다려 2분30초 목마를 타고 내려오는데 얼마나 허무하던지.... 그나마 눈썰매장으로 먼저 직행해서 많은 시간 기다리지 않고 눈썰매를 5번 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민지를 안고 민규를 안고 눈썰매를 타는 순간만은 나 역시도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탔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니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나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페이스북에 그 사진을 올렸더니 다들 ‘엄마가 더 신나하시네~’라는 반응이다. 하하.
 
열심히 산다는 것.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게 더 낫다고 많은 사람들이 내게 조언한다. 내가 생각해도 행복하려면 열심히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즐겁게 살다보니 열심히 살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즐겁게와 열심히가 반드시 대립적인 관계는 아니다. 이렇게 질문에 질문을 하다가 열심히 살면서도 즐겁게 사는 것과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의 차이점은 뭘까?라는 질문까지 하게 됐다. 내가 찾은 답은? 바로 쉴 때 제대로 잘 쉴 수 있느냐의 여부다. 쉬는 날인데도 잘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열심히만 살고 즐겁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즐겁게 살려면 일과 쉼, 일과 노는 것에 에너지를 적절하게 배분해야 할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남은 올해는 즐겁게 살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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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