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꽝 엄마, 요리광 딸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요리1.jpg » 김밥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양선아

 

“엄마~ 방학 숙제 중에 부모님과 요리 함께 만들어 먹기가 있어. 선택 과제 중 그것이 제일 하고 싶어. 우리 뭘 만들어 먹을까? 빨리 골라보자~ 응?”

 

8월 초부터 봄이는 엄마와 함께 요리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딸이 요리를 하고 싶다고 여러번 얘기했지만 나는 주방에서 아이들과 요리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래~ 이번 주말에 하자~”라며 매번 건성건성 대답하고 요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엄마를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봄이는 자신의 든든한 조력자 이모님(육아도우미)께 구조 요청을 했다. 엄마가 출근한 어느날, 이모와 함께 유부 초밥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냉장고에 초밥을 만들때 필요한 유부가 있었고, 볶음밥을 해서 유부에 넣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요리다. 친절한 이모는 각종 채소를 잘게 썬 뒤 봄이의 손을 잡고 프라이팬에서 채소들을 함께 볶았다. 그리고 식초를 약간 넣고 참기름과 소금을 약간 넣은 밥과 볶은 채소를 섞어 유부 초밥에 넣을 밥을 만들고, 유부에 정성스럽게 밥을 넣었다. 맛있는 유부 초밥 완성!

 

요리2.jpg » 유부 초밥을 만들고 있는 딸. @양선아
 
이모님은 봄이가 요리하는 과정을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주셨고, 밤늦게 퇴근해보니 봄이는 자신이 정성스럽게 만든 유부초밥을 엄마를 위해 남겨놓았다. 바쁜 척 하는 엄마와는 함께 만들지 못했는데도 엄마를 위해 남겨놓은 그 마음이라니…. 아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 내가 만든 초밥 먹어봤어? 맛있었어?”하고 물어본다. 전날 밤 속이 좋지 않아 초밥에는 입도 대지 못한 나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아침에라도 먹어봐야 하는데 아침부터 초밥을 먹기 싫었다.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요리꽝 엄마라서 그런가... 아니면 요즘 더위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가...요리를 기꺼이 아이랑 함께 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는 꿋꿋하다. 서운해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고맙고, 아이가 제법 컸다는 걸 느낀다.
 
어제는 방학 전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방학 숙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필수 과제는 그림 일기 일주일에 두 번, 독서록 일주일에 세 번, 줄넘기 정도였고, 다른 모든 과제는 선택 과제였다. 봄이는 차근차근 매주 필수 과제를 했고, 선택 과제로는 부모님과 함께 요리 해서 먹기, 연극이나 영화 관람하기, 물놀이하기, 인라인스케이트 배우기, 자기가 관심있는 것 알아보기, 악기 배우기, 고궁이나 박물관, 도서관 가기, 봉숭아 물들이기, 부모님 도와드리기 등을 하겠다고 체크했다. 방학 틈틈이 자기 할 일은 알아서 했고 알차게 보냈다.
 

햄말이 김밥 (1).jpg » 진지하게 김밥을 말고 있는 딸. 햄말이 김밥을 말아 꼬치로 고정시켰다. @양선아


방학 숙제를 다시 점검하면서, 엄마와 요리하고 싶어했던 봄이의 마음이 생각나 어제는 집에서 봄이가 하고 싶어한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할 생각에 봄이는 전날 저녁에 어린이 요리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무엇을 만들지, 동생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며 신나했다. 요리는 먼 산 바라보듯 하는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딸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남편의 유전자가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딸이 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부분을 발견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딸을 나와 거의 동일시하던 나도 이제는 딸을 나와 분리해서 보게 된다.
 
일요일 오전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을 먹고 동네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아들은 누나에게 요리책에서 본 과일초콜릿볼을 먹고 싶다고 했고, 동생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누나는 동생이 먹고싶다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초콜릿, 생크림, 포도, 크림치즈 등등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또 딸은 자신이 먹고 싶은 햄말이 김밥을 만들어먹겠다고 슬라이스햄이며 각종 김밥 재료를 골랐다. 마트에 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은지, 아이들은 평소 먹고 싶었던 젤리며 음료수며 슬며시 장바구니에 밀어넣는다. 모든 식재료와 간식을 장바구니에 담으니 세상에나 영수증에 7만원이 넘는 숫자가 찍힌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에 요리를 해보자고 했는데, 7만원인 넘는 영수증을 보니 갑자기 인상이 찌푸려진다. 속좁은 엄마, 또 아이에게 괜히 짜증을 냈다.

“뭘 얼마나 만든다고 이렇게 많은 걸 사니? 아휴... 못 살아... 그냥 간단하게 김밥만 만들어 먹으면 될 걸, 복잡하게 무슨 초콜릿볼을 만든다고. 별로 산 것도 없는데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이 나온거야. 다음부터는 이렇게 복잡한 음식 만든다고 하지마~”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내가 나도 싫다. 속으로 나도 나에게 ‘그냥 기분좋게 가서 맛있게 만들어 먹으면 안되니? 양선아! 너 정말 말 안이쁘게 한다. 아이가 다 배운다고... 그런 태도!’하고 말한다. 그래도 계속 아이들에게 투덜투덜한다. 아, 이럴 땐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어른답지 못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일 때, 그런 내가 싫으면서도 그런 모습을 기어이 아이에게 내보이고 말 때 나도 내가 부끄럽다.  

 

투덜투덜하는 엄마에게 딸이 참다참다 이렇게 말한다.

 

“엄마한테 까칠이가 나타났다! 까칠이가 나타났어~ 여름아~ 그치? 엄마 너무 까칠하지? 그리고 과일초콜릿볼은 여름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고요. 여름이가 먹고싶다고 해서 만들어주려고 하는 건데 왜 그래? 엄마는? 엄마, 이상해~ 정말~ 까칠이 없어지라고 해!”

 

‘그래, 네 말이 맞다. 딸~ 엄마 머릿속에 또 까칠이랑 버럭이가 나왔나보다. 엄마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본 뒤 아이들과 내가 대화할 때 영화 속 주인공들을 매개로 얘기를 한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내 마음 속 까칠이랑 버럭이도 잠시 소강 상태가 된다. 또다시 딸에게 미안해진다. ‘이왕 돈들여 식재료 샀으니 맛있게 해먹자’라는 생각에 투덜대던 것을 멈추고 집에 가서 요리를 시작했다.
 
한참 배고플 시간이 된데다 요리꽝 아내를 위해 남편이 김밥 재료들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주고 밥도 양념을 해서 마련해준다. 아마 내가 자꾸 짜증이 났던 것은 음식을 잘 못한다는 생각에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이 걱정하던 부분을 해결해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이들과 놀이하듯 김을 깔고 김밥 재료들을 놓아보고 돌돌돌 김밥을 말아본다. 처음 제 손으로 김밥을 말아본 딸은 혼자서도 야무지게 잘 만다. 딸이 만 김밥을 엄마와 아빠는 맛있게 먹고, 사진도 찍는다. 6살 아들은 몇 번 김밥을 말아보더니, 금방 시큰둥해지고 로봇 조립하러 가버린다. 반면 딸은 끝까지 앉아 즐겁게 요리조리 만들어본다.

 

3천원이면 간단하게 사먹을 수 있는 김밥이지만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장도 보고 식재료를 다듬는 과정도 보여주고 함께 김밥을 말아 먹으니 그 맛은 또 색다르다. 특히 막 해서 뜨끈뜨끈한 밥으로 김밥을 만들어 바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란! 그런 과정에서 아이는 김밥이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음식이 아니라 많은 수고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요리의 기쁨도 알아가는 것 같다.
 
요리에 재미 붙인 딸이 출근한 엄마에게 또 전화를 했다. 들뜬 목소리로.
“엄마~ 오늘 늦지 않을거지? 오늘은 떡갈비 요리를 해놓을테니까 집에 와서 꼭 먹어야 해~ 알았지? 약속~”

요렇게 이쁜 딸이 또 있을까. 까칠이와 버럭이만 등장시키는 엄마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말 걸어주는 딸, 엄마를 위해 요리를 만들어놓고 기다리겠다는 딸이 마치 우렁각시마냥 사랑스럽다. 오늘은 퇴근해서 딸이 해놓은 요리를 먹고 “정말 맛있게 먹었고, 고맙다”고 말해줘야지.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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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