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능사 아니다…아동학대 신고하다 탈진할 판 알자, 육아정책

00522810801_20150117.jpg » 16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 내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에서 상담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경찰청은 이날부터 한 달을 ‘아동학대 집중 신고기간’으로 정해 기존 학교폭력 전용 신고전화인 ‘117’에서 아동학대 신고도 받는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시청·구청·복지콜…창구일원화 안돼
사건때마다 담당자 대응도 제각각

정부 대책, CCTV·처벌강화에 초점
신속·투명한 사후 대처시스템 실종
기록삭제 등 증거 인멸에도 무방비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만 반짝 대책 내놓으면 뭐합니까? 정부가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 한 유치원에서 아이가 교사한테 괴롭힘을 당해 심리치료를 받게 한 경험이 있는 ㄱ씨의 말이다. ㄱ씨는 교사가 아이가 앉은 의자를 갑자기 빼내거나 아이 등에 올라타는 등의 학대를 했다며 해당 교사와 유치원을 고소했다.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보여주기식 땜질 처방이어서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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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6일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어린이집에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을 내놨다.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사실이 적발되면 즉시 폐쇄하고, 학대 교사와 원장은 영구퇴출시킨다는 내용이다. 또 모든 어린이집에 폐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하게 하고 부모가 요구하면 관련 동영상을 제공하는 방안도 담았다. 지금은 전체 어린이집의 약 21%만이 폐회로텔레비전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는 아동학대 의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빠져 있다. 현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부모들은 매우 다양한 경로로 신고를 하게 돼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1577-1391, 보건복지콜센터 129, 119안전신고센터, 구청이나 시청 각 담당과나 해당 기관 내방, 인터넷 접수 등이다. 그러나 담당자마다 아동학대 사건 처리에 관한 인식과 숙련도가 달라 피해 아이의 부모가 이곳저곳 연락하다 진을 빼고 증거 확보에 실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해 7월 인천시 서구 ㅇ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런 예다. 부모 ㄴ씨는 4살 된 아들 지우(가명)군을 데리러 어린이집을 방문했는데 아이의 팔에 누군가에게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담임교사는 아들의 팔을 문지르며 “지우가 친구를 물어 바로잡으려고 똑같은 방식으로 팔을 물었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ㄴ씨는 사과를 받았지만 밤늦도록 사라지지 않는 이빨 자국을 보자 분노가 치밀었다. 이전에도 아이가 “작년 담임선생님 보고 싶다”고 자주 말한 기억이 떠올라 혹시 다른 가해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ㄴ씨는 일단 어린이집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시청에 신고 전화를 했다. 시청에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연락처를 안내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폐회로텔레비전 영상 증거 확보가 필요하니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가 어린이집에 갔더니 이미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은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루 사이 시청과 구청 담당자가 증거를 확보한다며 해당 어린이집 원장에게 신고 사실을 알리고 기록 저장을 지시하자 원장이 이를 훼손한 것이다. 원장은 “시시티브이 관련 업자를 불러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장이 났다”고 핑계를 댔다. ㄴ씨는 또다시 경찰에 신고를 해 폐회로텔레비전 복구 요청과 함께 수사를 요청했다. ㄴ씨는 “지자체에 먼저 연락한 것이 후회된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수사 권한이 있는 경찰에 연락할 것”이라며 “학대 신고 창구를 일원화하고 보다 신속하게 사건이 처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폐회로텔레비전 설치 의무화가 능사가 아니라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전행정부 지침을 보면, 현재 어린이집의 폐회로텔레비전 기록 의무 보존 기간은 한 달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지침이 지켜지지 않고 그보다 짧은 기간에 기록이 자동 삭제되도록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폐회로텔레비전은 원장이 소유·관리권을 행사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증거 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실제 서울 노원구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한 학부모가 자신의 세살 된 아이를 교사가 화장실에 가뒀다며 폐회로텔레비전을 확인하려다 원장의 방해로 실패하기도 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이 원장을 16일 입건했다. 이런 이유로 아동학대 피해 부모들은 엄격한 열람 원칙을 세워 제3의 기관에서 폐회로텔레비전 기록을 동시에 저장할 것을 요구한다. 지난해 6월 여수 ㅇ유치원에서 교사의 아동학대로 피해를 입은 이아무개씨는 “교사가 기소되기까지 폐회로텔레비전 증거 확보가 가장 어려웠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공공기관의 성격이 있는데, 원에서 거부하거나 컴퓨터가 망가졌다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피해자한테 온다. 제3의 기관에서 폐회로텔레비전 기록을 동시에 관리하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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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