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잊고 싶은 엄마, 아내라는 이름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04574856_P_0.jpg » 한겨레 자료. “오전 6시에 일어나서 밥을 해요. 아이들 밥 먹이고, 어린이집과 학교 보낼 준비를 해요. 남편도 출근 시켜요. 그리고 저도 출근을 해요. 하루종일 일을 해요. 직장에서도 바빠요.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아요. 그리고 다시 퇴근해서 저녁을 하고 아이들 숙제 봐주고 씻기고 나면 청소하고 집안 정리하면 어느새 밤이 돼요. 일찍 퇴근하지 않은 날은 밤 9시 반까지 일을 하죠. 일주일 이렇게 살다보면 금요일 밤 9시 반이 넘어서면 기운은 빠지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요. 가끔씩 ‘아~ 나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앉아있을 틈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제 자신이 좀 불쌍해요.”
 
직장맘 A가 내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이 땅의 상당수 엄마들이 이런 생활들을 하면서 엄마의 역할을 해내고 있을테니까. 엄마가 되는 순간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기 인생에 한껏 기대가 많았던 한 여자의 삶은 자식과 가정에 포박당한다. 그리고 자식과 가정을 위해 해야 할 일들, 엄마로서 아내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적인 일들로 생활이 빽빽하게 채워진다. 때로는 그런 가정이 평안함과 안온함을 주지만, 때로는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물론 반대로 아빠들도 가정에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다. 가정을 위해 자식을 위해 희생해고 노력해야 하는 아빠, 남편이라는 역할에 남자들도 숨이 막힐 지경일 것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는데, 우리에게 닥친 생활과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늦은 귀가 시간과 아이들에게 전화하지 않은 문제로 며칠 전 남편과 마찰을 빚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호되게 혼났다. 내 잘못이 커서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맥’ 몇 잔을 마셨기 때문에 취기는 올라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리가 더 투명해지는 느낌이고, 마음 속에서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잘못했지만 백 퍼센트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순간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련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 마냥. 

 

새벽 1시, 선물받은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손에 집어들었다. 소설 <28>를 재밌게 봤는데 소설가 정유정의 첫 에세이였다. 소설 <28>를 끝낸 뒤 그녀는 삶의 엔진에 고장이 난 것을 느꼈다. 세상을 향해 할 이야기가 많았고, 기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었고, 진짜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던 정 작가는 <28>을 끝낸 뒤 피가 뜨거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무기력감에 지쳐 있던 그에게 주위에서 처방으로 내세운 것은 여행이었다. 평소 대한민국 땅 한번 떠나보지 않았고, 전라도 땅조차도 떠나보지 않았던 그녀가 여행하고 싶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정 작가의 등단작인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의 특별한 곳이었던 안나푸르나로의 여행이었다. 정 작가는 안나푸르나를 생각하며 6년 전 썼던 플롯 노트를 찾았다. 첫장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수명, 류승민.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 청년들의 정신병원 탈출기. 수명은 미쳐서 갇힌 자. 승민은 갇혀서 미쳐가는 자. 수명에게 승민은 자유의지의 표상이자 전사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 눈먼 승민이 신들의 땅으로 날아간 후, 마침내 수명은 자신의 감옥을 박차고 세상으로 나온다.”
 
첫 책장을 펴고 이 구절을 읽는데 또 마음이 요동을 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나는 알고나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나? 그로 인한 결과까지도 받아들 수 있나? 에잇! 나도 정 작가처럼 안나푸르나로 훌쩍 떠나버릴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때도 두 아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두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두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배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획할 수 없다. 일단 나의 모든 생활은 두 아이를 중심에 놓고 짜여져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 아이를 만나 너무 행복하고 두 아이가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 아이를 있게 해 주고 두 아이에게 헌신적이고 좋은 아빠가 되어준 남편도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나를 똑닮은 딸아이가 내 어렸을 적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은 내게 보람이다. 딸의 해맑고 행복한 웃음을 보면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오고, 그 아이가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말하며 안아줄 땐 딸 품에 안겨 한없이 행복하다.‘상남자 스타일’인 아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낯선 세계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입문한 사람마냥 아들의 모든 행동과 눈빛과 모습이 나는 새로움이고 놀라움이다. 자식을 키우는 기쁨이 분명 있고, 가정을 이룬 보람이 있다.
 
그러나 살다보면 여자들은 엄마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 ‘~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에 똘똘 뭉친 그 이름을 벗어던지고 싶은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 이름을 아예 잊어버릴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을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대부분 채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뒤늦게 자녀들이 성장한 뒤에 허탈함에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것 아닌가. 나 역시 내 머리의 절반 정도 아니 절반 넘게는 두 아이 생각 뿐이다. 
 
남편과 아내들은 남편과 아내가 되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 되기 이전에 그냥 한 사람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아빠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끔 그냥 한 사람이고 싶은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소주를 기울이며 선배와 후배와 인생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나는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었다. 그냥 인간 양선아였다. 그것을 남편이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남편도 분명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들이 예고를 하고 오면 좋겠지만, 예고 없이 찾아올 때가 더 많다. 남편에게 제때 전화하지 못하고 내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이지만,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를 구하지 않아도 남편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고? 남편이니까. 그런데 배우자가 무작정 ‘나’라는 인간을 보지 않고, 그저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라고 무작정 요구할 때는 엄마라는 이름은 내게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환호해야 할 그 이름이 거부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이름이 된다. 남편들이 이런 아내의 마음을, 아내들이 이런 남편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일을 통해서도 나 역시도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내 남편에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역할만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갈등이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봤는지.... 앞으로는 좀 더 노력해봐야겠다. 한 인간을 이해하고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저 같은 공간에 있다고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길을 같이 걸어가는 진짜 부부라면 서로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서로에게 의무감만 내세우거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연민을 갖고 서로에게 애정을 갖는 그런 부부가 되길 바란다. 좋은 아빠, 아빠 역할만큼이나, 상대방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인생은 고’라고 부처가 말하지 않았던가. 행복과 불행과 고통이 함께 하는 이 길을 서로 연민하며 힘을 북돋아주며 걸어가야 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떤 관계든 내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남편도 그것을 알아주고 함께 노력해주기를 바랄 뿐.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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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