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족을 넘어 친구들과 함께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텃밭12.jpg » 다시 시작한 텃밭에서 가족들이 감자를 심고 있다. 양선아

 

지난해 우리 가족에게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뭐니뭐니해도 옥상 텃밭 가꾸기이다. 동네에 있는 시립 청소년수련관에서 환경교육을 위한 특화사업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옥상 텃밭 수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8월부터 우리 가족은 ‘달촌가족텃밭’ 수업에 참여해 커다란 흙상자에서 다양한 채소들을 가꾸었다. 농사에 관해 전혀 지식이 없는 우리에게 전문가들은 씨뿌리는 법부터 천연비료 만드는 법, 다양한 작물 키우는 법까지 전문 지식을 전수해주었다. 혼자서 시작하려고 하면 막막하게 느껴지던 일인데 전문가들과 담당 직원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니 쉽게 도전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우리 가족들은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삭막한 아스팔트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아이들은 애벌레나 흙, 식물 등과 가까워질 기회가 거의 없다. 자연과 가까운 아이로 키우고 싶지만, 주말이면 주중 내내 일로 파김치가 돼 산으로 들로 나가기가 버거웠다. 그런데 옥상 텃밭에 가면 아이들과 함께 흙을 만지게 되고 몸을 움직일 수 있어 좋았다. 애벌레가 징그럽다며 처음에는 만지지 못하던 딸은 배추를 맛있게 먹어치우는 애벌레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됐고, 생채소를 전혀 입에 대지 않던 아들은 자기가 직접 키운 쌈채소며 당근까지 맛있게 먹게 됐다. 남편과 나는 또 하나의 공통의 대화 소재가 생겨 텃밭 관련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 속에서 남편은 텃밭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물론 텃밭을 가꾸면서 위기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중에는 엄마 아빠 둘 다 일하랴 바쁘기 때문에 두 아이가 친구들을 만나 실컷 놀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다. 어쩌다 아이 친구들과의 만남 약속이 생기면 나와 아이들은 텃밭 가는 것은 뒷전이 됐다. 그렇게 되면 식물에 물을 주고 벌레를 잡고 텃밭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남편 몫이 됐다. 작물을 돌보는 것은 미룰 수 없는 일이었고,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텃밭은 왜 하자고 한거야? 나 혼자 가서 다 하려면 뭐하려 이런 일은 벌였어?”
“나라고 뭐 안가고 싶어?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일정도 생겨서 그런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 나도 힘들어. 다 내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하기 싫음 하지마!”
 
혼자서 물주고 텃밭 가꾸는 일이 힘들면 남편은 화를 냈고 가끔 우리는 부부싸움도 했다. 날씨가 춥거나 아이들이 아프거나 내가 아플때에도 또 다른 모임에 갈 때도 남편은 묵묵히 텃밭에 가서 일을 했다. 텃밭 가꾸기를 도와주시던 선생님께서 “남편분은 귀농하셔도 되겠어요”라고 할 만큼 남편은 텃밭에 정성을 다했다. 그 덕택에 우리 가족은 쌈채소를 사지 않고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당근이며 커다란 무까지 질릴 정도로 먹었다.

텃밭8.jpg » 설명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텃밭 가꾸기를 생각해보면 가장 고생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올해 또다시 텃밭 가족을 모집하는 공고가 나왔지만 쉽사리 남편에게 “또 합시다”라는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남편 말대로라면 나는 텃발 일은 안하고 “입만 살아가지고” 떠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텃밭 공고가 나온 날 남편에게 슬며시 메시지를 보낸 뒤 “어떻게 할까?”하고 물었다. 남편이 하기 싫다고 하면 나 혼자서 애 둘 데리고 텃밭을 가꿀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두 구좌 신청해~”라고.
남편이 또 텃밭 가꾸기를 하겠다고 하니 정말 신이 났다. 이번에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남편과 함께 제 몫을 다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올해 텃밭을 하겠다고 신청하면서, 나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텃밭 가족 모집 공고를 널리 알렸다. 지난해 우리 가족이 채소 수확하는 것을 보더니 주변에서 “나도 하고 싶다”고 한 가족이 많았기 때문이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몰라서, 신청 때를 놓쳐서 못하는 분들도 많았다. 지인들에게 알려주니 아들과 친한 친구 세 가족이 모두 텃밭을 가꾸겠다고 신청했다. 또 딸 친구 가족 한 팀도 할머니, 할아버지과 함께 텃밭을 가꾸겠다고 신청했다. 이번 해 가족 텃밭을 할 12팀 가족 중에 내가 아는 4팀이 포함돼 있어 올해는 더 신날 것만 같다. 이제는 우리 가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친구 가족들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더 기대된다. 지인들과 함께 공통의 경험을 하면서 함께 나누는 시간도 좋을 것 같다.

텃밭7.jpg »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 달촌텃밭 제공.

 


지난 19일 토요일 옥상 텃밭 가족을 신청한 가족 12팀이 모두 모여 서로 가족을 소개하고, 텃밭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기초 공부를 했다. 농사의 시작인 밑거름 주기와 행복하고 성공적인 농사를 하기 위한 방법들을 전문 강사가 안내해주었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농사를 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듣고 있는데, 퍼뜩 그 내용이 자식 농사때도 그대로 적용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른들이 ‘자식 농사’라는 표현을 썼는지도 저절로 이해가 됐다.
 

텃밭3.jpg


행복하고 성공적인 농사를 위해서는 이것만은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1. 때를 놓치지 마세요.
심는 시기, 물주기, 퇴비 주기, 벌레 잡기, 솎아내기, 수확·나눔·먹기

2. 기분 좋은 텃발을 위해
농기구 정리, 이웃의 작물을 탐내지 말기, 이웃에게 풀·벌레를 전하지 말기, 건강한 땅과 건강함 음식, 건강한 지구를 위해 건강한 퇴비와 농약 만들기, 실패도 성공도 모두 기록하기
 
이 내용을 들으며 자식 농사 또한 마찬가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리잡는 시기에 부모가 곁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주고, 건강한 생활 습관과 긍정적 마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아이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할 수 있다.
 
또 식물들은 물을 덜 주었을 때보다 너무 물을 많이 주었을 때 죽어버린다고 한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식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고 더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고 지나치게 교육을 하고 과잉 보호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덜 간섭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지나친 간섭과 보호가 오히려 아이의 싹을 죽이지 않을까?
 
강연을 들으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멤멤 돌았다. 농사와 자식 농사는 정말 비슷한 것이 많구나...
 
행복하고 기분 좋은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집안 정리정돈을 잘 하고, ‘엄친아’를 탐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또 건강한 지구를 위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실패도 성공도 모두 기록해 계속 더 나은 부모-자식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지난해 우리 가족의 좋은 추억거리인 옥상 텃밭.
올해도 다시 도전하면서 자식 농사에로까지 생각이 뻗어나갔다. 옥상 텃밭을 가꾸면서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모든 행동들이 또 하나의 큰 교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을 넘어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옥상 텃밭 농사, 올해는 더 큰 기쁨을 수확하기를 기대해본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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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