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관계, 쉼, 자연 …나만의 휴가 포트폴리오 기준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IMG_7052.JPG » 어린이대공원 노래하는 분수가 시원하다. 양선아

 

일주일 동안의 휴가가 끝났다. 회사로 복귀하는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했다. 이래서 사람은 쉬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니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멋진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 휴가처럼 만족스러운 휴가도 없다. 특별한 외국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고, 유명한 피서지를 다녀온 것도 아니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내 몸과 마음, 시간이라는 자산을 균형감있고 안정적으로 배분함으로서 탄탄한 휴가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정서적으로 꽤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고나 할까.

5살, 3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 부부는 애시당초 멀리 또는 유명해서 사람이 북적북적한 피서지는 포기했다. 휴가는 토요일과 일요일 앞 뒤로 붙여 지난 7월28일부터 8월5일까지였다.
 
이번 휴가 때 내가 가장 중시한 것은 성찰, 관계, 쉼, 자연 이 네가지다.

 

하루하루 꽉 짜인 일상에서 나를 되돌아볼 틈도,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휴가는 그런 내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내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등등 큰 틀에서의 내 삶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절오의 기회다. 이런 생각들은 특별한 목적 없이 여유가 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다. 종이에 적어도 좋고, 그냥 머릿속으로 느낌을 정리해봐도 좋다.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 힘들다면 책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 연관시켜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성찰과 쉼은 연관성이 있다. 쉬면서 성찰하고, 성찰하면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다.

 

굿바이 동물원.jpg 휴가 시작 첫 날인 토요일 시터 이모님께서 집에 계시는 날이었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을 이모님께 맡기고 내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찜질방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내가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 둘은 끊임없이 내 목에 매달리고, 내게 책을 읽어달라 놀아달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덥지만 찜질방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평소 여유있게 찜질방에서 땀도 빼고 책도 읽고 경락도 받으며 뒹굴뒹굴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날만은 그 호사를 누리고 싶었고, 나는 5만원을 투자해 전신 경락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사는 내 뒷목과 어깨 근육이 많이 뭉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배 근육도 꽁꽁 뭉쳤다고 했다. 1시간 반 정도 몸의 중요 경혈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받으니 몸이 나른하고 노곤해졌다. 마사지를 받고 고온방으로 들어가 땀을 두 차례 정도 쫙 뺐다.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마사지를 받으며,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최근 내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 현재 내가 맺고 있는 관계 등에 대해 요리조리 생각했다.

 

그리고 휴가 기간 내내 틈틈이 얼마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굿바이 동물원>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살기 너무 힘든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봤고, 유력한 대선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며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해,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에 대해 생각해봤다.

 

<굿바이 동물원>은 마늘을 까고 인형 눈을 붙이는 각종 부업을 하면서도 전혀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하는 한 남자가 동물원에 겨우 취직해 경험하는 얘기다. 동물원에는 동물의 탈을 쓴 인간들이 동물 흉내를 내면서 인간다운 삶을 꿈꾸며 목숨을 걸고 수치심을 버리고 돈을 번다. 그들은 각자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도, 동물원에서도 인간다운 삶은 없다. 그나마 동물원에서 동물 흉내를 내는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동물원에서 동물 흉내를 내야 하고, 동물원을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재밌고도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설정과 작가의 경쾌한 필체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최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안철수의 생각>은 제목 그대로 안철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해 저자가 가지고 있는 큰 틀의 생각을 문답 형식으로 보여준다. 사회 각 현안에 대해 안 원장이 이미 많이 학습을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생각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은 보이지 않아 갑갑했다. 과연 현실에서 안철수 원장이 생각하는 것들이 실현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정치적 힘을 모아서 그런 각종 사회 현안들을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것들이 의문점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안철수 원장은 매우 바르고, 성실하고, 원칙적이고, 모범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철수’에 대한 여러 책들이 나왔는데, 강준만 교수나 조희연 교수는 ‘안철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좀 더 다른 책들을 읽어보며 또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안철수라는 사람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철수의 생각.jpg » 한겨레 자료사진

 

다음으로 관계다. 아마 누군가가 내게 당신의 행복의 원천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관계라 대답할 것이다. 가족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가 매끄럽고 소통이 잘 되고 그들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휴가 때도 그동안 바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꼭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만나자는 얘기는 하지만, 일상에 쫓겨 친구들 얼굴을 1~2년 동안 제대로 못봤다. 고향에 내려가서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고향에서는 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에서는 휴가를 다녀오신 이모님께 아이 둘을 맡기고 하루 내내 강남에서 강북까지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미리 약속을 잡은 친구들도 있고, 갑자기 전화해서 얼굴 보자고 한 친구도 있다. 모두들 한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어 이런 저런 사는 얘기들을 나눴다. 대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는 장소로는 모교를 택했다. 오랜만에 대학교 교정도 둘러보고 싶었고, 학교 근처 술집도 가보고 싶었다. 친구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학교는 새로운 건축물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학교 때 한번씩 들르던 스파게티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함께 칵테일바에 갔다. 준 벅 한잔을 시켜놓고 홀짝홀짝 마시며 친구들과 사는 얘기들을 나누는데 그 시간들이 얼마나 좋은지. 부어라 죽어라 술을 마시지 않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며 칵테일을 마시니 그 맛이 꿀맛이었다. 칵테일바에는 연애를 하는 젊은 커플들이 많았고, 슬쩍슬쩍 그들을 훔쳐보는 것도 재미였다.

 

학교 앞 파가니니.jpg

 

 
또 휴가 중간에 시아버지 생신이 끼어있으니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잘 만나지 못하는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계획했다. 또 친정 엄마와의 짧은 여행도 계획했다. 시댁 식구나 친정 엄마와 함께 가까운 계곡이나 숲을 가면 자연을 찾다는 계획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아버님은 올해 72살이시다. 폭염때문인지 밖으로 나들이 나가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아버님께서는 “밖으로 나가는 순간 돈 낭비하고 고생 시작”이라며 “집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가만히 있는 것이 피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와 아이들은 고향에 내려가 이틀 정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을 반복하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실내 수영장 외에는 변변한 물놀이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냇가나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폭염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하러 나가겠다는 시어머니를 꼬득여 광주에서 차로 30~40여분 정도 떨어진 화순에 놀러가자 제안했다. 물론 손자 손녀가 집에만 있으면 너무 지루해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결국 시아버지를 빼고 시어머님과 남편, 나, 두 아이 이렇게 다섯은 과일과 물, 여벌 옷만 들고 화순으로 향했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자주 갔던 유원지를 가려했는데, 그 유원지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래서 화순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다리 밑 시원한 그늘이 있고 아이들이 놀만한 시냇가를 찾았다. 민지와 민규는 처음엔 물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남편은 민지 밀짚 모자로 피라미를 잡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민규는 작은 돌멩이를 물에 퐁당퐁당 던지며 좋아했다. 냇가 옆에는 시원한 정자가 있어 그곳에서 과일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도심이 아닌 자연 속은 그늘에 앉아있으면 한결 시원했다. 자연 속에 있으니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시어머님도 좋아하셨고, 남편도 시종일관 미소띈 얼굴이었다. 친정엄마와도 가까운 자연으로 휴가를 가고 싶었으나, 친정엄마와는 일정이 맞지 않았다. 이번 휴가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IMG_6844.JPG » 시냇물에서 물놀이하는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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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와서는 상당한 시간들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번개맨’이 등장하는 <번개맨의 비밀>이라는 뮤지컬을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에서 보고, 동물원을 둘러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EBS 딩동댕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펼친 뮤지컬 공연인 <번개맨의 비밀>은 3~6살 정도의 유아에게 딱 적합한 뮤지컬이다. 화려한 무대 디자인과 권선징악의 뚜렷한 구도가 유아들에게 1시간이라는 시간동안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뮤지컬을 본 뒤 어린이대공원 안에 물놀이 하는 곳에서 물놀이를 한 뒤 근처 한스 델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격은 5500~600원대였는데, 스파게티와 돈까스는 먹을만 했지만, 볶음밥은 별로였다. 다음에 맘 먹고 도시락 싸서 동물원 구경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사자와 호랑이, 코끼리, 낙타, 표범 등 맹수들만 보고 황급히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IMG_7016.JPG » 번개맨의 비밀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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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편과의 영화 데이트. 6일 기준 688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수를 돌파한 <도둑들>을 ‘씨지브이 골드클래스’로 호화롭게 봤다. 골드클래스는 기내 일등석 개념을 영화관에 도입한 것인데, 푹신하고 넓은 의자에 누워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보는 것이다. 표값은 1인당 3만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지만, 한번쯤은 누려볼 만한 호사다. 남편과 영화관에서 영화를 함께 본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 둘째 출산 전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남편과 둘 만의 데이트 코스로 호화로운 영화관을 선택했다. 김윤석, 전지현, 김혜수, 이정재 등 내로라하는 배우 10인들이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여름 영화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영화관 가자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남편(이때 정말 남편 엉덩이 한 대 때리고 싶었다. 가족끼리 영화는 왜봐? 하는 표정이란. 쩝.)은 영화를 본 뒤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도둑들 포스터.jpg  

 

IMG_7157.JPG » 고급스런 골드 클래스 영화관 이용 고객 전용 카페  
 
 
아. 이렇게 9일 동안의 호사스런 휴가 기간을 끝냈다. 쓰다보니 장황한 휴가 보고서가 돼버렸다. 휴가를 가지 못한 분들이나, 휴가를 즐겁게 보내지 못한 분들에겐 너무 내 자랑을 한 것 같아 갑자기 죄송스러워진다. 그러나 휴가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에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성찰, 관계, 쉼, 자연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휴가 포트폴리오를 균형있게 짰더니 만족감이 극대화됐다.
 
자,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휴가 계획을 세우고, 또 휴가를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여러분의 휴가 얘기를 <베이비트리> 속닥속닥 게시판에 들려주시길. ^^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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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