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육아를 부탁해] 불평등한 교육, 가난을 대물림하다 책! 육아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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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희망의 불꾳 

조너선 코졸 지음· 이순희 옮김Ⅰ 열린 책 펴냄·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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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있어 교육은 계층 상승을 위한 주요 수단이다. 교육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돈도 ‘백’도 없는 아이들에게 교육은 태어날 때 개인에게 불공평하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 교육은 어떤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계층 상승의 주요 수단이라고 믿고 있는 교육이 오히려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 외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에는 부유층의 자녀들이 많이 입학하고, 이러한 특목고와 자사고는 좋은 교육을 제공해 이른바 일류대에 학생들을 많이 입학시킨다. 이러한 가운데 일반고의 교육은 황폐화되고 일반고 학생들은 배제되고 소외된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있는데, 기세등등한 사교육 시장은 선행 학습을 무기로 갈수록 커지고만 있다. 막강한 부를 바탕으로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더 좋은 고등학교,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대학 졸업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아이들이 더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돼 사회 계층간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최근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것도 이러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 당선자 13명은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모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한국에서의 교육 불평등 문제는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 교육계의 대표적인 지성인인 조너선 코졸이 펴낸 <희망의 불꽃>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 사회 역시 교육 불평등의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마약, 총기 사용, 인종 차별 문제까지 겹쳐 미국의 상황은 한국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코졸은 미 공립학교 교사였다. 그는 1965년 보스턴의 미국 흑인 거주 구역에서 처음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인종 차별에 저항한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의 시를 수업 시간에 다뤘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후 그는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인종 및 소득 수준의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평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40년 넘게 시민활동을 해오고 있다.
 
<희망의 불꽃>은 코졸이 미국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뉴욕 브롱크스의 아이들과 지난 25년간 맺어온 관계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르뽀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교육 불평등 문제 해결을 그저 구호로만 외치지 않고, 실제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적극적인 도움을 줘가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한 코졸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외고입시설명회.jpg » 외고입시설명회. 한겨레 자료.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매우 입체적으로 다룬다. 그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았고, 어떻게 파멸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촘촘하게 다룬다. 1970년대 빈곤, 마약, 범죄로 악명 높았던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얼마나 추악한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낱낱이 고발한다.
 
1980년대 노숙인 수용시설에서는 마약 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졌다. 일주일에 네댓 번은 화재가 나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복도 끝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소녀가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또 건물 관리인들의 횡포에 못이겨 아이 엄마들이 관리인들과 성관계를 맺기도 했다. 마약 중독자들이 버글버글한 주거 환경에서 그 누구도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미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이런 환경 속에서 부모들은 생존을 위해 버텨야했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들을 돕기 위해 13~14살부터 마약 거래와 좀도둑질 등에 나섰다. 부패한 사회복지사와 공무원들은 이런 환경을 전혀 개선하지 않고 방치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놀이터도 없고 장난감도 없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좀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새끼 고양이를 안겨주었는데, 사회복지사로부터 “식비도 감당하지 못한 주제에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사치”라는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가난한 아이들의 영혼을 말살하는 죽음의 수용소’과 같은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아이들에게 학교 또한 무기력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의 교사들은 가르치려는 열정이 없었다. 형편없는 교육을 제공했고, 아이들에게 문제만 일으키지 말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읽기, 쓰기 능력을 배우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가난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총에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어버린 자식때문에 부모들은 또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악몽같은 삶을 살아간다. 브롱크스의 이러한 현실은 조금씩 개선됐으나 여전히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뉴욕 데일리 뉴스>에 따르면 사우스 브롱크스의 빈곤률은 38%를 기록하고 있으며(2010), 51%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2011).
 
코졸은 그러나 브롱크스 지역에서 절망만을 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지옥같은 곳에서도 예외적인 아이들은 존재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어려운 시기를 거쳐 차차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파인애플과 그녀의 형제자매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코졸은 음침한 건물과 주위 환경에도 불구하고 파인애플의 부모는 정서적인 안정감과 친밀감 넘치는 가정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파인애플과 그의 자매들은 이것을 든든한 기반으로 삼아 자기 앞에 펼쳐진 기회를 잘 이용했다. 마사 신부와 같은 헌신적이고 책임감있고 강한 종교 지도자와 몇몇 유력가의 개인적인 호의, 드문드문 발견할 수 있는 책임감 있고 포용력 있는 교사들 덕분에 파인애플은 명문대에 진학하고 자신의 삶을 절망 속에서 건져냈다. 
 
코졸은 그러나 명문대에 입학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경우만 성공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코졸의 관점이 더욱 빛난다. 그는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구치소와 소년원, 교도소를 수차례 드나들었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재기를 꾀했던 벤저민이라는 아이를 맨 마지막에 소개한다. 코졸은 “벤저민이 재활에 성공한 것은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서 자기 내부에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코졸은 아이들 각자가 내면의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한다는 입장이다.
 
코졸은 놀라운 기록자이다. 10여명의 아이들과 나눈 대화 내용, 그리고 그 대화를 나눌 때 아이의 분위기 등등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 구조적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가난한 아이들을 방치한 사회에 대해 낱낱이 분석하고 고발하면서, 왜 우리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주거 환경을 개선시켜줘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코졸은 "자선적인 성향의 학교나 인정 많은 후원자가 아닌 제도적인 형평성과 공평성을 보장하는 공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빈곤이 만연한 지역의 공립학교에 넉넉한 자원과 소규모 학급 구성,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충분한 보수를 받는 교사들을 보장하여 모든 아이들이 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중한 선택 과정을 거쳐 선발되거나 우연히 온정이 넘치는 사람들의 눈에 띄여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이것은 민주적인 사회의 제대로된 아동 교육 시스템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한국의 상황이 궁금했다. 과연 우리 사회의 가난한 집안의 아동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나 있는가?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에서는 코졸과 같은 지성인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누가 하고 있는가? 수많은 질문들이 머리 속에서 쏟아졌다.

 

<희망의 불꽃>은 가난의 대물림 문제와 체계적인 공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주는 좋은 책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가치는 사라졌다. 학교는 무기력해졌고, 부모의 역량에 따라 아이들의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많은 교사들과 부모들이 이 책을 읽어보고 공교육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에게 보다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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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