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중국동포 입주도우미를 구하기까지…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민규 4살.jpg » 요즘 부쩍 큰 아들 민규의 모습. 대걸레 봉을 뽑아 마법을 한다며 휘두르고, 집아 모든 물건을 난장판처럼 쏟아놓고 논다. 첫째 아이를 동네에서 엄마들이 선호한다는 어린이집에 어렵사리 보낸 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시엔 형제자매 입학의 경우에는 우선 입학이 가능했기에, 둘째 아이는 때 되면 쉽게 원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 부부는 개인적으로  `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36개월 이전에는 가능하면 일대일 양육을 하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잘 알고 있는데다, 나 스스로도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보니 36개월도 좀 이른 느낌이 있었다. 첫째가 처음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떼놓으면서 내 가슴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갔는지 모른다. 오히려 아이가 집 앞 놀이터에서 이모와 신나게 놀고, 간식 틈틈이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경제적 부담을 지더라도 아이도 좋고 내 맘도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010년 8월에 태어난 둘째 아이는 5살이 되는 내년에나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언제 그렇게 내 맘대로 흘러가던가. <한겨레> 토요판에 중국 도우미(베이비시터) 관련 기사(http://babytree.hani.co.kr/?mid=media&category=38804&page=8&document_srl=101154)를 썼듯이, 2년 동안 둘째를 잘 봐오던 이모께서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났다. 당시 나는 방 이모를 너무 철석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모의 이별 통보에 핵폭탄을 맞은 느낌이었다. 다시 도우미가 입주한다 해도 방 이모처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겁이 덜컥 났다. 아무리 정을 줘봐야 도우미 사정으로 떠나겠다고 하면 내가 막을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 그냥 어린이집에 보내자. 어떤 아이들은 돌부터도 가는데, 민규는 많이 컸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며 어린이집에 연락을 해봤다. 마침 새 학기가 시작되는 즈음이라 내가 보내겠다 생각하면 당연히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혹시 몰라 보육신청 사이트에 신청도 미리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무상보육이 실시되면서 형제자매 우선 입학 기준은 사라진데다, 3살 때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들이 상당수 그대로 올라하면서 새로 충원하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 부원장님은 “어머님~ 다행히도 일찍 신청하셔서 대기 1순위세요. 학기 중간에 가끔 빠지는 아이 있으니 여름 정도면 연락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저희가 전화하는 즉시 등원하셔야 해요.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요.”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볼까, 아니면 중국동포 입주 도우미를 다시 구할까. 파트타임 도우미를 구하고 갑자기 주 양육자가 바뀌지 않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더 나을지 등등 고민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5살부터 어린이집 보내면 너무 늦다며 당장 보내라고 성화였다. 최근 어린이집 입소가 빨라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번민과 갈등의 순간이었다. 그즈음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를 쓰신 서천석 소아정신과 원장과 <한겨레> 창간25주년 관련 설문조사 일로 연락할 일이 생겼다. 연락하는 김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 선생님께 여쭤봤다. 도우미를 새로 구하는 게 나을지, 이모와 강하게 애착이 형성된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30개월 아이인데 차라리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나을지 등등 고민을 털어놨다.
 
서천석 원장은 나의 고민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었다.

“꼭 어린이집에 36개월 지나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마다 다릅니다. 30개월이 지났다면 일단 어느 정도 안정성은 확보한 것이니 아이가 특별히 불안감을 보이는 증상이 없다면 파트타임 도우미 분을 고용하고 어린이집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환경의 변화가 동시에 여러 가지 벌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좋게는 풀타임을 쓰고 3개월이 지나서 어린이집을 시도하고 이후 풀타임을 파트타임으로 바꿔가면 좋습니다. 그런데 풀타임->파트타임으로 바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겠죠. 이상적으로는 하던 분이 계시면서 어린이집 적응을 도운 후 그만두면 제일 좋은데... 지금 상황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전 도우미 분에 대한 애도 반응입니다. 부모들은 새로운 분을 구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지만 아이는 과거의 도우미 분에게 준 애착이 끊어지는 것을 괴로워할 수 있어서 이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합니다. 1달까지는 잘 봐야 됩니다.”
 
서 원장님의 메일을 읽고 복잡하던 생각들이 단숨에 정리됐다. 
 
`일단 아이의 애도 반응에 집중하자.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일은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은 하지 말자. 지금 아이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입주 도우미를 구해서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자’고 결심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이모가 주양육자였던 민규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다시 중국동포 입주 도우미를 구했다. 방 이모와 함께 구한 이모는 며칠 함께 지내보니 도저히 우리 부부 양육 스타일과 맞지 않아 삼일 만에 그만두시라 했다. 그리고 10만원 정도 월급을 올려 새로 면접을 봤다. 10만원의 차이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역시 도우미 시장은 돈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과 내 마음에 드는 분이 있어 어차피 돈 드는 것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분을 선택해 입주시켰다. 새로 오신 이모는 57살 흑룡강 출신이시고 이름은 김아무개다. 중국에 갔다 다시 재입국하신지 얼마 안 돼 비자 기간도 충분했고, 선한 인상을 가진 분이시다. 중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 유학 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숙집을 운영하셔서 한국 음식을 제법 잘 하셨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첫 면접을 하고 일하기로 한 다음날 입주하시면서 이모께서는 지하철에서 샀다며 민규를 위해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는 팽이를 사오셨다. 주말에 쉬고 돌아오면서는 민지 민규 옷 한 벌을 사들고 오시기도 했다. 낯선 이모가 무서워 잘 가지 않던 민규는 팽이에 홀딱 반해 이모와 쉽게 가까워졌다. 민지는 이모가 사준 옷을 좋아했다.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뭐든 서두르지도 않고 아이들을 위해 기다려줄 줄 아는 이모가 우리 부부는 맘에 들었다. 다만 걱정인 것은 무릎이 좋지 않아 체력이 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흠이다. 그러나 인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믿고 맡길 만한 분이라 지금까지 넉달 째 잘 생활해오고 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쉽게 새로운 이모와의 생활에 빨리 적응해 이모와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다.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은 것도 있다. 바로 아무리 도우미가 아이를 잘 키워주고 믿을만해도 양육의 주도권은 엄마인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방 이모가 2년이나 넘게 둘째 아이를 보살피면서 나의 아이에 대한 책임의식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방 이모가 나를 대신해 아이와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고 있으니 너무 안심한 결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첫째 때 만큼 먹거리, 놀이, 습관, 하루 생활 패턴 등등에 덜 신경썼고, 이모가 하는 방식대로 방임했다. 기사를 쓰고 베이비트리 업무를 본다고 늦게 퇴근하는 일도 많았고, 술자리도 빈번하게 가졌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이모와 자는 횟수가 늘더니, 엄마와 자지 않고 이모와 자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이모가 그만두시겠다고 하니 그동안 아이가 애착을 형성해온 것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모와 애착을 잘 형성했다 하더라도, 내가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아이가 덜 걱정됐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나는 너무 이모에게 양육의 주도권을 내어 주다보니, 이모가 그만두시겠다고 하는 순간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양육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내 생활 패텬을 다잡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잔다. 둘째, 힘들다고 이모와 아이가 잘 지낸다고 너무 이모에게 양육을 의지하지 않는다. 양육의 주도권은 내가 가진다. 셋째, 남편과 아이들에 관련해 더 자주 얘기하고 소통한다. 넷째, 주말 중 하루는 아이들과 몰입해 전적으로 논다. 가급적 이 네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믿고 맡길만한 도우미가 있어도 방심은 금물!

내 아이와 가장 친밀한 사람은 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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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