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육아 한마디] 아이도 부모도 인정되는 관계 오늘의 육아 한마디

부모 자식.jpg » 한겨레 자료

 

‘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이러이러해야만 너를 받아들이겠다’라는 어떤 주관적 조건을 잣대 삼아 사랑할 대상을 심판처럼 저울질하는 태도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대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싸안는 태도라고 했을 때, 미란이 받은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었을까?
 
아닐 수도 있다.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미란이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기보다 ‘특별 대우’에 가까운 것은 아니었을까. 희생적인 부모로부터 받은 일방적이고 특별한 관심과 대우.

 

희생적인 부모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이’만 존재하고 ‘부모 자신’의 존재성은 희미하다. 아이의 욕구, 감정, 선호는 빠르게 감지하고 인정하지만 부모 자신의 욕구나 감정 등은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 관계에서 자란 아이는 ‘아이’도 ‘부모’도 인정되는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성 속에서 자란 아이와는 다르다. 사람 관계 맺기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사람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극단적인 우월감’ 아니면 ‘극단적인 두려움’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 아이 내면에서 ‘타인’이란 매우 하찮거나, 매우 두려운 존재 둘 중 하나다. ‘나’만 존재하는 듯이 살다가 ‘타인’의 존재를 대면할 수밖에 없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으로 충분하다> 중 (정혜신 지음, 푸른숲 펴냄)
 
주말에 몸살이 나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뭐라고 얘기해도 한 귀에서 한 귀로 흘렸습니다. 쉬고만 싶었지요. 

갑자기 딸이 제게 “엄마는 나랑 안놀아주고! 주말에는 나랑 놀아줘야 하는 것 아냐? 엄마는 만날 잠만 자고! 엄마 미워!”라고 소리칩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주중 내내 이런 저런 핑계로 놀아주지 않은 엄마가 주말에도 피곤하다며 누워 잠만 자고 있으니 섭섭할 수 있겠지요. 다른 때 같았으면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하며 딸을 안아줬을텐데 이번만은 딸에게 제 감정,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약간 큰 소리로 얘기했습니다. 
 
“뭐라고? 만날 잠만 잔다고? 그것 사실이 아냐. 그렇게 얘기하니 엄마가 굉장히 기분 나쁘고 섭섭해. 민지가 지금 잘못 말한거야. 생각해봐. 지난 주에도 엄마랑 아빠랑 밖으로 놀러나갔고, 그 전 주에도 재밌게 놀았잖아. 너도 엄마 얼굴 보면 알겠지만 엄마 이번 주 너무 힘들어. 그냥 쉬고 싶어. 엄마 아빠는 기계가 아니잖아? 민지도 쉬고 싶을 때 있는 것처럼 엄마 아빠도 쉬고 싶을 때 있는거야. 이런 날은 민지도 엄마 쉬도록 도와줘. 자, 지금부터 민규랑 재밌게 놀도록! 엄마는 쉴거야. 잠 좀 자고 싶어. 놀기 싫음 너희 둘도 엄마랑 푹 한숨 자던가.”

 

제가 단오하게 그렇게 말하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자니 딸은 더는 칭얼대지 않더군요. 갑자기 화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가 어색했는지 엄마랑 놀기를 포기하고, 동생이랑 놀더군요.
 
정혜신 박사가 지은 <당신으로 충분하다>의 한 구절을 읽으며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주말에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욕구나 감정만큼이나 부모의 감정, 욕구도 인정돼야 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배울 수 있다는 얘기를 읽고 나니 한결 마음이 마음이 편해집니다. 쉬고 싶고, 자고 싶은 제 욕구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누군가 대변해주는 것 같더군요.
 
여러분은 지금 아이와의 관계가 어떠신가요?
아이의 감정과 욕구만을 따르다가 너무 지쳐 있지는 않으신가요?
아니면 부모의 감정과 욕구만 내세우다 아이의 감정과 욕구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신가요?
아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때요?
 
선아생각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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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