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입학한 딸, 밥때문에 고민이라니…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를 담당하고 있는 양선아 기자입니다. 제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궁금하지는 않으셨나요? 딸이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3월2일부터 70여일 동안 육아휴직을 한 뒤 12일  회사에 복귀했습니다. 육아 휴직을 한 동안 저는 두 아이와 온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 손잡고 학교 가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 지켜보는 등  아주 평범함 일상이었지만 평소에는 할 수 없는 경험들이었지요. 아마도 그 시간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마감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아이들과의 일상이 항상 행복하거나 항상 좋지만은 않잖아요. 강한 체력과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딸이 초등학교 간 뒤 또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을 키우면서 제게는 어떤 육아 고민들이 생겼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가고 있는지, 또 아이들을 키우면서 재발견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자, 오늘은 ‘밥’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급식.jpg »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급식하는 장면. 박종식 기자

“엄마, 오늘은 무슨 반찬 나와?”
아침마다 아이는 학교 급식 식단표를 확인한다. 메뉴가 무엇이 나오는지 나는 아이와 함께 확인한다. 어떤 날은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이 나온다며 좋아하고, 어떤 날은 자기가 잘 못 먹는 반찬이 나온다며 걱정하며 간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에서도 봄이에게는 ‘밥’이 최고의 화두다. 어린이집 다닐 때 한 선생님께서 밥을 빨리 먹는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줬다. 어린이집 급식 시간은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전쟁터와 다름없다. 짧은 점심 시간에 많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자신의 밥까지 챙겨먹어야 하는 보육 교사로서 칭찬 스티커는 좀 더 효율적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수단이었을게다. 그러나 어떤 아이에게는 그런 방법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칭찬 스티커는 받고 싶지만 밥은 빨리 못 먹는 봄이같은 아이에게는 식사 시간이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집에서는 밥을 잘 먹는 딸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는 점심 시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엄마, 나 밥 다 못먹는다고 선생님한테 말해줘.”라고 하더니, 학교 입학해서 한 2주 동안은 “나  밥 다 못 먹으면 어떡해”하며 울고 다녔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밥 때문에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쩌겠는가. 어렸을 때 반찬이나 밥 양 문제로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내게는 딸이 정말로 이상해보였다. 울면서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딸밖에 없었다. 자꾸 다른 엄마들이 “봄이 왜 울어요?”하고 물어볼 때마다 그 난감한 기분이란….
 
“밥을 많이 못 먹겠으면 조금만 달라고 하면 돼, 봄아~ 울지 말고 자기 의견을 정확히 말하는거야.”
“조금만 달라고 해도 많이 주는데 어떡해~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해주면 안 돼?”
“그럼 남겨. 남긴다고 선생님께서 혼내는 것도 아니잖아. 예전에는 음식을 남기면 혼내는 선생님도 있었다는데 봄이 선생님은 그렇지 않잖아. 그러니 정 다 못 먹으면 그냥 남겨. 그리고 어린이집 다닐 때는 봄이가 어리니까 엄마가 대신 말해줬지만 이제 봄이는 학생이야. 자기 생각과 의견을 정확히 남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해. 이제는 엄마가 대신 얘기해주거나 그러지 않을거야.”
“다 못 먹으면 칭찬 점수 못 받아. 난 플러스 점수 많이 받고 싶은데.”
“봄아,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해. 네가 플러스 점수를 받고 싶다면 다 먹고, 다 못 먹겠으면 플러스 점수를 포기해. 둘 다 가질 수는 없어. 그것은 네 선택에 달렸어. 둘 다 가지고 싶다고 울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 없고 너만 힘들잖아. 네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거야. 어떤 것을 선택해도 괜찮아.”
 
아침마다 이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나마 내가 휴직 중이라 마음이 여유로워 이런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만약 출근길 분주한 아침이라면, 이런 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는 아이를 보며 화부터 내지 않았을까. 우는 아이를 달래서 학교에 들여보내고, 아침에 학교 가면서 또 하교 뒤 집에서 이런 대화를 반복적으로 했다.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잔반을 남겨도 혼내지 않고, 편식 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지도해주셨다. 아이는 차차 나아졌고, 칭찬 점수를 덜 받아도 괜찮고, 밥을 남겨도 괜찮다는 경험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갔다. 2주가 지나가니 아이가 우는 횟수가 줄어들고, 아침에 ‘밥’ 타령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한 달 지나니 밥 때문에 울고 학교에 들어가는 횟수는 거의 없어졌다. 
 
아이의 ‘밥’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나의 양육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이가 어리기는 했지만 당시 나는 아이를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밥 양이 많다고 울 때면 어린이집 수첩에 밥을 적게 달라고 글을 남기고 그래도 아이가 불안해하면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안쓰러워 무심코 한 나의 그런 행동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빼앗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너무 아이가 어리면 선생님께 제대로 의견을 전달할 수 없기때문에 엄마가 아이 대신 선생님께 얘기해줄 수 있다. 그러나 6~7살 정도의 나이라면 충분히 자기 스스로 선생님에게 밥을 적게 먹고 싶으니 적게 달라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아이 대신 내가 나서서 ‘밥’ 문제를 해결했고, 결국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아이는 ‘밥’ 문제를 엄마가 대신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의 양육 태도의 오류를 발견하고, 나는 이번에는 아이를 믿고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니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갔다. 이제는 아이도 나도 힘들어지지 않게 됐다.
 
육아서에서 항상 전문가나 선배맘들이 들려주는 육아 원칙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라’는 것이다. 이번에 딸의 ‘밥’문제를 해결하면서 ‘아이를 믿는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말이다. 다른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도 아이를 어떻게 믿어야 할 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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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