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난 헤이리 가을 나들이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IMG_8100.JPG » 헤리이마을 한국 근현대사박물관. 사진 양선아

 

지난주 초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다. 주말 나들이 스케줄을 잡기 위해서다. 눈밑 다크써클이 땅끝까지 내려올 정도로 피곤한 요즘, 가을 햇빛이 너무 좋은데도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 한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다. 아이들이야 꼭 어디를 가야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이 좋은 가을에 집안에만 있는 것도 가을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콧바람을 쐬주고 싶은 욕구와 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마음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2012년의 가을은 다시 오지 않을테고, 내 인생에 딱 한 번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난 주말에는 기필코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를 가겠다는 일념하에 주초부터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를 가야할 때, 나는 항상 어렵다. 어디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가야할 지 계획을 짜는 것이 어렵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 지, 비용은 얼마나 들 지 계획을 세우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도 않았고 잘 놀아보지도 않아서인지, 놀러 갈 계획을 세울 때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이 충분해서 다른 엄마들 블로그들을 꼼꼼히 둘러보며 나들이 계획을 세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편 역시 놀러 갈 궁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 내게 요즘 큰 힘이 되는 것이 바로 ‘베이비트리’다. 베이비트리는 내 일터이자 내 정보원이고, 내 육아 도우미다. 다른 사이트들처럼 상업적 정보가 베이비트리에는 없는데다, 다들 자기 소신을 가지고 육아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 도움이 많이 된다. 베이비트리에서 다른 엄마들이 다녀온 곳들을 참조해서 남편에게 나들이 계획 세 개를 보냈다.
 
IMGP0152.JPG » 헤리이마을 근현대사박물관 앞에서.

 

 

첫번째로 서울 역사박물관 나들이다. 베이비트리에 글을 자주 올려주시는 ‘리디아’님께서 역사박물관 나들이를 다녀오시고 멋진 글과 사진을 올려준 적 있다. (리디아님의 글은 http://babytree.hani.co.kr/83083 ) 이 분에 따르면,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5~7살을 대상으로 올해 12월까지 <말하는 박물관 동화야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운영한다고 한다. 포스터를 보니 선착순 50명에게 동화구연, 만들기, 상황극 등을 50분 동안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언젠가 또 다른 독자가 올린 내용에서, 서울 역사박물관에 가면 멋진 서울 야경 모형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클래식 연주도 종종 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나들이 후보지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선택했다.
 
 
두번째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캠핑이다. 베이비트리 필자인 김미영 기자가 가을 캠핑 후기를 남겨줬다. (http://babytree.hani.co.kr/story/81766)  무려 세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다니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 무모한 용기가 부럽기만 했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캠핑’의 맛을 선사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캠핑 장비가 없어도 캠핑 장비를 대여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고 전했다.
 
 
세번째로 헤이리마을이었다. 주변에서 헤이리예술마을과 파주 출판문화단지에 애들을 데리고 꼭 다녀오라는 추천을 많이 받아서였다.

 

IMG_8098.JPG » 옛 물건들을 둘러보고 있는 아이들과 남편. 사진 양선아  

 

남편은 내가 주초부터 주말 나들이 후보지 3곳까지 추려서 메일을 보내니, 이번 주말에는 나들이를 안 가면 아내가 폭발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남편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 캠핑은 둘째가 아직 어려서 너무 추울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토요일에 움직이는 것보다는 일요일에 나들이를 가자는 의견을 냈고, 결국 헤이리마을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헤이리로 가는 도중 나는 스마트폰으로 헤이리 추천지를 검색해보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도 추천지를 물었다. 검색과 페이스북 댓글 결과 가장 많이 추천된 장소는 한국 근현대사 박물관이었다. 파주로 가는 길은 주말이라 조금 막혔고, 우리는 점심 때 헤이리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일단 배고픔을 달래기로 했다. 차로 쭉 둘러보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안동국시라는 국수집이었다. 한겨레신문사 앞에도 이 국수집이 있어 가끔 이용한다. 고기 육수인데 국물이 맑은 것이 이 국수집의 특징이다. 국수집에 들어가 모듬전과 국수 두 그릇, 주먹밥, 막걸리 한 병을 시켜 네 식구는 맛나게 먹었다. 비용은 3만9천원이 나왔다. 특히 안동국시집의 주먹밥과 국수는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되지 않아 안성맞춤이었다.

IMGP0145.JPG » 맛있었던 헤이리에서의 점심.

 
 
헤이리예술마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적어도 두 세 번은 더 와서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들이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던 남편이 “나오니까 좋긴 좋네. 다음에는 좀 일찍 출발해서 오전부터 둘러보고 점심 먹고 또 놀다 가면 좋겠다. 다음에 또 한 번 오자. 옆에 보니 영어마을도 있고, 가까운 곳에 출판단지도 있고 가볼 만한 고곳이 많네”라고 했다. 남편이 좋아하니 나 역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밖에 나오니 그저 돌멩이 하나에도 감동을 했고,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차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파주 헤이리 4번 게이트 종합매표소 인근에 있는 한국 근현대사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른 입장권은 6천원, 어린이는 4천원이었다. 맥콜, 눈깔사탕, 딱지, 각종 레코드 등 내가 어렸을 때 봤던 물건들을 비롯해 60~70년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최봉권 한국근현대사박물관 관장은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것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7만여점에 달하는 물건을 찾아냈다. 30년간 사라져가는 추억의 물건들을 수집해 온 그는 끝내 헤이리에 한국 근현대사박물관을 개관했다고 한다. 이 곳은 옛날 사람들이 살던 그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으려 애를 썼다. 이발관, 전당포, 쌀집, 포목점, 교실, 문방구, 달동네까지 생생하게 꾸며놓은 이 곳에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IMG_8121.JPG » 멧돌 가는 딸아이 모습. 사진 양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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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는 처음에는 이 곳에 들어가니 낯선 풍경에 좁고 기다린 골목이 있어서인지 무섭다며 나가겠다고 했다. 민지가 겁을 내니 민규 또한 “무서워”라고 말했다. 나와 남편은 “옛날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모습이야. 지금과는 다르지? 엄마랑 아빠랑 함께 하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라고 설득하며 관람을 이끌어갔다. 민지는 계속 무서워하다 멧돌을 갈아보고 목마를 타보더니 조금씩 덜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아직 어리기만 한 민규는 “할머니 할아버지 살았던 곳이야?”라는 말만 연신 뱉어내며 골목길을 따라 졸졸졸 걸어다녔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 역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즐거웠던 관람이었다. 삼립호빵과 맥콜, 눈깔사탕, 딱지 등을 볼 때는 어찌나 반갑던지.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연탄을 썼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정말 나를 둘러싼 생활환경은 급변했던 것 같다. 저녁에 자가 중간에 일어나 연탄불을 갈던 이모, 할머니와 이모랑 함께 고구마를 삶아 먹던 마루... 이젠 모두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무작정 주말에 떠난 주말 가을 나들이. 가을에 대한 예의를 제대로 지킨 기분이다.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다들 주말 계획은 잘 세우셨는지... 

방 안에서 뒹굴거리기보다 바깥 나들이를 다녀오셔서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베이비트리에 남겨보심이 어떨지...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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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