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아서 기운을 모은다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38/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여봉사폐 如封似閉    

 

 

진보반란추의 자세로부터 두 손이 갈라져 나와, 오른손은 허리의 우회전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고 왼손은 왼쪽으로 돌아서, 허리가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서 역회전하며 돌아나옴에 따라 두 손도 모아지는데, 왼쪽 대각선 가슴 앞 지점에서 십자수의 식으로 이어진다.

 

여봉사폐如封似閉는 마치 사방의 문을 닫고 봉쇄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쓰인 이름이다. 일기一氣로 사방팔방을 제압하여 봉쇄함이다. 수련자가 일기로 주변의 기운을 통일시킴으로써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계 속에 소요함이다. 행공하는 이의 의식이 미치는 곳까지 혼연일기渾然一氣의 상태로 봉쇄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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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無門關에 들어섬이다. 문 없는 문에 들어섬이니 들어섬도 나감도 없다. 경계 없는 경계에 진입함이다. 폐관수행을 하는 수행자가 주변을 통제하고 단절함과도 같다. 동굴 속에서 동굴의 기운과 자연의 의식과 하나됨으로써 나를 내려놓고 나를 찾는 수행이니, 폐관을 함은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이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는 법성을 증득하기 위해, 나의 모든 상을 철저히 내려놓고 단절함을 의미한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知者不言),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言者不知), 입을 봉해 말을 닫으니 기가 새어나가지 않는다. 보는 눈을 감으니 신이 안정된다. 듣는 귀를 닫으니 정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감정의 구멍을 막고(塞其兌) 욕정의 문을 닫으니(閉其門. 56), 밖으로 열린 감각이 폐쇄되고, 안으로 신과 기가 수렴된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동굴 속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는 곰돌이 같다. 일생의 사업과 관계들을 정리하고 내면의 휴식에 들어간 노년의 여유가 묻어난다. 한해의 농사를 갈무리하고 긴 휴면의 시간을 한가로이 지내는 농부의 사랑방 같다. 새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가 고요히 인연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잎과 줄기의 무성하던 생명의 기운을 거두어들여 대지 깊이 묻힌 뿌리에 양분을 저장하고, 말없이 때를 기다리는 칡넝쿨나무 같다. 주변을 청정하게 한 수련자가 깊은 명상에 들어간 모습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뜻을 사용해야 하리.”

뜻이 움직이는 대로 모양이 따라 나오네.”

 

心靜用意 심정용의

意動形隨 의동형수 (태극구결)

 

태극선 수련의 기본요결이자 가장 핵심이 되는 구결이 심정용의心靜用意이다. 태극선과 기공 등의 수련에 들어가는 수련자는 반드시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해야 한다. 마음이 번다하게 되면 수련의 효과는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은 상태에서 본 수행에 들어가야 한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챙긴다. 마음챙김(sati)을 하면 마음에 예고 없이 떠도는 번뇌도 사라지고 고요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지금 수련에 임하는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그렇게 마음이 고요하게 된 다음에 의도를 낸다. ()이 가는 곳에 기도 가기 때문이다(意到氣到).

 

기가 움직이면 혈도 따라 움직인다(氣到血到). 여기서 혈이란 몸이고 몸의 형상이다. 기공과 태극선의 원리는 의- - 의 순서로 작동되는 데 있다. 먼저 뜻이 동하고 그 뜻에 따라 기가 움직여 나온다. 그런 다음에 그 기가 가는 곳에 형상이 만들어져 나온다. 그러므로 의동형수意動形隨의 요결도 같은 말이다. 뜻이 가는 곳에 형태가 따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태극선의 동작을 취할 때, 강권에서처럼 몸의 근육이나 뼈, 혹은 형상에다 뜻을 두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기의 기제가 작동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의- - 의 순서를 따라 행공함이 올바른 기공의 법이다.

노자가 말한다.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볼 수 있나니.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하늘 아래를 알고,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길을 본다.

그 나감이 멀어질수록

그 앎이 더욱 적어진다.

그러하므로 성인은

가지 않아도 알고,

보지 않아도 밝으며,

하지 않아도 이룬다.

不出戶, 불출호

知天下, 지천하

不窺牖, 불규유

見天道. 견천도

其出彌遠, 기출미원

其知彌少. 기지미소

是以聖人 시이성인

不行而知, 불행이지

不見而明, 불견이명

不爲而成 불위이성 (47)

 

이제 문을 닫았다. 욕망의 문을 닫았다(閉其門). 외부로 향한 몸, 언어, 생각의 모든 출입구를 닫았다. 그리고 감각의 구멍을 막았다(塞其兌). 외부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통로인 눈(), (), (), (), ()의 오관을 틀어막았다. 밖으로 출입하는 정신을 안으로 거두어들인다. 마음이 내 생명의 원천인 태극太極의 일기一氣를 지킨다. 하늘의 태극으로부터 품부 받은 내 안의 원기元氣를 돌본다. 하의 세 단전丹田에 자리한 태극의 문을 연다. 삼관(미려, 옥침, 니환)을 열어 임독맥을 타통한다. 북쪽 바다의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로 변한다. 이 물고기는 북쪽 바다에서 원기를 기르고 양기를 키우니 다시 큰 붕새로 변한다. 붕새는 호흡의 바람을 타고 구만리 장천을 날아간다. 남쪽 바다에 도착하여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지금, 여기에서 소요유逍遙遊한다.

 

잠룡이 북해에서 여의주를 얻고 항룡이 되어 남해의 하늘로 비상함이다. 하늘에 오른 항룡은 땅을 돌본다. 생명의 소리를 듣고 생명을 지킨다. 백 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의 백 가지 마음을 읽는다. 그들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그들 안의 비밀스런 충동에 동참한다. 아래로 흐르는 큰 물길에 합류하여 그들을 인도한다.

 

문밖은 보이는 세계다. 감각이 외부로 통하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문밖에 자신들의 삶의 중심이 있다고 여긴다.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지나, 마음은 외부세계로부터 돌아오지 못한다. 사업이 걱정이고 부하 동료직원들이 눈에 아른거리며, 거래처, 서류들, 친구와 지인들, 성과물들과 계획안들, 노후대책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오히려 번다하다. 일중독증인 모양이다. 놀 줄도 모른다. 방안에 있어도 마음은 신문과 TV와 뉴스와 드라마들의 온갖 사건, 사고, 소식과 전망들로 점령당한다.

창문을 열고 밖을 엿본다. 그제서야 밖의 세상이 보이고, 내가 그 세상의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세상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할까봐 불안해한다. 눈은 보이는 명품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하고, 귀는 감미로운 소리들과 음악에 심취하고, 코는 귀신 같이 냄새를 맡아 처신하고, 혀는 늘 새로운 미각에 탐착하여 이집 저집 맛집 기행에 골몰한다. 몸은 더 요염하고 날씬하게 가꾸는 것을 일삼는다. 갖은 먹거리와 볼거리와 들을 거리와 놀 거리와 즐길 거리들이 밖의 세상에 다채롭고 화려하게 널려있다. 그런 까닭에 하루라도 외부세계에 접속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외롭고, 따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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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말했다. 그 감각의 구멍을 열고(開其兌), 일로만 바삐 건너다니면(濟其事), 그 몸이 끝날 때까지 구원이 없을 것이다(終身不救. 52)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不出戶) 하늘 아래 소식을 안다(知天下). 안과 밖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안팎이 두 모습이 없이 하나로 통해 있으니 안의 소식, 밖의 소식이 분리되거나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밖의 태양과 달과 별과 은하계의 소식들, 종다리와 개미와 메뚜기와 뱀들과 철새들과 고라니와 원숭이와 멧돼지와 반딧불이들, 참나무와 소나무와 편백나무와 칡넝쿨과 하늘수박과 나리꽃과 들풀과 쑥부쟁이와 억새풀들, 곰팡이와 세균과 미생물들과 효소와 효모와 버섯들, 바람과 향기와 비와 눈과 안개와 이슬과 구름과 바위와 이끼와 흙과 대지와 숲들, 피리와 붕어와 메기와 미꾸라지와 다슬기와 우렁이와 참게와 문어와 낙지와 해산물들과 해조류들과 거북이와 고래와 상어들의 소식을 안에서 듣는다.

 

현미경으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 세균과 바이러스들에 이상 징후가 발생함을 알고, 그것들의 인과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공장형 축산과 공장형 작물 재배농법이 자연의 길로부터 한참 멀리 가버렸음을 알고, 멀리 갔으므로 되돌아와야 할 것을 안다. 도에서 벗어나면 일찍 사라지게 될 것인 바. 지구촌의 생명계를 위협하는 반생명, 반평화, 반문화적인 안팎의 질서들과 제도들과 체제들의 인과업보를 안다. 그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과 동물들과 나무와 숲들과 물과 바다와 하늘과 남극 북극의 얼음들의 소식을 안다. 그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다.

 

물질계와 생명계와 마음계와 혼계와 영계가 본래 하나인 의식의 다른 이름들일 뿐이다. 나뉘어 있지만 나누어질 수 없는 경계이다. 일자가 다자로 다자가 일자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자신을 해체해 들어감으로써 변화한다. 때로 현시하고 때로 은적하며 겹겹이 쌓여 끝없이 펼쳐지는 인연의 그물코 안으로 갈마들어간다. 나를 너의 몸으로 너를 나의 몸으로 서로 나툰다. ‘안에 온우주가 들어있고, 온우주 안에 가 들어있다. 작은 티끌 하나가 시방세계를 담고 있음이다. 지금 이 순간, 시간 없는 시간 속에 머무르니 영원한 현재를 탄다. 그러므로 창문을 엿보지 않고도(不窺牖) 하늘 아래의 돌아가는 이치를 본다(見天道)고 말하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 안으로부터 멀어질수록(其出彌遠) 그 앎은 더 적어진다(其知彌少). 도의 지도리(道樞)로부터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눈앞의 현상들에 이끌린다. 눈앞의 잇속에 끄달린다. 뿌리로부터 멀어지니 바람 잘 날 없는 이파리들의 나부낌만 현란하다. 화려한 색깔들과 아름다운 음조들과 구수한 입맛들과 짜릿한 쾌락들에 마음이 춤춘다. 마음이 즐거울 때는 득의양양하고 고통스러울 때는 추락하니 널뛰기를 반복한다. 안의 고요함을 버리고 밖의 움직임에 빠져들수록 마음도 따라 도는 듯 산란하게 된다. 노자가 말했다. “청정함을 하늘아래의 정법으로 삼으리니.(淸靜爲天下正. 45)”

그러므로 성인은 가지 않아도 알고(是以聖人不行而知), 보지 않고도 밝게 살피고(不見而明), 행하지 않고도 이룬다(不爲而成)고 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약속의 신표가 있음이니.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바삐 움직임이 있으면 한가로이 쉴 때도 있고, 낮에 일하면 밤에 잠잘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젊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나, 나이 들어 늙고 힘 떨어지면 일과 사업에서 점차 손 떼고 쉴 때가 온다. 그래서 인생의 겨울은 우리에게 쉼과 고요함과 죽음을 동시에 선사하는 계절이다.

한가로움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세월이었다. 잠시라도 일을 놓으면 또 다른 일이 찾아온다. 혹 일없이 한가로워지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못 쉰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젊었을 때는 노후대책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돈 없이 늙는다는 게 서러움을 더할까봐 그랬을 것이다. 그럭저럭 세월이 가다 40대부터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막 간다. 세월에 가속도라도 붙은 것 같다. 누가 그랬는데 40대는 시속 40킬로로 가고, 50대는 시속 50킬로 가고, 60대는 시속 60킬로로 간단다. 이제 시속 70킬로 이상으로 막 가게 되면 그 속도감을 어찌 감당해야 할까?

 

곰돌이나 뱀, 오소리 등이 동면冬眠을 한단다. 하루살이들은 무엇으로 동면을 하고 한해살이들은 또 어떤 상태로 겨울을 날까? 우리네 인생살이는 어느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동면을 하나 궁금해진다.

깊고 어두운 지경(玄冥之境)에서 정기精氣는 도탑게 쌓인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의 여명을 재촉한다. 한겨울의 동면은 밖으로 흩어진 정신을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이름과 욕망을 좇아 고갈되어버린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게 해줄 것이다. 한밤의 휴식이 새날의 자양이 되듯이 말이다.

 

깊은 밤, 한겨울, 저문 황혼 길을, 잘 쉬어 고요하고 모든 것이 끊긴 지경에서 보내게 되면, 짙은 어둠속에서 자기를 버림으로써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나비와 같이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름()도 잊고 공도 잊고 나() 자신도 잊게 되어 평생의 업을 씻게 되면 참된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란 대나무가 마디를 맺음과 같이 금생의 마디를 맺도록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잘 죽고 잘 삶으로, 죽음도 삶도 없는 영원한 현재로 이어지는 다리가 될 것이다. 지혜 전통이 들려주는 말없는 가르침이 한겨울의 당신을 껴안아줄 테니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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