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처럼 몸을 낮추어라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잘 낮추기 때문에 왕이 된다/진보재추 進步栽捶   

 

오른쪽 천녀산화의 자세에서 우루슬요보로 장을 밀어가는 듯 하다가 곧장 오른손이 권으로 바뀌어 주욱 질러 들어간다. 이때 허리는 대퇴부의 경사와 일직선이 되도록 하여 상체가 앞쪽으로 기울어지는데 이것이 진보재추 초식이다. 진보지당추와 같은 모양이다.

오른손은 허리와 90도 방향으로 아래 땅 쪽으로 질러있는데 왼다리가 실하고 오른발이 허하다. 왼손은 옆구리 옆에 가볍게 놓여 있다. 마치 자세를 낮추어 오른 팔뚝 하나를 기둥처럼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진보재추는 앞으로 나아가서 권을 지르는 모양을 본떠 붙여진 이름이다. 굽힌 상체를 아래로 향해 자세를 낮춘 것이, 노자의 낮은 데 처함(處下)’의 도리를 잘 실천하는 모습이다. 상체와 하체를 연결한 허리 자세가 반듯하듯, 그 굽힘의 도가 사사롭지 않다. 그 굽힘 속에 올곧음과 정직함이 배어있으니 곡즉전曲則全의 도를 담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처세를 능기로 하는 간신배들이나 모리배들의 그것과는 판연히 다르다. 눈은 앞쪽의 권을 주시하고 있으니 일관된 신의를 지키는 표식으로 읽힌다.

 

진보재추는 낮은 곳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형세를 취하되, 뒤로 물러서서 먼저 상대방의 처분을 기다리는 뜻이 담겨 있다. 낮은 자세로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일꾼의 그것을 닮았다. 겸퇴謙退의 덕을 품어서 세상의 부름을 받고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 모습이다. 나를 추켜세우지 않으나 오히려 높은 곳에 들려 진 모양이다. 강과 바다가 저 낮은 곳, 저 아래쪽에 처하고 있으니 뭇 시내와 골짜기들이 그 품으로 내달려간다. 이것저것 시비하지 않고 더럽다 깨끗하다 차별하지 않으니, 온갖 색깔의 물들이 흘러들어오는 연못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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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재추는 앞을 향해 있는 듯하나 아래에 처해 있고, 아래를 향해 있는 자세이나 앞으로 나아감을 잊지 않는 기세이다. 미래를 꿈꾸나 현재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으며, 역사로부터 배우나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천리길이 한 걸음부터 시작되듯 초심을 잃지 않고,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리를 본다. 기울어질 듯하나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앞으로 밀려나갈 듯하나 뒤에 지탱함이 흔들리지 않는다.

 

뜻이 위쪽으로 향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아래쪽을 향해야 하리

 

意欲向上 의욕향상

必先寓下 필선우하

 

뜻이 왼쪽을 향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오른쪽으로 가야 하네

 

意欲向左 의욕향좌

必先右去 필선우거

 

앞으로 가는 중에는

반드시 뒤쪽에 지탱함이 있어야 하리

 

前去之中 전거지중

必有後撑 필유후탱

 

태극선의 식과 세를 행하는 원리의 기본이 되는 구결들이다. 모든 동작과 자세는 대칭과 협조가 잘 된 바탕에서 서로 연결되고 꿰어짐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허리를 중심으로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의 어느 쪽으로 동작의 변화를 의도할지라도, 서로 상대되는 반대쪽 방향으로 반드시 먼저 변화해야한다. 위로 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아래쪽으로 향해야 한다. 왼쪽으로 움직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뒤쪽에 강한 버팀목이 있어야 한다.

 

태극권의 초식을 행공하는 원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그러나 이를 원만히 성취하는 데는 긴 세월 수련 정진의 노력이 필요하다. 얼핏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이론이고 실기이다. 초심자들은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다가도 어느 정도 익혀지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작 몇 년의 기간이 지나가도 실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대개 태극구결을 깊이 있게 염송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태극권의 이론은 태극구결에 다 들어있다. 옛날 태극권 수련자들은 집안 깊숙한 곳에서 스승으로부터 배울 때 이 구결을 통해 배웠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우리가 쉽게 배우고 있는 구결은 그 당시에는 비전秘傳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비전인 것이다. 그래서 구결口訣이라 한다. 간단해서 어려움이 없지만 막상 이들 구결을 마음속에 꼭 담고 염송하면서 원리에 충실하게 행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무엇이든 원리에 충실한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처음 수련을 위해 낯선 땅의 깊은 산속과 동굴에서 수련할 때부터 나는 늘 이 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새벽 명상을 할 때는 항상 태극구결을 명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구결의 원리를 관상觀想하면 바로 태극권을 수련하는 기운에 젖어들어간다. 일종의 관상 명상법이 된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마음에 두고 늘 염송을 하고 그렇게 되도록 관상하는(상상하는 것과 비슷함) 명상을 하면 그것이 도에 어긋나지 않는 한 대체로 마음이 원하는 쪽으로 되어간다. 그토록 긍정의 힘은 크다.

 

부정적 의식에 갇힌 사람은 모든 것을 늘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저변에 깔려있는 무의식 속에는 뿌리 깊은 부정성(콤플렉스 같은)이 자리 잡고 있다. 깊은 곳에 자리 잡고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무의식적 부정성은 나도 모르게 일과 사람을 대하는 순간에 늘 부정적으로 만든다. 부정적 의식은 부정적 에너지를 일으키고, 그런 까닭으로 그 일의 결과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의식의 사람은 아무리 사태가 어려워도 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 상대가 결점이 있고, 싫은 점이 있어도, 그 결점 이면에 숨어있는 장점을 본다. 낙관적으로 보고 낙천적인 태도로 사람과 사물을 대하니, 일이 쏙쏙 잘 풀린다. 잘 될 수 있다고 믿고 여기는 배경에는 자신감이 한몫한다. 대개 긍정적 의식을 갖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칭찬과 격려를 많이 받아왔거나 혹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성취감을 맛 본 경우들이 많다. 긍정적 의식도 식물의 씨를 뿌리고 그 싹이 돋아나면 정성으로 키우는 것처럼, 그렇게 지극하고 정성스럽게 돌보고 가꾸어야 한다. 수련이란 바로 그처럼 긍정성을 키우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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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수련자들은 늘 긍정적 의식을 갖고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바라보아야 하고, 일을 할 때도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길러야 한다. 특히 기수련을 하는 이들은 더욱 이 점을 잘 이해하고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보이지 않고 감각으로 잘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 사고를 갖는 사람들일수록 잘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란 에너지의 다른 이름이고, 동양의 수천 년의 역사에서 이론과 실천으로 검증된 매우 유효한 개념이다.

 

동양의 수련과 지혜 전통은 직관적 사유와 직접 경험을 매우 중시한다. 그리고 여러 경전들은 그러한 사유와 체험의 기록이다. 히말라야 산정山頂을 올라가서 맛보고 그 산이 되어버린 기록이다. 그러므로 그 기록은 산을 오르고자 하는 뭇 수련자들에게는 안내지도가 된다. 길을 가는 이가 믿을 것은 안내자와 안내지도일 것이다. 그래서 수행전통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스승과 안내지도인 수련법’, 그리고 함께 길 떠나는 도반道伴의 삼자는 매우 중요하다.

노자가 말했다. 네가 천하를 얻으려 하는가? 먼저 저 낮은 곳에 처하라. 강과 바다가 스스로를 낮춰 아래에 처하기 때문에 모든 시내와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나니.

 

강과 바다가 온갖 시내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온갖 시내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백성의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말로써 자기를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그 몸을 뒤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하므로 성인은 위에 처해 있어도

아랫 백성이 무겁다 아니하고,

앞에 처해 있어도

뒷 백성이 해롭다 아니한다.

그러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즐거이 그를 추대하면서

싫어하지 아니한다.

항상 그는 다투지 않으니

세상에 그를 상대로 다툴 자가 없는 것이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以其善下之, 이기선하지

故能爲百谷王 고능위백곡왕

是以欲上民 시이욕상민

必以言下之, 필이언하지

欲先民 욕선민

必以身後之, 필이신후지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시이성인처상이민부중

處前而民不害 처전이민불해

是以天下樂推而不厭, 시이천하낙추이불염

以其不爭, 이기부쟁

故天下莫能與之爭 고천하막능여지쟁 (66)

 

아래에 처함(處下)’은 노자의 대표적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도의 덕을 내면화한 이의 실천론이다. 도 따로 실천 따로가 아니라 가 바로 실천이다. 도란 길이다. 큰 길이다. 모든 길로 통하고 모든 길을 만들어내고 모든 길이 되돌아갈 귀의처이다. 그러므로 도란 모든 길이 통하는 이치이며 동시에 모든 길을 가는 실천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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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아래로 향한다. 아래로 나 있어서 아래로 통한다. 모든 윗길은 아랫길로 모인다. 이런 까닭으로 아랫길은 종가길이다. 모든 샛길은 큰 길로 합류한다. 하늘길도 땅 윗길도 땅 아랫길도 물길도 바람길도 사람길도 차길도 꽃길도 나무 길도, 모두 큰 길인 종가길로 통한다. 그 큰 길은 아래에 있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모든 길을 차별 없이 받아들인다.

마치 강이나 바다가 아래에 있어서 모든 물길을 받아들이듯, 안아들이듯 큰 길은 아래에 처한다. 종가길은 아래에 처한다. 강이나 바다가 아래에 있기 때문에 모든 시내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큰 길은 아래에 있다. 대도를 걸어가는 이는 낮은 데 처한다. 낮은 데 처하므로 모든 이들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이들을 품고 어루어주는 어른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말로써 자기를 낮추니 백성들의 위에 서고(欲上民, 必以言下之), 몸으로써 자신을 뒤에 두니 백성들의 앞에 서게 된다(欲先民 必以身後之). 이런 지도자는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무겁다 하지 않고(聖人處上而民不重), 앞에 있어도 백성들이 해롭다 아우성치지 않는다(處前而民不害). 누구를 상대로 싸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니(以其不爭), 그와 싸우려는 자가 없다(故天下莫能與之爭).

 

다투지 않음(不爭)’사상은 노자의 또 하나의 중심사상이다. 사회적 실천론이다. 부쟁不爭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사상의 핵심적인 덕목이기도 하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水善利萬物而不爭). 부쟁의 삶과 실천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뜻있는 일이다. 오늘날의 개인과 사회, 그리고 인류가 당면한 심각한 갈등의 상황,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부쟁이 관건이 된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실현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왜 싸우는가?

어느 황제가 장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한 곳의 절에 들러서 이렇게 물었다.

선사님! 이곳의 강에는 대개 하루에 몇 척의 배가 왕래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곳에는 의 두 척의 배가 매일 왕래할 뿐입니다.”

 

다툼이란 뻔하다. 과 명이 다투고, 와 이가 경쟁하고, 과 욕이 싸운다.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사가 도사리고 있어서 그 싸움을 부추기고 진두지휘한다.

 

노자의 말은 지극히 단순하다. 물처럼 가 없다면 남을 이롭게 할 따름이지 다툴 일이 없게 되고, 강이나 바다처럼 스스로를 잘 낮추면모든 계곡의 왕으로 추대 받을지언정 싸울 거리가 없게 된다.

    

글 사진/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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