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어서 뛰어넘어.” 겁이 났다. 친구는 이미 뛰어넘었다. 운동장 구령대의 난간을 잡고 몸을 치솟아, 다리를 난간 위로 넘겨, 2미터 아래의 운동장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고교 2년생 같은 반 친구인 두 명은 며칠 전 <야마카시>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도심의 장애물을 맨손으로 거침없이 뛰어넘는 호쾌한 영화였다. 그 영화의 동작을 따라 하려는 참이다.

 30분간 구령대 난간을 붙잡고, 없는 용기를 애써 부르고 또 불렀다. 친구는 비웃는 듯했다. 겁쟁이라고. 순간 숨을 몰아쉬고,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아랫배에 기를 모았다. 그리고 풀쩍. 잠깐의 낙하 뒤에 착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던 친구가 “잘했다”며 축하해준다. 처음 느껴보는 심장의 강한 쫄깃함이었다. 엄청난 성취감도 따라왔다. 컴퓨터 게임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청소년이 정신과 육체가 자유로운 ‘용기의 세계’로 뛰어든 순간이다. “세상이 달리 보였어요. 실제로 다른 이들과 달리 걸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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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시달리다 세상이 달리 보여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국내 파쿠르의 일인자가 된 김지호(29·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 대표)씨는 남들과 달리 다닌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맞는다. 그에겐 담장이나 난간, 벽 등이 별로 의미가 없다. 대부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판 축지법의 달인이다. 평범한 길거리가 그에겐 놀이터이다. 약간의 도움닫기만 하면 3~4미터의 담장은 훌쩍 뛰어 넘는다. 폭이 넓고 높은 벽과 벽 사이를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옮겨 다닌다. 속도 역시 빠르다. 거침없는 움직임이다. 일반인의 눈에서 보면 위험천만이다. 도심의 장애물뿐 아니다. 그는 산에서도 ‘미끄러져’ 다닌다. 계곡의 바위나 큰 나무를 스치듯 뛰어넘는다. 그에겐 도시와 자연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이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장애물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이동한다.

 영하 10도 이하의 매서운 추위가 모두를 움츠리게 만들던 지난 13일, 김씨는 평소 자신이 파쿠르를 연습하던 서울 선유도 공원에서 웃통을 벗었다. 그가 보여준 파쿠르 기술은 윌 스핀. 벽에 뛰어올라 붙어 몸을 360도 회전해 이동하는 기술이다. 공중에서 한 손을 벽에 짚고 온몸을 틀어야 한다. 기계체조 선수 같다. 중력이 사라진 듯한 움직임의 연속이다.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용감하고도 건강한 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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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소개되며 세계적 선풍

 파쿠르(parcours·파르쿠르)라는 명칭은 프랑스어로 ‘길, 여정’이란 뜻이다. 프랑스 해군장교였던 조르주 에베르(1875~1957)가 선상생활을 하는 해군들을 위해,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만든 운동 프로그램이 파쿠르의 시작이다. 그가 굳이 아프리카 원주민의 움직임을 따라 한 이유가 있다. 원주민들이 따로 운동을 하지 않고 일상적인 움직임만으로도 사냥을 하는 데 엄청난 신체적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런 운동을 1980년대 말 파리 외곽에 살던 10대 청소년 9명이 파쿠르라는 명칭을 붙이고 체계화했다. 그들은 ‘야마카시’라는 팀을 만들어 영화에 소개하며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야마카시’라는 용어는 아프리카 콩고의 한 부족이 전투에 임하기 전 용기를 북돋기 위해 외치는 구호. 대부분 프랑스에 이민 온 이주민의 자식들인 이들 10대 청소년들은 우선 육체적으로 강인해지고 싶었다.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등 현실의 벽을 온몸으로 극복하고 싶었다.

 맨몸으로 하는 9가지 동작을 반복했다. 그것은 걷기, 달리기, 도약하기, 구르기, 매달리기, 기어가기, 올라가기, 통과하기 등이었다. 인간 고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그들을 어떤 장애물도 막지 못했다. 그들은 육체적 능력만을 중시하지 않았다. 여기에 자유정신이 가미됐다. 자유의지의 실천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길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파쿠르는 스포츠임을 거부한다.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고 순위도 있다. 몸의 움직임이 스포츠의 옷을 입는 순간 육체와 정신의 자유로움은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쿠르엔 규칙이 없다. 선수권대회도  없다. 같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과 코스가 개인별로 다른 것을 존중하고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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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장애인 위한 프로그램도

 김씨는 “파쿠르를 하면 두려움에 대해 깊이 있는 깨달음이 오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 수 있어, 그 이상의 도전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쿠르가 단순한 몸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심오한 철학이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네 발로 걷는 등 온몸의 기초 근력을 높이는 운동을 하루 두 시간 이상 꾸준히 한다. 풀쩍 뛰어서 정확히 서는 균형감을 키워야 하고, 허리 높이의 장애물을 자유자재로 뛰어넘는 훈련도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신체의 일부분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신체의 일부분이 많이 발달하기도 한다. 김씨는 “파쿠르는 온몸의 근육을 골고루, 그리고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말한다. 김씨는 영국에서는 지난해 파쿠르가 정식 국민스포츠로 지정됐다고 한다. 영국엔 일주일에 1회 이상 파쿠르를 하는 인구가 10만명을 넘었고, 노인들을 위한 ‘시니어 파쿠르 댄스’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파쿠르까지 개발됐다고 한다. 15년 전부터 국내에 소개된 파쿠르는 2천여명의 동호인이 있다. 국내에서도 초등학생부터 성인들까지 파쿠르아카데미에서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동호인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김씨는 3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 파쿠르 레벨2 지도자 자격을 땄다. 세계에 50명뿐이다.

 김씨는 항상 웃는다. 위험하고 거친 운동을 하지만 그는 해맑게 웃는다. “왜 웃냐고요? 파쿠르를 하면 순간순간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해요. 저도 모르게 자유의지를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실천해야 진정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요.”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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