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의 진정함을 깨닫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15/종남산의 토굴 수행

 

그 다음엔, 220볼트 전기선에 접촉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지도자는 놀라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 전선에 접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믿음’을 끝까지 가지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의심이 가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은 도전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용감한 도전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싸부의 기억으론 회중의 한 절반은 됐다고 했다. 싸부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일단 앞의 순서를 관망해보자고 맘먹고, 열외를 했다. 천리만리 이국의 타향에까지 유학 와서 고생한 세월들이 얼마인가. 일자 무식쟁이라면 또 모를까. 과학적 상식과 현대교육을 받을 만큼 받아온 입장에서,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비명에 횡사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도전자 일동에게 일차적으로 100볼트의 전압에 접촉하게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자 220볼트로 올렸다. 일동의 눈빛과 표정들에서 순간, 짜릿한 느낌이 읽혀졌다. 지켜보는 이들이 더 긴장했다. 다행이 아무런 사고 없이 모두 성공했다.
 이것을 보고난 싸부도 이번엔 용기를 냈다.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회중 앞으로 나섰다. 두 번째 차 도전한 회중들도 모두 무사히 성공을 했다. 싸부는 처음 100볼트 때 매우 찌릿한 기운을 느꼈으나, 오히려 이 기회를 빌어 전기의 힘을 통하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순응했더니 별 다른 문제가 없더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성산은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쓰촨성의 성도가 청두이고, 그 청두의 서쪽 변방 즈음에 두장이엔이라는 작은 소도시가 있다. 청성산은 바로 그 두장이엔 외곽에 있는 중국 국가급 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이다. 말하자면, 우리식으론 국립공원인 셈이다. 도교 산으로 전산과 후산으로 나뉘어 있는데, 산 곳곳에 도교의 사찰인 전통 도관이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듯 꽉 들어차 있다. 정상이 1,200미터 정도밖에 안 되니 아주 큰 산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산과 후산을 합해 산의 권역이 작지 않는데다, 뒤의 배경을 이루는 산맥들이 장대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으로부터 첩첩 산맥으로 티베트까지 이어진다.

청성산 1.jpg » 청성산

 

청성산 3.jpg » 청성산
 
 여기 두장이엔과 청성산이 10년 전에 있었던 쓰촨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었었다. 나는 그때 아미산 수련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되었다. 지진 피해가 연일연야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두장이엔 시내 모 초등학교의 참사현장은 그야말로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저 아이들과 저 생명들을.
 
 두장이엔과 청성산은 내가 마음으로 몹시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다. 천하의 명산으로 중국 역사속의 기인들과 이인들이 많이 배출되어 나온 곳이다. 삼국지로 말하면 촉나라의 근거지였던 곳이니, 유비와 관우 장비 제갈량의 용맹과 지혜의 숨결이 면면히 흐르는 곳이다. 무협에서는 도교를 배경으로 하는 청성파의 본거지기도 하다. 800살을 살았다는 팽조가 살았던 팽산도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다. 시성 두보의 사당도 청두에 있다. 수도(修道)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해온 청성산과 그 일대는 유불선의 도맥(道脈)이 유장하게 펼쳐온 곳이다.

두장엔.jpg » 두장이엔
 
 싸부는 청성산과 인연이 많았다. 기공사 배출과정도 그랬고, 특히 도교의 수련 전통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몇 차례나 이곳을 드나들었다.
 도교는 선교나 선도라고도 불린다. 중국의 자생 종교이자 문화이고 학술이며 수련전통이다. 유 불 선이라 할 때의 ‘선(仙)’이 바로 그 도교 전통을 말한다. 노자(太上老君)를 교주로 모시고 상제(上帝, 하느님) 다음으로 받든다. 노자도덕경과 장자 남화경을 비롯하여 도교의 경전들을 집대성한 것이 불교의 팔만대장경에 상응하는 도교의 ‘도장(道藏)’이다.
 
 싸부가 청성산을 출입하면서 이곳 도사들과의 교분이 생겼다. 그중 몇 명의 여 도사와도 친분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청성산의 도교 전통의 수련술을 접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것이 ‘훈법(薰法)’이었다.

노자 1.jpg » 노자

노자 2.jpg » 노자 초상화
 
 ‘훈법’은 수련과 의학 전통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특히 도관의 여자 도인들에 의해 전수되어왔던 모양이다. 도인들은 의학과 양생, 특히 약초에 관한 비법들에 능했다. 자가 진단과 처방은 그들의 능기다. 양생과 의학 방면에서 도교는 독창적인 공헌을 해온 바 있다.
 하여튼, 여성 도인들이 양생과 수련을 돕는 데 쓰는 독특한 처방전의 하나가 이 훈법이다. 자기 자신에게 맞는 약초를 스스로 처방하고 조제하여 그 약훈을 쐬고, 그렇게 쐰 훈을 내기로 운기 행공하는 수련법이 훈법의 주요 내용이었다.
 
 싸부는 이 훈법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차훈명상법’을 만들었다. 도사들의 훈법은 약초와 의학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는 적용이 쉽지 않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 대안이 떠올랐다. 맞다, 약초 대신 ‘차’를 사용하자.
 
 차는 몸과 마음의 정화와 치유 작용 모두 뛰어난다. 옛날엔 배탈이 나면 찻잎을 달여 마셨다. 과음을 한 뒤에, 혹은 육식을 한 다음에 차를 마시면 술도 깨게 하고, 몸도 깨끗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련할 때 차를 병용하면 수련효과도 높아진다. 그래서 ‘禪茶一味(선차일미)’나 ‘茶禪一如(다선일여)’라고 한다. ‘차와 선은 하나’라는 뜻으로 읽혀 따로 분리해서 다루어진 적이 없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점은, 차는 보편적으로 타당한 음료요 약이라는 점이다. 특별한 개인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나 부작용 없이 음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부는 청성산 비술인 ‘훈법’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약초 대신 ‘차’를 사용하는 ‘차훈명상법’을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명상을 끝내고 가부좌를 풀고 일어서니, 벌써 동이 환히 텄다. 마당을 서성인다. 이곳의 객으로 머물며 수행의 여정을 지나쳤던 숱한 인연들을 떠올려 본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이곳을 찾아온 수행자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가 또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갔을까?
 
 이곳에 흘러든 물 한 방울도,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귀한 인연들이다. 이곳을 출입하는 뭇 생명들도, 그들을 따뜻이 덮어주는 하늘도, 그들의 말없는 자양이 되어주는 토양도, 그 속을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도, 하늘의 뭇별들과 달도, 이아침 나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물안개도, 하나같이 ‘나’를 있게 해주는 또 다른 ‘나’이다.
 어느 미생물 학자가 말했다. 우리 몸은 90%가 미생물이라고. 진짜배기 나의 몸 덩어리는 그중 10%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나’는 ‘나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있다고. 그것이 ‘무아(無我)’의 진정한 의미라고.
 
 여기 종남산과 정업사와 그 하늘과 땅이 나 아닌 것이 없다. 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를 떠받쳐주는 ‘나 아닌 것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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