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도란 무엇일까요?/풍류도 1 풍류도

풍류도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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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core)’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중심의’ ‘핵의’ ‘안쪽’ 이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지구라는 행성의 코어는 중심의 핵(내핵)입니다. 지구는 이 순간도 잠시도 쉬지 않고, 멈춤 없이 돌고 공간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심력과 구심력의 조화 속에서 중심을 유지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중심 기운은 복 횡근과 복부 내부의 공간에 대한 이론으로 시작합니다. 그 부분은 배꼽을 몸 안쪽 방향으로 힘을 줄 때 안쪽으로 당겨지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의해서 생기는 복부의 압력이 요추의 안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재활의학에서 강조 하는 코어에 대한 내용입니다. 내 안의 중심에서 생기하는 힘(에너지)을 자각 할 때 일종의 체압(體壓)으로 느껴집니다. 눈에는 안압, 머리는 뇌압, 복부에는 복압이 있듯이 내적인 중심에서 몸 바깥으로 미는 힘과 이에 대항하는 밖에서 안으로 당겨드는 힘의 균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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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의 체압이 떨어지면 그만큼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척추의 안정이 깨진다고 합니다. 인체의 중심축이 흔들리면 몸의 저항력도 떨어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코어의 힘을 키우고 유지 하느냐?”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데 주요한 일이 됩니다. 우리 선조는 이러한 내적 중심의 에너지를 키우는 수행 방법을 일찍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풍류 현묘지도(玄妙之道)에 있어 삼일징심법(三一澄心法)입니다.
 
 이는 고대 불교의 삼밀유가수행(三密瑜伽修行)과 풍류지도(風流之道)가 합쳐, 풍류유가법으로 정립 되어 전해 왔습니다. 불교적 가르침과 민족 고유의 풍류 문화의 만남이 부루 일여(一如)의 문화를 낳았습니다. 일여란 너와 내가 하나요, 나와 남이 하나이며, 나와 우주 법성이 모두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농경사회 문화 속에서 이미 나와 객관세계인 자연이 법이 자연으로 하나 되는 삶을 누려왔습니다. 그에 대한 요가짜라의 수행체계가 이미 1300여 년 전에 원측스님(613~696)의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열권으로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티벳본으로도 현존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유가행파들의 수행이론이 정립되어 신라에 전하여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 말, 뜻의 삼업(三業)이 삼밀(三密)로 전환 되면, 셋이 하나로 귀일 됩니다. 이는 마치 동아줄을 꼴 때 두 줄을 꼬는 것보다 세 줄을 꼬아서 만들면 더 강하고 풀리지 않는 동아줄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신구의 삼밀이 하나로 몰입 될 때, 의식은 명료하고 강하게 깨어날 수 있는 응념(凝念)으로 형성 됩니다. 마음의 흐름이 하나의 대상에 집주되는 것을 응념이라고 정의 합니다. 
 
 응념의 형성은 삼밀이 하나로 짜여 져 틀음(꼬임)이 일어날 때 가장 강력하게 형성되며, 느낌의 흐름을 하나로 귀일되도록 합니다. 이러한 회삼귀일(會三歸一)의 힘은 나와 대자연의 본체가 서로 유가상응 되도록 생사의 현관(玄關)을 엽니다. 이때 코어의 힘이 극대화 됩니다. 법이 자연의 힘(에너지)을 충만하게 한다는 겁니다. 나와 대자연 본체와의 공존감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한 장의 종이에서 구름과 비와 대지, 햇빛과 달빛, 나무와 바람, 나무꾼과 종이를 만드는 사람 등 수많은 일체의 요소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저저이(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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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 어느 하나의 요소가 빠지면 한 장의 종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공존 되어 있는 나의 자성과 전체성의 감을 깨울 때 공존감(共存感)을 체화 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본래의 자연성으로 되돌리는 일이 됩니다. 궁극적 몸의 건강과 편안한 마음의 안주는 내안에서 본래의 자연성을 되찾을 때 가능 한 것입니다.
 
 간화선 수행에서 생사의 현관을 여는 일이 진정한 공존감을 깨우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고대 신라 말엽부터 선수행(禪修行)을 통해 공존감을 깨우는 수행이 전승 되어 왔습니다.  존재의 궁극적 실체에 대한 깨달음을 찾는 간화선 화두 수행은 생사 현관의 타파를 통해 인식의 지평이 깨어나도록 하는 선수행입니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는 정신적 무지로부터의 벗어나고, 자연과의 공존감을 되찾는 일부터라고 확신 합니다.
 
 이는 몸과 마음을 율려(律呂)와 함께 맑히는, 삼일징심법수행으로 고대 유가짜라의 유가법을 바탕으로 수행 하였던 것입니다. 풍류도는 신라때 국가의 동량을 육성하는 화랑도, 국선도로 발전 합니다. 
 
 고대 풍류유가법의 풍류는 땅, 물, 불 그리고 바람 등 자연을 벗 삼은 수행문화 원형인 ‘부루’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육당 최남선의 설명입니다. 이는 항상하는 것이 없고 늘 인연 생멸하는 무상(無常)의 이치를 들어냅니다.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의 수행을 실천 한 이들이 풍류도인 들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바람따라 와서, 머물다, 인연의 바람 따라 가는 것이 풍류인의 멋이리라는 거죠.
  저 태원은 이러한 고대 수행 체계를 21세기문화에 걸 맞는 풍류유가법의 현대적 수행체계로 정립하였습니다. 마음을 요가로 닦으며, 정신과 육체 두 영역에 걸쳐 자유와 평안을 획득하는 것이 풍류도입니다.
 
 글 태원스님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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